63 : 글쓰기 좋은 질문 210번

by 마하쌤

* 내가 가장 아끼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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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 나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9개월 간 어학연수 중이었다.


어학원에서 전세계에서 온 젊은 친구들과 어울렸었는데(나는 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이가 좀 있었던 편),

나는 동양에서 온 대표적인 '유교 걸'이었다.


아침마다 친구들이 나누는 비쥬(볼 뽀뽀 - 보통은 좌우로 2번, 스위스 애들은 3번도 하더라)를 나는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너무 쑥쓰러웠다. 특히 남자들하고는 더!


그래서 오죽하면 친구들 소원이 '미뇽'이랑 비쥬 한 번 해보는 거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내가 못 하는 게 있었는데, 바로 춤을 추는 것이었다.

헤비메탈 클럽에 가서 제자리에서 겅중겅중 뛰며 헤드뱅잉 하는, 그런 춤은 혼자서 얼마든지 출 수 있었지만,

남미 애들이 주로 추는, 남녀가 서로의 몸을 밀착해서 부비부비하는 그런 류의 춤은 NO WAY. NEVER!!!


내가 워낙에 그쪽으로 철벽이어서 그랬는지,

어느 날 내 친구들이 계략을 꾸몄다.


그 당시 우리는 바에 가면 주로 스미노프 아이스를 마셨는데,

스미노프 보드카 베이스에 레몬을 섞어서 8% 정도의 도수로 가볍게 마실 수 있게 만든 병 음료였다.

그런데 내가 스미노프 아이스를 반쯤 마시고,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

친구들이 내가 마시던 병을 비우고, 거기에 도수 40%짜리 진짜 스미노프 보드카를 채워넣었다.


그리곤 내가 돌아오자마자, 남은 병을 원샷하자며 재촉했다.

원샷할 때 빼는 성격은 아니었기에, 의심없이 한 번에 들이마셨고, 결과는...


그렇다.

드디어 나의 철벽이 무너져내렸다.


헤롱헤롱해질 때로 헤롱헤롱해진 내가 한 선택은 놀랍게도, 바 한 쪽에 놓여있었던 무대 위로 올라간 것이었다.

내가 춤추러 무대 위로 올라가는 걸 본 내 친구들은 거의 기절할 지경이 되었고,

남미쪽 남자 친구들은 이 기회를 놓칠세라 무대로 뛰어올라왔고,

유럽쪽 여자 친구들은 카메라를 들고 꺅꺅 소리를 지르면서 우리를 찍어댔다.

그게 바로 이 사진이다.



#922858.JPG


코스타리카, 아르헨티나, 멕시코에서 온 친구들에 둘러싸여서 춤추며 열라 행복한 표정을 짓는 나.

저 때가 내 인생 최초로 본의 아니게 철벽을 철거했던 날이었다.


그래서 이 사진이 내가 가장 아끼는 사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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