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 동안 만나지 않고, 말 한마디 없이 지냈던 어머니와 아들이 12월 어느 날 우체국에서 양손 가득 소포를 들고 줄 서 있다가 우연히 만났다. 그들은 서로에게 무슨 말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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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만나지 않았다...
언제부터 언제까지의 20년이었는지가 중요할 것 같다.
예를 들어, 아들의 출생 직후에 헤어져서 20년이면,
엄마가 아들을 알아보는 건 아예 불가능하지 않을까?
고 무렵 애들 얼굴은 매일매일 너무 많이 변하니까.
뭐, 그건 아들도 마찬가지겠지. 아예 기억 자체가 없을 테니까.
그럼 우체국에서 알아볼 일 자체도 없고, 그저 모르는 사람처럼 스쳐 지나갔겠지.
기껏해야 '우리 아들도 지금쯤 저 청년 정도처럼 컸으려나' 이런 생각까지만 가능할 듯.
만약에 아들이 40살 때 헤어져서 20년이면 어떨까?
두 사람 다 상당한 노화가 일어나긴 했겠지만, 그래도 느낌상 알아볼 순 있겠지?
그렇다면 몇 살부터 몇 살 사이에 헤어져야 이런 알아봄이 가능한 걸까?
음... 내가 이런 걸 따지고 있는 걸 보면, 아마 누군가는 지금 속으로 이러고 있을 거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라고. ㅋㅋㅋㅋ
하지만 나한텐 이런 것부터가 중요하다고!
설정은 정확해야 하니까! ^^
암튼 서로를 알아볼 정도의 20년이었다고 치고!
그런데 우체국에서 우연히 만났다...
안 그래도 어제 취준생 수업 시간에 '인사'를 주제로 강의를 했었는데,
인사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사실 인사의 의미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인지, 인식)하는 것이며,
따라서 먼저 인사를 하기 위해선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인사를 했는데 상대방이 나를 못 알아보거나, 혹은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그 민망함, 뻘쭘함, 부끄러움, 수치심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또한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나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은 그런 의지가 있어야 한단 얘기다.
이 아들과 어머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과연 둘 중에 누가 더 그런 마음이 있을 것인가?
어머니가 아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을까, 아니면 아들이 어머니에게 그러고 싶을까?
둘 중에 그 마음이 더 큰 사람이 아마 먼저 인사를 건넬 것이다.
인사를 건네기로 결심한 후,
어떤 말로 시작할 것인가는 각자의 성격에 달려있을 것 같다.
감정이 풍부한 사람은, "OO아...", 혹은 "엄마..." 라고 호칭만 부르고선 바로 눈물을 뚝뚝 흘릴 수도 있겠고,
혹은 보이는 것에 기반해서, "많이 컸구나.", "많이 늙으셨어요." 같은 현실 인식으로 시작할 수도 있겠고,
아마 대부분은 20년 만에 처음 만났다는 상황에 기반해서,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같은 일반적인 인사부터 시작할 것이다.
혹은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어제 헤어진 사람처럼 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괜시리 소포 얘기를 하며 이렇게 말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소포 부치게?"
나라면,
내가 엄마 혹은 아들이라면 어떻게 말을 시작했을까?
나는... 아마 웃으며 "이렇게도 만나게 되네(요)."라고,
우리 만남의 우연성과 필연성을 강조하는 뉘앙스의 말을 건넬 것 같다.
물론 헤어질 때 아주 안 좋게 헤어졌는지, 아니면 안타깝게 헤어졌는지에 따라,
이 20년 만의 만남의 분위기는 아주 달라지겠지만,
어찌됐든 나라면, 20년 만에 우연히 마주친 이 기회를 그냥 모르는 척 흘려보내진 않았을 것 같다.
난 모든 만남엔 이유가 있다고 믿는 편이라서 말이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