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스팸 메일을 보내는 나이지리아 사람이다. 이메일 수신자가 당신에게 200달러를 보내도록 아주 설득력있게 스팸 메일을 작성해보라.
---------------------------------------------------------------------------------------------------------------------------
간만에 보자마자 뒷목에서 열이 확 오르는 주제였다.
요새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보이스피싱이다.
남을 속여서 돈을 뺏는 것이 범죄이기도 하지만,
보이스피싱에서 내가 제일 극혐하는 부분은,
남을 완벽하게 속일 수도 있는 그 똑똑한 머리를, 왜 하필이면 나쁜 일에 쓰느냐이다!
영화 '보이스'(변요한, 김무열 주연)를 보면,
보이스피싱 집단들이 (남 속이는) 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하는지가 나온다.
기획실에서는 완벽한 보이스피싱 대본를 쓰기 위해 여러 명의 작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고,
복사실에서는 직원들을 위해 보이스피싱 대본을 수천, 수만장씩 복사해서 책으로 만드느라 바삐 일하고 있고,
전화실에서는 수백명의 직원들이 혼신의 연기를 다 하면서, 낮이고 밤이고 없이, 지치지도 않으며 속임수 전화를 걸고, 또 건다. 게다가 팀플레이는 또 얼마나 환상적인지, 속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을 정도다.
또 다른 쪽에서는 인적 정보를 불법으로 확보하기 위해, 상대편과 기싸움을 불사하며 가격 흥정에 뛰어든다.
전광판에서는 오늘 그들이 속여서 확보한 금액이 실시간으로 표시가 되고,
숫자가 올라갈 때마다 그들은 성취감에 떨며, 다같이 환호하고 기뻐한다.
여느 대기업에서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한 사무실 풍경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 말은,
그 비상한 머리와 그 기발한 아이디어와 그 근면성실함과 그 연기력과 그 노력을,
도대체,
왜!
어째서!
굳이!
나쁜 일에 쓰는 거냐고!!!!!!!!!!!!!!!!!!!!!!!!!!!!!!!!!!!!!!!!!!!!!!!!!!!!!!!!!!!!!!!!!!!!!!
난 이게 너무너무너무 화가 난다. ㅠ.ㅠ
물론 그들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양지에서 자기들을 거부하니, 자기들을 받아주는 음지에서 일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자기도 속았기 때문에, 똑같이 갚아주고 싶은 거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세상은 원래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니 애초부터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안다. 다 가능하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이왕이면 좋은 일에 기여하도록 선택할 순 없었는지,
우리가 다같이 잘 살고, 다같이 돕고, 유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그런 귀한 일에 나의 재능을 더하면 어땠을까? 나는 그게 너무너무 아쉬운 거다.
사실 저 글감에서 스팸 메일 보내는 사람을 나이지리아 사람으로 특정한 것도 영 탐탁치 않긴 한데,
뭐, 어쨌든 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전세계 사람들이 다 있을 테니까, 그건 그냥 넘어간다 하더라도,
아무리 연습이고, 아무리 그냥 한 번 써보는 거라도,
남을 속이기 위한 설득력 있는 스팸 메일 따위를 쓰는 것에 내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진 않았다.
나는 저런 글감이 하나도 재밌지 않다.
아마도 내가 이래서 소설을 못 쓰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허구로라도 못 쓰겠는 걸 어쩌라구...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