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할머니가 당신이 읽고 싶지 않은 책 한 권을 주었다. 그 책은 무엇인가? 그 책을 읽은 척 하며 할머니에게 감사 편지를 써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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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가 나한테 책을 준다고?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 같은데...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보려 해도,
우리 할머니가 책을 읽으시는 모습은 한 번도 못 봤던 것 같다.
아! 성경책은 읽으셨네!
그랬었네!
그렇다면, 성경책은 주실 수 있겠다.
그리고 옛날의 나였다면, 성경책을 읽기 싫어했을 테니까, 주제에도 딱 맞네!
나는 모태 신앙 집안에서 태어나,
일요일마다 교회가는 삶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자랐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는 교회 시스템과 신앙에 대해서 불만을 품기 시작했었다.
(아마도 그때가' 내 생각'이라는 걸 처음 갖기 시작했던 무렵이었던 것 같다)
교회에서는 왜 그렇게 십일조를 못 걷어서 안달인지,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왜 신앙이 없는 사람들보다 더 나쁜 짓을 많이 하는지,
서로 사랑하라는 교리를 매주 배우면서도, 어째서 교회 안에서 인간관계로 인한 갈등은 그리도 많이 생기는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데, 어째서 착한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보다 더 비참하게 죽어가야 하는지 등등...
묻고 싶은 수많은 질문들이 생겼지만,
교회 안에서 이런 걸 물으면 불순종한다고 여길까봐 혼자서만 끙끙 앓다가,
결국엔 이런 모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그리고 십몇 년 만에 다시 교회로 돌아오기까지 참 많이도 방황을 했더랬다.
(삶에서 도저히 견디기 힘든 일들이 생기니, 저절로 돌아와 다시 무릎 꿇게 되더군. ㅎㅎㅎ)
교회로 다시 돌아오기로 결심했던 어느 새벽 예배 때,
내 마음에 떠오른 모습이 바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언제나 나를 위해 기도하시던 모습이었다.
내가 방황하는 동안, 직접 말씀은 안 하셨지만, 두분이 나를 위해 늘 염려하며 기도하셨던 것을 알기에,
그게 너무 감사하고 또 죄송해서 많이 울었더랬지.
할머니의 성경책은 너무 닳고 낡아서 유품으로 간직할 수조차 없었다.
성경책 가죽이 손만 대면 바스러지는 그런 상태였던 걸로 기억한다.
많이 늦었지만 항상 신앙의 모범이 되어주신 할머니, 할아버지께 감사드린다.
그분들의 모습이 언제나 내 앞에 있었기 때문에,
너무 오래 방황하지 않고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