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에 나를 비춰보다"-(37) 뭐든지 할 수 있어

by 마하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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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 나를 비춰보다 - (37) "뭐든지 할 수 있어"


올해 3월 16일에 나의 첫 책 초고 쓰기 작업 때문에 멈췄던 연재를 다시 시작하려 한다.

한동안 나를 들여다보기 보다는, 남을 들여다보는 일에 시선을 많이 뺏겼던 것 같아서,

다시 초심을 회복하고, 나를 알뜰살뜰 챙겨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첫 그림책으로 무엇을 고를까 고민하다가,

최정은 선생님의 '그림책 활동가를 위한 가이드' 수업 시간에 처음 만났던 그림책,

고미 타로의 "뭐든지 할 수 있어"를 골랐다.


그리곤 "거울아, 거울아, 누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니?"가 아니라,

"그림책아, 그림책아, 지금 내 마음이 어떠니?"하고 다시 물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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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엔 꼬마와 말이 나온다.

첫 장을 펼치자마자 꼬마는 말에게 "오늘은 머리 위에 타고 싶은데 어때?"라고 묻는다.

말의 머리 위에 올라타고 싶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요구가 또 어디 있을까?

그런데 말의 대답이 걸작이다. "머리 위? 그러지 뭐."


나는 꼬마의 요구에 화가 났다.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것 자체에 화가 났다. (이미 말한테 감정 이입 중...)

누군가 요구를 하면, 맘에 들지 않아도 일단 예의상 들어보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기 때문에, 그게 벌써 싫다.


게다가 말투가 예의바르기 때문에 더 짜증난다.

"나 좀 머리 위에 태워주면 안 돼?"라고 물었으면, 지 밖에 모르는 나쁜 놈이네 하고 어이없게 여길 수 있어서 좋았을 텐데, "오늘은 머리 위에 타고 싶은데 어때?"라고 물으니까, '내가 원하는 건 이거지만, 선택은 네 몫이야'라고 공을 나한테 넘기는 것 같아서 더 화가 난다. 나에게 결정권이 있다는 게 더 분하다. 들어주면 꼬마의 노예가 되는 것 같은 더러운 기분을 느껴야 하고, 안 들어주면 나쁜 사람이 된 기분을 느껴야 하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내가 고민할 필요 없게끔,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으면 좋았잖아!!!!!!



어랍쇼?

글 쓰다가 놀랐다.


난 겨우 그림책 첫 장을 넘겼을 뿐이고, 꼬마는 그저 질문을 던졌을 뿐인데,

정작 당사자인 말도 별 일 아니라는 듯 오케이 했는데,

내 반응이, 내가 쓰는 언어가, 무척 거칠다.

'노예'와 '나쁜 사람'을 오간다.

난 어쩌다가 또 이렇게 마음이 극단적이고, 이분법적으로 되어버렸을까?


나는 여전히 누군가 나에게 뭔가를 요구하면 그걸 들어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는 모양이다. 들어주건, 안 들어주건 내가 선택하면 그만이라고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들어주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다가 들어주기 싫은 걸 억지로 들어주기라도 하게 되면, 나는 그 사람의 노예가 되버렸다고 수치심을 느끼는 모양이다.



뭐지? 내가 도대체 왜 이러지?

최근에 누가 나한테 뭘 많이 요구한 적이라도 있는 건가?

상대방은 그저 자기가 원하는 걸 표현했을 뿐인데, 내가 왜 이렇게 발끈하지?

그렇다면 혹시 반대로 내가 요구하고 싶은 걸 제대로 요구하지 못하고 있어서 그런 건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타인 중엔 그런 사람이 없다.

그런데 내 안엔 있더라, 그런 사람이.

나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내가...

나에게 불가능한 것을 끝도 없이 요구하는 내가... 있더라.


"야, 이번엔 이런 새로운 걸 해보면 어떨까?"

"야, 이거 복습도 다시 해야할 것 같지 않아?"

"야, 그 영화도 꼭 봐야해. 이 책도 꼭 읽어야 해."

"야, 저걸 꾸준히 연재로 올리는 거야, 어때? 끝내주지 않아?"

"야, 이러면 되게 재밌을 것 같지? 당장 하자, 하자!!!!!"

"야, 하면 된다니까! 넌 당연히 할 수 있지!"

"야, 안 되는 게 어딨어! 일단 무조건 하고 보는 거야!"


하... 내가 지쳤구나...

열정과 의욕에 충만한 나 자신에게 질려버렸다.

늘 새로운 뭔가에 도전하고 싶어하고,

일 벌리기를 좋아하고,

나의 지평을 넓히는데 관심이 많은 나 자신이... 나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런 내 모습을 몹시 사랑하기에...

웬만하면 그런 열정에 다 응답하고 싶고, 웬만하면 그 의욕을 다 충족시키고 싶지만,

때로는 내 한계를 넘어설 때가 있다.

여기서의 한계란, 내 몸의 한계다.

나의 육체적 한계 - 즉 체력, 시간, 에너지... 말이다.


그래서 몸이 마음을 따라가주지 못할 때, 나는 수치심을 느낀다.

맘 가는 대로 몸이 다 해내지 못하는 내가 싫어진다.

한계가 있는 내가 짜증난다.


이제야 알겠다.

그림책 첫 페이지부터 격한 언어들이 나온 이유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 자신을 싫어하는 마음이 꽤 커져있었다.

내 생각처럼 쭉쭉 뻗어나가지 못하는 나를 답답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에게 끝도 없이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또 다른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나 있었다.

"제발, 좀 그만 하라고!!!!", "적당히 좀 하라고!!!", "제발 좀 천천히 가자고!!!"

캬... 그렇구나...

꼬마도 나고, 말도 나였구나!

꼬마는 내 안의 '욕심 많은 나', 말은 '내 안의 지친 나'였구나!



이 그림책을 읽고 나서, 현재의 내 상태가 파악이 되었고,

지금 내가 말의 얘길 들어줘야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장 야심만만하게 시도했던 '뮤지컬에 나를 비춰보다' 수업을 스스로 철회했다.

빨리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싶어했던 내 욕심이 너무 과했던 것 같다.

야심차게 계획했던 일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너무 속쓰리는 일이다.

하지만 지친 나를 소중히 여길 줄 모른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래, 난 뭐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하지 않겠다. 난 하지 않는 것도 할 수 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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