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이어서 두 번째로 소개할 '충.조.평.판'에 관한 그림책은,
코리 도어펠드의 '가만히 들어주었어'이다.
이 책은 상처를 받은 사람의 마음에 접근하는 것이 얼마나 조심스러워야 하는지,
무작정 도와주고 싶은 선의로 달려든다고 해서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
이 책의 주인공 테일러는 블럭을 가지고 뭔가 새롭고도 특별한, 놀라운 것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애쓴 결과,
너무도 멋진 성을 만들고나서 뿌듯해한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새들이 날아와 모든 걸 무너뜨리고 만다.
상심한 나머지 쪼그리고 앉아있는 테일러에게 여러 동물들이 다가와 도움의 손길을 건네지만,
테일러의 마음엔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이 책에 나와있는 동물들의 방식을 보면, 상대방이 원치 않는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여기에 다 소개하는 것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다른 상황으로 바꿔서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
두 달 동안 열심히 준비해 온 프로젝트가 상대 회사의 어처구니없는 실수 때문에 무산된 회사원이 있다고 치자.
우리는 그/그녀의 상심한 마음을 위로하고 싶다.
1) A의 시도 : 도대체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인지 꼬치꼬치 캐묻는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왜 이렇게 됐어? 누가 잘못한 거야? 얘기 좀 해 봐. 상황을 알아야 도와주지."
=> 하지만 회사원은 말하고 싶지 않다. 이미 끝나버린 일, 생각할수록 아프기만 한 일, 다시 언급하는 것조차 고통일 뿐이다. 게다가 나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을, A를 위해 다시 처음부터 리바이벌 해줄 에너지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일이야? 어떻게 된 거야?"라고 묻는 그 질문이 회사원에겐 그저 귀찮고 버거운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2) B의 시도 : 회사원 대신 화를 내준다.
"어떤 자식이 이 따위 말도 안 되는 짓을 했어! 도대체 누구야? 아오~ 내가 가서 확 엎어버릴까?"
=> 하지만 회사원은 화내고 싶지 않다. 누가 나 대신 가서 싸워주는 것도 원치 않는다. 회사원의 지금 마음이 '화'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회사원이 지금 화가 났을 거라고 생각한 건 오히려 B이다. 아마도 B는 자기가 회사원의 상황이라면, 엄청 화가 났을 거라고 생각한 듯 하다. 그러나 B와 회사원은 성격이 다를 수 있고, 따라서 같은 경우에 느끼는 방식도 다를 수 있다. 그럴 경우 이런 식의 시도는 오히려 회사원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뿐이다.
3) C의 시도 : 회사원 대신 처리해주겠다고 한다.
"내가 대신 수습해줄께. 어떻게 하면 되는지만 말해 줘. 그럼 내가 다 알아서 할께."
=> 하지만 회사원은 내가 했던 일을 다른 사람이 대신 수습해주길 원치 않는다. 안 그렇겠는가? 지금 당장은 기운도, 의욕도 없어서 망연자실해 있을 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이 내 대신 내 일을 해주는 걸 원하는 게 아니다. 할 수 있으면 내가 하지, 그걸 왜 남에게 부탁하겠는가! 이 또한 뭔가 핀트가 맞지 않는 도움인 것이다.
4) D의 시도 : 별 일 아니니 그냥 웃어 넘기라고 한다.
"괜찮아. 회사 생활하다 보면 이런 일은 일상다반사야. 그까짓 거 그냥 한 번 웃고 잊어버려."
=> 속상한 사람 앞에서 그건 별로 속상해할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잔인한 일은 없다. 내가 '아프다'고 하는데, '넌 아프지 않아'라고 한다는 건, 내 감정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일이고, 더 나아가 내가 뭔가 잘못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플 필요도 없는 일에 아파하고 있는 거라면, 그건 내가 어리석다는 얘기일 테니까. 이거야말로 정말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얘기인 것이다.
5) E의 시도 : 상대방 회사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도록 복수하자고 한다.
"우리만 당하고 있을 순 없지. 그 자식들도 똑같이 손해 보게 만들자고. 뭐 약점 아는 거 없어?"
=>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내가 상처 입었으니 그쪽에도 상처를 입히자고 한다. 마치 그렇게 하면 내 상처가 저절로 낫는 것처럼 말이다. 성격에 따라 정말 이러면 화가 풀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이런 제안처럼 무의미하고 공허한 것도 없다.
작가 정혜신은 저서 '당신의 옳다'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 상처의 내용보다 내 상처에 대한 내 태도와 느낌이 내 존재의 이야기다. 내 상처가 '나'가 아니라 내 상처에 대한 나의 느낌과 태도가 더 '나'라는 말이다."
이게 핵심인 것 같다.
모두가 내가 무슨 일 때문에 상처 받았는지를 묻고,
그 일을, 혹은 그 상처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얘기할 뿐,
정작 그 상처를 대하는 내 감정과 느낌과 태도에 대해 묻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
"벼랑 끝에 선 사람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해줘야 하는가. 결론적으로 해줄 말이 별로 필요치 않다.
그때 필요한 건 내 말이 아니라 그의 말이다. 무언가 해줘야 한다는 조바심을 내려놓고 지금 그의 마음이 어떤지 물어봐야 한다. 사실 지금 그의 상태를 내가 잘 모르지 않는가. 물어보는 게 당연하다. 내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인정한다면 그에게 물어볼 말이 자연히 떠오른다."
다시 그림책으로 돌아와보면,
상심한 테일러에게 토끼가 다가온다.
토끼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테일러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그저 테일러의 곁에 말없이 있어주었다.
그러자 테일러가 자기 마음을 말하기 시작했고, 토끼는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준다.
그 과정이 모두 끝나자, 테일러는 비로소 다시 블록을 쌓아볼 용기를 갖게 된다.
언제나 제일 속상한 사람은 상처 입은 당사자다.
그 어떤 경우라도 그를 도와주고 싶어하는 내 마음이 더 급하고 중요할 수는 없다.
우리는 그저 가만히 들어주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