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이 어떤 것인지에 관한 그림책을 시리즈로 소개하고 있다.
오늘은 그 세 번째 시간으로 클로드 부종의 '파란 의자'에 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에스카르빌과 샤부도는 사막에서 파란 의자 하나를 발견한다.
둘은 상상력을 발휘해 의자를 여러 가지 용도로 변형시키며 놀기 시작한다.
의자 밑에 숨기도 하고, 책상이나 계산대로 변신시키기도 하고, 타고 놀기도 한다.
그들이 의자 하나를 가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놀고 있을 때,
이를 지켜보는 못마땅한 시선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낙타!
낙타가 '인상을 쓴 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에스카르빌과 샤부도에게 다가가 소리를 빽 지른다.
"아니, 머리들이 어떻게 된 거 아냐!"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의자는 말이야, 그 위에 앉으라고 있는 거야."
와우!
이렇게 완벽한 충.조.평.판이 또 있을까?!
낙타는 말 한 마디로, 충고와 조언과 평가와 판단을 다 해버렸다.
이쯤 되면 이것도 능력이다.
낙타의 타고난 충.조.평.판 능력은, 크게 두 가지 무지에서 비롯된다.
1) 낙타는 자신과 남들이 다르다는 것을 모른다.
2) 낙타는 자신의 생각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모른다.
낙타는 사람은 누구나 똑같다고 생각한다. 아니, 똑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때 '똑같아야 한다'의 기준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낙타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와 똑같을 거라고 착각한다.
따라서 자기와 같지 않은 사람을 보게 되면, 그가 잘못된 거라고 생각한다.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보게 되면, 그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서, A는 양파를 싫어한다.
양파는 너무 맵고, 냄새 나고, 기분 나쁘게 미끈덩거리는 데다가,
요리하면 형체 없이 흐물해져버리는 식감 때문에 싫어한다.
A는 이것이 양파를 싫어할 수밖에 없는 굉장히 논리적이고, 당연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누구라도 이런 점들을 안다면 양파를 싫어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말이다.
그런데 B는 양파를 너무 좋아한다.
심지어 모든 요리에 양파를 넣어서 먹고 싶어할 정도다.
이럴 경우, A는 B가 양파를 먹는 모습을 보면서 인상을 쓴다.
B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A는 저렇게 이상한 걸 먹어대는 B는 분명히 이상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한다.
후각이나 미각이 마비됐거나, 아니면 머리가 어떻게 된 게 틀림없다고 말이다.
제 정신이 아닌 다음에는 절대로 양파 따위를 좋아할 순 없을 거라고 A는 확신한다.
만약 A가 소극적인 사람이라면, 혼자서 속으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B는 정말 이상해. 이해할 수 없어. B는 미친 게 아닐까?'
하지만 A가 누군가의 무지함을 잠자코 두고 볼 수 없는 성격의 사람이라면,
그는 B를 향해 소리를 빽 지를 것이다.
"양파는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구! 양파는 정말 최악의 식품이야. 이걸 보고도 모르겠니?
도대체 넌 어떻게 양파를 좋아할 수가 있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양파는 누군가에겐 아주 불쾌한 음식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겐 아주 맛있는 음식일 수도 있다.
누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그냥 너와 내가 다르듯이, 너와 나의 취향도 다른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 내 취향, 내 판단이 옳고, 너의 생각, 너의 취향, 너의 판단이 틀리다고,
감히 말하는 순간, '충. 조. 평.판'은 아주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다.
충. 조. 평. 판은 무지에서 비롯된다.
사람은 누구나 다 각각의 모습으로 다르다는 것을 모를 때,
우리가 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생각과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모를 때,
우리는 함부로 남을 평가하고 판단해서, 내 식대로 충고와 조언을 남발하게 된다.
"넌 어떻게 이렇게 다 갖춰진 환경에서도 공부를 안 할 수가 있어? 내가 어렸을 땐, 책이 없어서..."
"넌 어떻게 그런 불필요한 것을 사는 데 돈을 쓸 수가 있어? 이따위 조그만 장난감이 무슨 쓸모가 있다구!"
"밀가루는 몸에 안 좋아. 어떻게 넌 피자나 라면 따위를 좋아할 수가 있어?"
"어떻게 넌 이런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밖에 나올 수가 있어? 남들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니?"
"어떻게 넌 그런 사람을 지지할 수 있어? 미친 거 아니니?"
"내가 너한테 지금까지 얼마나 잘해줬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니가 인간이니?"
모른다.
우리는 모른다.
우리는 상대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됐는지,
왜 이렇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묻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그 사람에 대해 평가하고 판단해서, 조언과 충고를 날릴 것이 아니라,
물어봐야 한다.
그의 생각이 어떤지, 그의 느낌이 어떤지, 그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상대방에게 다가가 묻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싫어한다.
우리는 나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이유야 뭐건 간에, 그냥 내 마음에 안 들면 무턱대고 미워하고, 경멸하는 걸 좋아한다.
나와 다르면 일단 선 긋고 밀어내는 걸 더 편하게 생각한다.
괜히 알려고 하면 머리만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그냥 쉽게 미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 하나 먹고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남의 이유 따위를 궁금해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에 '충.조.평.판'이 이토록 넘실거리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의자는 앉는 것이라며,
파란 의자 위에 턱 하니 앉아 움직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낙타를 보며,
에스카르빌과 샤부도는 이렇게 말한다.
"에이, 우린 가자. 이 낙타는 상상력이라고는 통 없는 거 같다."
그리고 그들은 낙타를 떠난다.
남을 이해하는 상상력이 없는 사람은 결국 혼자 남게 되기 마련이다.
누구도 그런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