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우연히 스토커가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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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지금 생각해보면 여중, 여고 시절에 남자 선생님들 좋아해서 쫓아다녔던 내 모습이,
적잖이 스토커스러웠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보다는 선생님 보러 학교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의 일거수 일투족을 꿰고 있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요즘의 덕질과 매우 흡사한 형태이다)
선생님이 저녁 자율학습 당번 서시는 날,
선생님이 아침 학생 지도 서시는 날,
선생님이 출퇴근하시는 시간,
선생님의 차 종류와 색깔, 차 번호,
선생님의 수업 시간표,
이런 것들을 당연히 다 알고 있었고,
선생님이 움직이시는 동선에 맞춰서 딱 그 앞에 서 있다가,
우연을 가장하여 인사 드리면서 눈 한 번 맞추는 게 내 즐거움이었다.
(내가 그 짓을 하는 걸 쌤이 모르셨을 리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나는 매번 짜릿했었다)
게다가 선물 공세는 또 얼마나 대단했던가!
학생 때라 용돈이 늘 부족했던 시절이었으니,
돈으로 살 수 있는 선물보다는, 정성으로 밀어붙였었다.
낙엽에 시 또는 편지를 써서 코팅해서 드리고,
내 마음을 담은 노래들을 mixed tape으로 만들어드리고,
아침에 학생지도 서실 때 추우실까봐 보온병에 따뜻한 차를 담아서 가져가고,
선생님한테 잘 보이려고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 나오면 성적표도 보여드리고...
괜히 모르는 질문 만들어서 교무실로 찾아가서는, 슬쩍 사과 한 개 놓고 나오고...
순수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해서 어쩔 줄 모르는 것,
자꾸 더 보고 싶고, 우연을 가장해서라도 만나고 싶고,
관계를 진전시킬 어떤 건수를 계속 만들고 싶어하는 마음,
결코 나쁘다고도, 이상하다고도 할 수 없는 거긴 한데,
여기서 한 순간에 스토커로 변질되는 것은, 결정적으로 상대방의 나에 대한 마음이 어떤가이다.
상대방이 나에 대한 우호적인 감정이 있거나,
혹은 그렇진 않아도 나를 용인해줄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괜찮은데,
상대방이 나를 싫어하거나 부담스러워한다면,
나의 모든 행동들은 바로 스토킹 행위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ㅠ.ㅠ
원치 않는 상대에게 원치 않는 행동을 계속하는 것, 이게 바로 스토킹이니까 말이다.
여중이나 여고에서 근무하는 남자 선생님들에게,
학생들의 애정 공세는 피할 수 없는 숙명 중 하나이겠지만,
그래도 스토커 같은 나의 무차별적인 애정 공세를
견뎌주시고, 이해해주시고, 받아넘겨주신 과거의 모든 선생님들께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이젠 어른이 됐으니,
순수한 의도 따위는 먹히지 않을 거고,
어디까지나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 한다.
내 마음만큼이나 상대방의 마음을 중요시 여기면서 말이다.
아닌 건 아닌 거니까,
빨리 포기할 줄도 아는 것이 도리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