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십대 소녀다. 친구가 누가 봐도 위험한 지하 배수로 근처에서 남자를 만나라고 한다. 집에서 어떻게 빠져나오겠는가? 도착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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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소리여...
낮에도 지하 배수로 근처는 얼씬거리지도 않을 텐데,
'누가 봐도 위험한 지하 배수로 근처'에 왜 가냐고?
게다가 거기 가서 남자를 만나라고?
아니, 친구가 그러라고 한다고 정말로 간다고?
이건 완전 말이 안 되지 않나?
친구에게 뭔가 약점 잡힌 게 없다면 이런 행동을 할 필요가 없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약점이 뭐든 간에,
설령 자기 말을 안 들으면 폭로하겠다고 친구가 협박한다 해도,
내가 그걸 감수하겠다는 결심을 하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응할 필요가 없다.
내가 책임지겠다는 결심을 하면 이런 이상한 요구에 따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내가 그 약점을 숨기고 싶어할 때,
그때 비로소 그 약점은 정말로 약점이 되어버리고,
남이 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만능 요술봉이 되어버린다.
십대 소녀가 이 커다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숨기고 싶은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잠깐의 실수로 잘못된 길을 가는 바람에,
끊임없이 무시무시한 협박을 받아서,
결국은 어쩔 수 없이 수치스러운 동영상을 찍어서 보냈고,
그 동영상으로 더 발목이 잡혀 험한 지경으로 내몰리고 마는 십대 소녀들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부모님께 혼나는 게 무섭더라도,
일이 잘못 되어가는 느낌이 들 때 바로 말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돈을 잃었더라도, 나쁜 일에 엮였더라도, 어리석은 행동을 했었더라도,
그래서 부모님께 욕을 진탕 먹고, 두드려맞을 가능성이 농후하더라도, 평생 미움 받을까봐 두렵더라도,
그래도 미리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기 전에,
적어도 주변의 누군가에게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십대 소녀에겐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진다거나, 폭로의 위험을 감수하려는 결심을 하는 건 물론이고,
부모님이나 누군가에게 자신의 한때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솔직히 고백하는 것도 너무 겁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누가 봐도 위험한 지하 배수로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할 수만 있다면 중간에서 길을 막고 얘기를 들어주고 싶다.
정말 다른 방법은 없을지, 끝내 이 길을 가면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봤는지,
지금 가장 두려운 건 무엇인지,
십대 소녀의 손을 꼭 붙들고 주저앉혀서 모든 얘기를 들어주고 싶다.
만약 지하 배수로로 가려고 하는 소녀를 알아볼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