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솔직하게 말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좋다? 아니면 나쁘다?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아니다?
그럼, 당신은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인가?
나는 예전에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란,
진실을 말하는 것, 팩트를 있는 그대로, 가감없이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감정이나 목적에 따라 조금이라도 뭘 덧붙이거나 하면, 그건 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즉, 나는 순도 100%의 진실 외에는 다 거짓이라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삶이 힘들었다.
100% 솔직하게 이야기 해야 하는데, 그래야 진실된 사람이 될 수 있는데,
그렇게 있는 그대로 다 이야기 했다가는,
듣는 사람이 난리가 날 것이고, 사회 생활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내린 결론이 이거였다.
'사회 생활을 잘 하는 사람 = 가식 덩어리'
거지 같은 상사에게도 "멋지십니다, 부장님!"이라고 말할 수 있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맘에 없는 말도 얼마든지 꾸며서 할 수 있고)
죽도록 하기 싫은 일도 "괜찮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하고,
(내 생각과, 느낌, 감정을 짓밟아야 하고)
문제가 뻔히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 "다 잘 될 거야!"라고도 할 수 있어야 한다면...
(이거야말로 명백한 거짓말 아닌가!)
나에게 사회 생활을 한다는 것은 거의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는데도 사람들이 그걸 믿고 좋아한다는 것 자체도,
너무나 절망스럽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솔직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건지 막막하기만 했다.
난 솔직하고 싶은데,
난 진실하고 싶은데,
그러면 안 된다고 하니, 진짜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었다.
그때 만난 그림책이 바로 "나는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야!"였다.
주인공 리비는 어느 날 엄마한테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다가, 금방 들통이 나고 만다.
엄마한테 된통 혼나고 마음이 무거워진 착한 리비는, 그날 부로 큰 결심을 한다.
"이제부터는 꼭 사실대로만 말할 거야!"
그리고 정말로 다음날 학교에 가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사실대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친구의 스타킹에 구멍 났다고 말해주고,
옆자리 친구가 숙제를 안 해온 것을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반 친구가 가난해서 선생님이 대신 급식비를 내준 것까지 아이들에게 다 말해버린다.
왜? 그게 진실이니까! 그게 사실이니까!
그 결과, 리비는 하루만에 철저하게 왕따가 되어버리고 만다.
"리비는 아무리 이리저리 생각해 봐도 영문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도 리비처럼 '사실대로만 말하기'를 하면서 하루를 살면 어떻게 될까?
"부장님, 당신처럼 무능력한 분은 처음 봅니다."
"어머니, 당신의 음식은 정말 맛이 없습니다."
"여보, 착각하지 마요. 당신 정도는 좋은 남편/아내 축에는 끼지도 못 하는 사람이에요."
"친구야, 아무리 노력해도 넌 이 일을 잘 할 수 없어. 그러니까 그냥 포기해."
"아들아/딸아, 넌 정말 머리가 나쁘구나. 이번 생은 아무래도 망한 것 같다."
와우!
정말이지 아무도 내 곁에 있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이거야말로 코미디 영화나 판타지 영화에 나올 법한 소재라고 할 수 있다.
우린 현실에서 이렇게 살 순 없다. 이렇게 살아서도 안 되고. 왜?
내가 생각하는 이 '진실'이라는 것이 '절대적 진실'이 아니라, '상대적 진실'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 같은 절대적 진실이 아니라,
그저 내가 생각하는 진실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위에서 말했던 예를 들어서 하나하나 따져보자.
당신의 부장님은 정말로 무능력한 사람인가?
아마 당신은 신나서 부장님이 무능력한 사람이라는 증거를 스무 가지 이상 늘어놓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진실인가?
부장님은 그 분야에서 경력이 40년이고, 당신은 이제 겨우 5년차라고 치자.
당신의 눈에 비친 부장님의 모습이 과연 그 사람의 전부일까?
당신이 몰라서 보지 못하고 있는 부분은 하나도 없을까?
당신이 보기엔 무능력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장님이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당신이 모르는 부장님만의 능력이 있는 게 아닐까?
설령 그것이 로비/접대를 잘 한다거나, 능수능란하게 거짓말을 한다거나 하는 부정적인 능력일지라도,
그것도 일종의 능력 아닌가?
착하고 정당한 능력만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당신의 기준에 맞춰서,
부장님은 무조건 무능력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그것이 정말 진실인가?
또 당신의 친구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3년 넘게 고시를 붙들고 있는 친구가 있다 치자.
당신이 볼 때 친구는 그 일에 가망이 없고, 헛된 노력을 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진실인가?
당신은 그 친구의 능력과 적성과 미래의 결과까지 확신할 수 있는가?
당신이 생각하는 친구의 모습이 정말로 진실인가?
그냥 당신의 생각이 그런 것일 뿐 아닐까?
그림책 "'나는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야!"에는 이런 에피소드가 나온다.
리비네 옆집에 사는 할머니가 리비에게 묻는다.
"얘야, 우리 집 정원 예쁘지 않니?"
그러자 리비는 사실대로 이렇게 말한다.
"아주머니 마당은... 마치... 그러니까... 밀림 같아요."
당연히 할머니는 노발대발하며 집으로 들어가버렸다.
자, 할머니의 정원이 예쁘지 않은 것은 진실인가?
아니다.
할머니의 정원은 할머니 눈엔 예쁘다.
할머니의 정원은 리비의 눈엔 밀림이다.
이것이 바로 '상대적 진실'이다.
할머니의 진실과 리비의 진실이 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생각하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상대방에겐 진실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진실을 말했다고 생각했어도, 상대방은 불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건 진실을 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만으로 타인을 단정짓고, 함부로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솔직하기만 한 게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나의 상대적 진실로, 타인을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앞으론 내가 솔직하네, 아니네 그것부터 따지기 전에,
과연 내가 말하려는 이 진실이 절대적 진실인지, 상대적 진실인지부터 따져봐야 할 것이다.
만약 그것이 정말로 절대적 진실이라면,
그땐 조금 더 상대를 배려해서 조심스럽게 전달하면 될 것이다.
이 그림책의 부제인 '예쁘게 진실을 말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