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이 세상을 보는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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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앞이 안 보이는 한의사 선생님께 치료를 받았었다.
10년도 훨씬 전,
사촌동생의 소개로 그 분을 처음 만났던 그 날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분은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는데,
워낙 용하다는 소문을 듣고 간 거긴 했지만,
그래도 앞이 안 보이는 분한테 내 몸의 치료를 맡긴다는 게 정말 괜찮을까 상당히 불안했었다.
그랬는데 그 분은 내 손을 만져보시더니,
“일이라고는 겨우 책장 넘기는 일밖에 안 한 손이구만!” 하시는데,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속으로 귀신이다! 이러면서 말이다.
그 분은 앞을 못 보는 대신 청각이 발달해서, 목소리로 그 수많은 환자들을 다 구분하셨고,
머리가 얼마나 좋으신지
한약을 받을 주소랑 연락처를 불러드리면 몇 번 되뇌어 보고 그 자리에서 바로 외우셨다.
어디 그 뿐인가, 환자들의 예약 현황도 머릿속에 다 들어있어서,
"그 날은 예약이 있으니 오후 3시에 와", 이런 식으로 스케쥴 조절도 보지 않고 다 하신다.
특히 목소리로 그 사람의 기분 상태나 몸 상태를 귀신처럼 알아맞히는데,
내가 한껏 높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이렇게 괜찮은 척을 하고 들어가도,
“근데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무슨 일 있었어?” 하실 때면,
진짜 숨길 수가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선생님 앞에선 무장해제가 되어 버린다.
그 분은 라디오로 세상 소식을 전해듣고,
환자들의 이야기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들으신다.
예민한 손끝으로 몸의 소리를 읽어내고,
보지 않고서도 나를 이해한다.
그 분 앞에 설 때면,
늘 궁금했었다.
그 분의 마음속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저장되어 있을지.
그저 몸의 형태와 목소리와 함께 나눈 기억들로 이루어진 나는 그분에게 어떤 존재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