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시 후 당신은 토크쇼에 출연한다. 무대 뒤에서 PD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당신에게 묻는다. 사회자가 그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게 하기 위해서다. TV에 나와서 말하는 것처럼 그 이야기를 써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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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라...
친구들한테는 자주 얘기해주었던 이야기인데,
때는 2005년,
뮤지컬 작가 입봉을 앞두고 '겨울나그네' 대본을 각색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작가란, 자고로 산 속 외진 곳에 혼자 틀어박혀서 글을 쓰는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던 나는,
제대로 된 작가가 되기 위해서(?) 강원도 영월 동강 근처의 외진 곳에 숙소를 잡고, 글을 쓰러 떠났다.
숙소 밑에 닭도리탕 식당이 있는 걸 인터넷으로 확인하고 갔었는데,
막상 가보니 비수기여서 식당이 문을 닫았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차도 없이, 버스 타고, 택시 타고 찾아갔던 나로서는 당장 끼니를 때우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게다가 그날 그 펜션엔 손님이 나밖에 없었다.
식당이 있는 줄 알고 먹을 걸 아무것도 안 가져간 나로서는 그야말로 대략 난감이었다.
다행히 맘씨 좋은 펜션 사장님께서 읍내 나가시는 길에 통닭 한 마리를 사다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어찌어찌 끼니 걱정을 해결하고나서,
작가란, 모름지기 산책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라는 이미지에 의거해,
곧바로 동강 강변으로 산책을 나갔다.
강변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대본 아이디어를 떠올릴 계획이었는데,
막상 강변으로 내려가보니 온통 자갈밭 천지였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으악! 으악!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돌들이 뾰족하고 미끄러워서,
생각은 고사하고 걷기조차 힘든 길이었다.
하지만 나는 작가니까!
계속 걸었다.
중간에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아야, 아야, 하면서 계속 걸었다.
나는 작가니까!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길이 끊겨 있었다.
더이상 앞으로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뒤를 돌았는데...
아, 그때 정말 기절하는 줄 알았다.
내가 걸어온 길이...
그 사이 비가 많이 내리면서 강이 불어나 실시간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거다.
조금만 더 지체했다간 아예 길이 없어지게 생긴 거다!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자갈들 때문에 힘들게 40분 이상 비명 지르며 걸어온 길이었건만,
그때는 생명의 위험을 느낀 관계로,
그야말로 숙소까지 미친 듯이 달렸다.
여기서 죽으면 진짜 시체도 못 찾겠다 싶어서, 전력을 다해 뛰었다.
혼비백산해서 언덕을 기어올라가 숙소 앞에 이르니,
겨우 10분 지나있더라. 헉헉헉헉헉....
그러고나니 온 몸은 땀 범벅에,
기운은 완전히 소진되서 방바닥에 널부러졌다.
마침 펜션 사장님이 사다주신 통닭 한 마리를 TV 보면서 걸신 들린 것처럼 해치우고,
밤에는 천정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왕거미 때문에 무서워서 한 숨도 못 잤다.
그렇게 나는...
대본 한 글자도 못 써보고 영월에서 집으로 돌아왔다...는 얘기.
아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