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 몰라요. ('천만의 말씀')

by 마하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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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기에 대해서 가장 잘 안다. 내가 잘하는 것, 내가 못하는 것, 나한테 있는 것, 나한테 없는 것 등에 대해 말이다. (물론 이것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지만, 일단 대체로 잘 안다고 치고!) 왜? 평생 동안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알아가고, 좌절하고, 한심해 하면서 자라왔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자신의 단점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사람은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을 더 오래, 잘 기억하는 법이다. 왜냐하면 모자라고 부족해서 곤경에 처할 경우에 느껴지는 당혹감이나 수치심이, 뭔가를 잘 해서 얻은 기쁨이나 행복보다 더 크게, 충격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없는 것, 자기에게 부족한 것에 초점을 맞추고 살게 되고, 자연스럽게 나에겐 없지만 다른 사람에겐 있는 것을 부러워하기 시작한다. 아이는 코뿔소의 강한 가죽을 부러워하고, 코뿔소는 토끼의 가벼움을 부러워하고, 토끼는 고래의 커다란 크기를 부러워하고, 고래는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기린을 부러워하고, 기린은 하늘을 나는 새의 자유로움을 부러워하고, 새는 도망치지 않아도 되는 사자의 강함을 부러워하고, 사자는 먹고 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아이를 부러워한다. 저것만 있다면 내 삶이 얼마나 더 편안하고 좋아질까 하고 상상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막상 누군가가 부러워하는 요소들을 이미 갖추고 있는 자들은 그것의 불편함에 대해 토로한다. 가죽은 무겁고, 몸은 너무 가볍고, 크기는 가늠이 안 되고, 목은 너무 길고, 날아서 도망다니는 것도, 먹고 살려고 애쓰는 것도 너무 힘든 것이다. 이건 실제로 그 특징을 직접 소유해본 자만이 알 수 있는 애로사항이다. 그런 삶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어려움이 또 있을 거라는 건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한 마디로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알 수가 없다. 겉으로 보기만 해서는 절대 모른다.


더 웃기는 것은 이렇게 ‘천만의 말씀’을 외치며 각자의 어려움을 하소연해도, 당사자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그래도 자기보다는 나을 거라며 여전히 부러움을 멈추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이렇궁 저렇궁 해도 그런 것들이 하나도 없는 자신의 고통이 가장 클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기도 하다. 나와 상관없는 먼 나라의 누군가가 전쟁으로 인해 폭격을 당해서 살이 찢어지고 불타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 하더라도,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엄청난 아픔보다는 지금 당장 내 손톱 밑에 박힌 가시가 더 고통스럽고, 당장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없는 나의 고통이 더 괴로운 법이다. 오로지 자신의 고통에만 몰입하기 때문에, 타인의 어려움은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대수롭게 여기지도 않는다.


사실상 우리 모두는 각자의 어려움 속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이다. 겉으론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잘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편안하고 행복하기만 한 존재는 단 하나도 없다. 우리를 서로 다르게 만들어주는 여러 가지 고유한 특성들이, 각자에게 고유한 어려움도 동시에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너무 고유한 나머지 타인들에게 이해받기 어렵고, 공유하기도 어렵다. 이게 다 서로의 삶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들이다. 이 그림책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여전히 자기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하며 살지도 모르나, 이 그림책을 읽은 우리 독자들은 ‘다들 나름대로 힘겹게 살고 있구먼’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기에 맨 처음 장면에 나왔던 동네 풍경과 맨 마지막에 나오는 동네 풍경은 완전히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다. 알고 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뭘 잘 모르면 언제나 나만 보인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다. 아는 게 나 하나로 국한되어 버린다. 심지어 한 집에서 함께 사는 부모나 형제, 자식에 대해서도 무심하게 된다. 언제나 내 고통이 제일 크기 때문에, 나의 고민에 매몰되어 주변이 보이지 않는다. 타인들은 다 나보다 사정이 나아 보이고, 걱정도 없어 보이고, 모든 일이 잘 되어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이야말로 엄청난 착각이다. 상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무것도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적반하장으로 이렇게 소리친다. “니들이 나에 대해 뭘 알아?!”


사람들은 항상 남들이 먼저 자기를 알아주길 바란다. 나에 대해 궁금해 하고, 나를 이해해주고, 나를 도와주길 바란다. 그렇게 자신을 먼저 알아줄 때에만 자기도 남들에 대해 알려는 노력을 조금 하게 된다. (물론 그렇지 않고 계속해서 자기 얘기만 들어주길 바라는 사람도 많다) 항상 이런 식이다. “네가 먼저 날 위해주면, 나도 널 위해서 뭔가를 해줄게.” 언제나 자기가 먼저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면, “내가 이렇게 외로운 건 다 너 때문이야, 네가 나한테 관심이 없기 때문이야!”라고 뒤집어씌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밖에 모른다. 인간은 이렇게 엄청나게 이기적이다. 계속해서 이렇게 살면 불행해지는 건 그저 시간 문제다. 내게 없는 것, 내가 원하는데도 가질 수 없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사는데 행복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 나를 부러워하는 존재들이 있다는 게 정말 놀라운 거다. 난 이렇게 힘든데, 이런 나를 부러워하다니! 그렇다면 그들에겐 없는 게, 나한테는 있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는 이 ‘나에게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다. 예를 들어, 코뿔소 가죽은 엄청나게 두껍고 무거워서 그걸 걸치고 다니는 것 자체가 고역이긴 하지만, 그만큼 강하고 질겨서 웬만한 충격에는 끄떡도 없다. 마치 탱크 안에 들어가 있는 느낌처럼 안전할 뿐 아니라, 위엄 있고 멋있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위험한 순간이 오면 그보다 더 든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내가 가진 것의 장점에 대해서도 단점만큼 잘 알고 있어야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일상에서는 감당하기가 조금 버겁더라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을 때 가장 안전한 보호 도구라는 것도 알고 있어야, 힘든 면을 기꺼이 견뎌낼 수가 있다.


사람의 경우도 바꿔서 생각해보자면, 호기심이 많은 사람의 경우, 관심이 늘 바뀌고, 이것저것 시도만 하지 뭐 하나 끝까지 하는 게 없다 보니, 스스로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가지기 힘들 수 있다. 별로 쓸모 있는, 좋은 자질 같은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호기심이 없는 사람은 새로운 것에 대해 관심도 없고, 도전 의욕도 없기 때문에, 삶이 맨날 거기서 거기, 똑같은 지점만 맴도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호기심이란 끊임없이 나의 세상을 확장시켜나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삶을 풍성하게 살기 위한 가장 소중한 요소를 가졌으니, 남은 건 호기심이 쓸데없이 산만한 것으로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도록, 호기심을 조절하는 일이다. 너무 쉽게 빠졌다가 쉽게 옮겨가지 않도록 조금은 자제하고, 조금은 더 인내하는 노력을 기울이면, ‘호기심’이라는 장점을 너무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명제는 이 경우에도 해당이 될 수 있겠다. 이렇게 태어난 이상, 나는 절대로 내가 아닌 것이 될 수 없다. 아무리 코뿔소와 새와 고래를 부러워한들, 그렇게 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부러워하는 인간으로서의 나의 장점과 약점을 균형 있게 파악한 후, 거기서 베스트를 뽑아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 인간에게만 가능한 일, 인간의 약점을 보완하고 인간의 강점을 최대화할 수 있는 일, 그걸 해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왜 이게 없을까’, 라고 한탄하는 시간에, ‘나는 이걸 가지고 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그게 바로 궁극적으로 나를 사랑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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