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 날다" (폴 스튜어트 / 제인 포터 / 키즈엠)

by 마하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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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모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누군가 이렇게 외친다. “나무 꼭대기에 맨 꼴찌로 오는 새는 바보!” 누가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새가 너무너무 싫다. 이렇게 말한 새는 분명히 말하자마자 곧바로 날아올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새들이 어어어~ 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잠깐 고민하다 우르르 날아오르기까지, 그 시간 차 만큼 본인이 가장 빨리, 가장 멀리 갈 수 있을 테니까. 즉, 본인에게 가장 유리한 게임을 제안한 것이다. 왜? 이기고 싶으니까. 자기가 제일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으니까. 그 목적 달성을 위해 새들을 한 줄로 순서대로, 점수를 매기고 싶어한다. 게다가 너무나 잔인하게도 맨 꼴찌로 오는 새는 바보라고까지 못을 박아둔다. 나는 이 지독히도 이기적인 발상이 싫다. 나는 이 새들이 단체로 “뭐야, 저건?”하면서 이런 제안을 한 새를 이상하게 바라봤으면 좋겠고, 아무도 그 새를 뒤따라 날아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혼자 날아가던 그 새가 뻘쭘해져서, 머쓱해져서, 무안해져서 돌아오길 바란다. 자기 혼자 튀어보겠다고 내세운 계획 따위에 다른 새들이 부화뇌동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왜 그래야 해? 왜 제일 늦게 온 새가 바보가 되야 해? 왜 우리가 네 제안대로 해야 되는 건데?”라고 제안을 거부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책장을 넘기자 모든 새들이 서둘러 날아오르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맨 처음 이 이상한 제안을 한 새의 마음속에 있는 바로 그 생각, 내가 제일 잘났다는 걸 증명하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 남을 이기고 싶은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가만히 있다가는 꼴찌로 날아가서 바보가 되고 말 테니까, 바보로 낙인찍히고 싶지 않은 마음, 1등은 못 하더라도 최소한 꼴찌는 하지 말아야한다는 절실함으로 모두 날아올랐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제안을 한 새는 참으로 교묘한 계략을 썼다. 아무도 자기 말을 거부할 수 없게끔 하는 그런 제안 말이다. 그 제안이 맘에 들지 않는다 해도, 까딱하면 바보가 될 판이니 움직이지 않고선 견딜 수 없게끔 만들어버렸다. 나는 최소한 한두 마리 정도는 날 수 있지만, 날지 않기로 결심한 새가 있어주길 바랐다. 마지막으로 남는 게 바보 같은 게 아니라, 그런 제안 자체가 바보 같은 거라고 말하면서, 응하지 않는 새들이 있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슬프게도 결국 조류이면서도 날 수 없는 펭귄만이 덩그마니 남고 말았다. 어쩌면 이런 제안을 한 새는 애초부터 날지 못하는 펭귄을 바보로 만들기 위해서 그런 걸 하자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맨 뒤에 누가 남게 될지 뻔히 알고 있을 테니까. 어쩌면 그 새는 펭귄이 날지도 못하는 주제에 자기들이랑 같이 어울리는 게 싫어서, 펭귄에게 자신의 처지를 명확하게 알려주기 위해서 일부러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게까지 나쁜 의도를 가진 새가 아니라고 한다면, 이런 장난을 쳤을 때 펭귄이 상처받을 수도 있다는 걸 몰랐던, 무신경한 새였거나. 혹은 펭귄이 날지 못한다는 사실을 정말로 몰랐을 수도 있겠고. 이유야 어땠든 간에, 나는 이런 식의 장난이 싫다. 자기 뜻대로 일방적으로 움직이길 바라는 강력한 뉘앙스를 지닌, 강요하는 그런 말들이 싫다. “내가 왜 그래야 해? 내가 왜 네 뜻대로 움직여야 해?” 하는 아주 심한 반발심이 든다. (그러나 나 또한 이렇게 내가 하고 싶고,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뭔가를 아무 생각없이 타인에게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는 있다. 항상 자기가 할 때는 잘 모르는 법이고, 이렇게 누군가가 싫다는 건, 그게 바로 나의 그림자일 수도 있는 거니까!)


암튼 그림책 초반부터 말도 안 되는 장난을 시작한 그 새에 대한 분노가 좀 가라앉고 나니, 이 책의 중간 부분은 그림책 ‘가만히 들어주었어’와 일맥상통하는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과 관련된 얘기라는 것이 알아진다. 알에서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날고 싶었다는 절실한 펭귄에게, 날지 못하는 새들(타조, 에뮤, 키위)은 하늘을 나는 건 흔한 거라고, 날개를 파닥거리는 건 바보 같다고, 높은 곳은 질색이라고 말한다. 펭귄이 꼭 날고 싶다고 하는데도, 나는 건 별로라고 얘기한다. 그가 하려는 행동에 대한 자기들 멋대로의 평가와 판단이다.


그런가 하면 아무리 연습해도 안 된다고 하소연하는 펭귄에게 앵무새는 “연습하면 돼!”라고 말한다. 울먹이는 펭귄에게 황새는 웃어야 좋은 일이 생긴다며 웃으라고 한다. 그들은 “어쨌든 힘내”라는 말을 남긴 채, 펭귄 앞에서 보란 듯이 날아간다. 이쯤 되면 친구라는 녀석들이 펭귄의 감정, 고통, 절실함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들은 펭귄의 마음을 모른다. 그리고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쯤 되면 과연 이들을 친구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다.


하지만 다행히 그들은 펭귄이 실제로 나는 행위를 경험할 수 있도록 밧줄에 묶어서 하늘을 날아보게 도와준다. 나는 그나마 이게 친구들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날고 싶어하니까, 근데 혼자서는 못 나니까, 하늘을 나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나는 이게 펭귄의 마음을 최대한 배려한, 친구들의 최선이라고 본다. 물론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겠지만, 일단 너무 날고 싶어하니 한 번 느낌만이라도 경험해볼 순 있는 거니까 말이다. 불운인지 행운인지 물에 빠진 펭귄이 자신이 물속에서 날아다닐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덕분에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잘 끝나긴 했으나, 우리가 남에게 선의로 던지는 많은 말들이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이 될 수 있음을 늘 조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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