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땃쥐가 다람쥐의 집에 찾아온다. 다람쥐는 아직도 자고 있는데 말이다. 그러면서 “네가 화내지 않으면 좋겠는데.”라고 말한다. 이른 아침에 찾아오는 게 무례한 짓이고, 게다가 다람쥐가 자고 있다는 걸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들어가도 되냐고 하는 건, 어떻게 보면 화를 불러일으키려는 굉장히 노골적인 행위가 아닐까? 그런데 말로는 “네가 화내지 않으면 좋겠는데.”라고 한다. 정말 다람쥐가 화내지 않길 바란다면, 이 시간에는 방문을 삼갔어야지. 안 그런가? 화낼 만한 상황을 자기가 만들어놓고서, “네가 화내지 않으면 좋겠는데.”라고 말하는 건 명백히 반어법이다.
땃쥐는 사실 다람쥐가 화를 내주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다. 왜? 지금 자기가 화가 나 있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부터 화가 나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의 화를 돋궈서 같이 터지고 싶어하는 거다. 다람쥐가 들어오라고 하자, “내가 들어가도 화내지 않을 거지?”라고 다시 묻는다. 이건 또 무슨 얘긴가? 땃쥐는 다람쥐가 화를 낼까봐 두려워하고 있는 건가? 화를 내지 않겠다고 분명히 약속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조심스러운 건가? 다람쥐가 화를 내면 집에 안 들어갈 건가? 충분히 화가 날만한 상황을 만들어놓고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화를 내지 않기를 바라는 건 이 얼마나 이상한 소망인가? 게다가 그걸 끊임없이 말로 확인하려드는 건 더더욱 이상하다.
땃쥐는 어제가 다람쥐 생일인 걸 알고 있었고, 일부러 선물을 가져오지 않고 왔다. 왜? 다람쥐의 화를 돋구려고. 땃쥐는 지금 자신에게 화를 내줄 대상을 찾고 있다. 혼나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의 화를 뒤집어쓰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화를 내도록 만들 수 있는 상황을 계속 찾고 있다. 이른 아침에 뻔히 자고 있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방문했다. 생일인 줄 알면서도 일부러 생일 선물을 가져오지 않았다. 케이크를 먹으면서 맛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맛없다고 말했다. 그런 식으로 계속 도발했지만, 다람쥐가 계속해서 화를 내지 않자, 이번에는 다람쥐가 솔직하지 않다고 비난하기 시작한다. 분명히 화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화가 안 났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고, 그건 나쁜 거고, 부끄러운 일이라며 발끈한다. 지금 화내고 싶어 미칠 지경이면서도, 그걸 숨기고 계속 남을 화내게 만들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게 누군데? 땃쥐야 말로 진짜 솔직하지 않은 주제에, 지금 엄한 사람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도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람쥐가 화를 내기는 커녕 뭔 말인지 이해도 못하고 멀뚱멀뚱 있으니까, 이젠 그야말로 생트집을 잡기 시작한다. 다람쥐 집은 분위기도 안 좋고, 여기 앉아있는 것조차 불편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렇게까지 했으면 다람쥐가 진짜 화가 났을 거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 말에도 다람쥐가 반응이 없자, 드디어 땃쥐가 폭발한다. “아니야, 넌 화났어!!!!!!!” 다람쥐 본인이 아무리 아니라고 하는데도 소용없다. 남의 집에서 남의 물건을 함부로 깨부수며 한 마디로 지랄발광을 한다. 별 거지 깽깽이 같은 짓을 다 하다가 결국 넘어져서 다치기까지 한다. 다람쥐는 땃쥐가 그러거나 말거나 딴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한참을 난리 부르스를 추던 땃쥐는 드디어 제 풀에 지쳐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우울한 모습으로 집에서 나간다. 지랄발광을 하면서 자기의 화를 풀어낸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수치심뿐이다.
그때 다람쥐가 떠나는 땃쥐를 향해 “아쉽다”라고 말한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다람쥐만 알겠지만, 땃쥐는 마지막까지도 어떻게든 다람쥐에게서 부정적인 뭔가를 발견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마치 다람쥐가 조금이라도 화를 내줘야만, 부정적인 느낌에 동참해줘야만 자기가 용서받고, 편해지고, 괜찮아질 수 있는 것처럼 간절하게 원한다. 하지만 그 말이 화가 나서 한 말이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해주자, 땃쥐는 더 실망해서 밖으로 나간다. 자기 의도대로 다람쥐를 조종하는데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이거야말로 투사적 동일시의 아주 적나라한 예가 아닌가 싶다. 다른 사람을 나 같이 만들려는 교묘한 조종. 그래서 내가 그런 게 아니라 네가 그런 거라고 뒤집어씌우려는 간사한 계교. 난 화가 나지 않았지만, 네가 화를 낸 거야, 혹은 난 화가 나지 않았지만, 결국 네가 나를 화나게 한 거야, 뭐 이런 거?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땃쥐는 상대를 내가 원하는 상태로 만들 수 있는, 상대를 도발하려는 의도를 지닌 말들로 계속 상대를 자극한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땃쥐는 포기하지 않고, 한 마디 더 던진다. “난 이제 다시는 너를 찾아가지 않을 거야.” 마치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듯, 다람쥐가 이 말에 마음이 흔들려서, 어떻게든 반응을 하게끔 만들려고 한다. 이번에 쓰는 방법은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거다. 다람쥐가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하고 되묻자, 땃쥐는 반색하며 “이제 기쁘니?”라고 묻는다. 와... 이게 정말 사람 잡는 말이다. 기쁘다고 하면, 곧바로 나쁜 놈 되는 거고, 기쁘지 않다고 하면, 땃쥐가 무너진다. 땃쥐의 완전한 실패이자, 땃쥐의 무기력이 정점으로 치닫는 순간이다. 아마도 땃쥐는 원래부터 자존감이라는 것도 없었겠지만, 그나마 있던 자존감도 이 말을 듣는 순간 0으로 수렴되어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그 어떤 짓을 해도 상대방에게 상처 하나 남길 수 없는 자신에 대한 무기력과 혐오, 가치 없음이 폭풍처럼 몰려왔을 것이다.
땃쥐는 다람쥐를 도발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 힘을 증명하려 했던 것 같다. 다람쥐를 도발해서 자기가 어쩔 수 없이 화를 낼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좋은 핑계거리도 만들고, 그래서 자기혐오에서도 벗어나려고 했던 거지. 땃쥐는 자기 안의 엄청난 화를 어떻게든 풀어내야했고, 그래서 자기가 욕먹지 않고 안전하게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을 만들려고 했던 거지. 내 탓이 아니라, 남 탓으로 몰면서 정당하게 화를 낼 수 있도록. 누굴 상대로 해야 안전할 것인가를 생각했을 때, 아마 가장 만만한 다람쥐였겠지. 자기보다 화가 더 많은 동물을 선택했다간 오히려 당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다람쥐가 이 정도로 화를 안 낼 줄은 미처 예상 못했을 것이고, 혼자 난리를 치다가 개쪽을 당하고 광인이 돼서 초라하게 퇴장하고 말았다. 그 와중에도 끝까지 어떻게든 자존심 하나 건져보려고 “이제 기쁘니”까지 던져보았지만, 마지막 한 마디까지 처절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대실패, 개망신, 개쪽, 쪽박이 아닐 수 없다. 본전도 못 건진 완벽한 폭망이었다.
결국 거꾸로 보면 이런 땃쥐 같은 사람들의 계략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다람쥐 같은 성인의 풍모를 가져야 한다는 뜻인데... 땃쥐의 온갖 계약을 완전히 무화시켜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말려들지 않는 것. 땃쥐가 원하는 대로 휘둘리지 않는 것. 땃쥐가 스스로 궤멸하도록 가만히 두고 보는 것. 생각할수록 대단한 내공이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매사에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이 잘 장착되어 있다면, 피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른 아침에 일찍 찾아올 수도 있지, 선물이야 안 줄 수도 있지, 케이크가 맛이 없을 수도 있지, 내가 솔직하지 않다고 오해할 수도 있지, 우리집 분위기가 싫을 수도 있지, 내가 화를 안 내니까 화가 날 수도 있지, 나를 다시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지...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뭐 또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다시 반대로 생각해보면, 땃쥐가 필승 전략이라고 생각했던 도발들, 예를 들어, 무례한 짓을 한다, 선물을 안 준다, 성의껏 내준 걸 맛없다고 한다, 상대방의 말과 성격을 비난한다, 무턱대고 싫다고 한다, 이런 것들이 보통 사람들에겐 다 먹힌다는 얘기다. 사람들이 대체로 이런 걸 싫어하고, 그래서 이런 말을 들으면 누구나 기분이 나빠져서 결국 참지 못하고 화를 내게 된다는 얘기인 거지. 부부 간에도 매일 살면서 이런 식으로 상대방이 싫어하는 말만 골라 하면서, 상대를 결국 폭발시키고, 그 모습을 보면서 역시 저런 인간과 사는 나는 불행한 게 맞아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싶다. 그게 바로 생지옥이겠지. 암튼 투사적 동일시의 가장 명료한 예를 찾아서 정말 기쁘다. 땃쥐는 정말이지... 투사적 동일시의 최강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