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을 잡아서 소유하려고 온갖 애를 쓰는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노래가 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에 나오는 ‘마리아(Maria)’라는 노래인데, 여기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절대 얌전하게 길들일 수 없는 수녀 마리아에 대해 다른 수녀들이 부르는 노래인데, 바로 이 가사다.
How do you solve a problem like Maria?
How do you catch a cloud and pin it down?
How do you keep a wave upon the sand?
How do you hold a moonbeam in your hand?
구름을 어떻게 잡아다 고정을 시켜놓느냐, 파도를 어떻게 모래위에 잡아두느냐, 달빛을 어떻게 손에 쥐고 있느냐, 이게 다 ‘어찌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얘기다. 아름답고 신기한 존재들, 그래서 갖고 싶어 미칠 것 같고, 어떻게든 길들여 내 곁에 두고 싶은, 나만 소유하고 싶은 그런 존재들. 하지만 그런 것일수록 누구 한 사람에게만 속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누리고 즐겨야 하는 것들인 경우가 많다.
어쩔 수 없다는 걸 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것에 더 집착하게 되는 이상한 심리. 그것이 우리를 매일매일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자신의 신념으로 자퇴를 하고 싶어하는 딸을 어떻게든 막고만 싶은 엄마, 사법고시가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도저히 포기가 안 돼서 20번째 다시 도전하는 고시생, 사랑이 식어서 이젠 떠나고 싶어하는 여자 친구를 어떻게든 마음을 돌려 잡아두려고 하는 남자, 병이 깊어져서 세상을 하직하려고 하는 늙은 지아비를 어떻게든 잘 간병해서 되살리고 싶어하는 늙은 아내, 이들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기를, 내 뜻대로 되길 바라는 그 욕심을 놓치 못하기 때문이다. 자식이 내가 원하는 그런 자식으로 커주길 바라는 욕심, 잘못된 목표라 할지라도 내가 한 번 설정한 목표에서 어떻게든 성공을 거두고 싶어하는 욕심, 상대가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아직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마음이 어떻든 상관없이 오직 내 욕심으로 그를 잡아두려 하는 연인, 죽음처럼 그야말로 어찌할 수 없는 것 앞에서도 헤어짐이 두려워서, 혼자 남을 것이 무서워서 어떻게든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려고 하는 욕심인 것이다.
이 책에는 ‘구름은 날아가려고 해’라는 문장이 반복해서 나온다. 그게 바로 구름의 본래적인 속성이다. 구름은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다. 그게 본성이다. 처음엔 잘 몰랐다 하더라도, 무슨 짓을 해도 구름이 날아가려고 하는 걸 보면, '아, 구름은 저걸 원하는구나' 하고 깨달아야 정상이다. 하지만 구름이 무엇을 원하는지 뻔히 잘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 내가 원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인간은 지독하게 이기적이다. 막말로 남이야 죽든 말든, 내가 좋고 행복하면 그만이다. 아무리 말로는 도덕을 논하고, 이치를 논한다 할지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서라면 엄청나게 잔인해질 수도 있는 게 바로 인간이다. 그렇기에 아이는 구름이 원하는 걸 다 알면서도, 자기가 구름을 가지기 위해 구름을 새장 속에 가둬버리고, 구름이 하염없이 우는 모습을 외면해버린다. 엄청나게 잔인하다.
어쩌면 인간이 세상에 나와 배워야하는 가장 힘든 진리가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세상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걸 배우는 일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걸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더 상반되게 ‘노력하면 무슨 일이든 이룰 수 있다’, ‘꿈을 크게 가지면 이루어진다’, 이렇게 가르친다. 심지어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이 속담으로 존재하고, 이걸 흔히 연인 관계에 적용해서 여자가 싫다고, 싫다고, 10번 이상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찍어서 죽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이런 말들은 수정되어야 한다. ‘노력해서 되는 일도 있고, 노력해도 안 되는 일도 있다’고. 이게 오히려 더 정확한 표현이다. 그리고 이 차이는 어디서 생기냐 하면, 내가 노력하려는 그 일, 그 상대가 나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가 포인트이다. 나에게 맞지 않는 일을 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 나랑 맞지 않는 사람한테 아무리 사랑을 퍼부어봤자, 그건 안 되는 일이다. 예를 들어, 나랑 성격이 비슷하고, 가치관이나 목표가 비슷한 자녀에게는, 내가 원하는 교육 방식을 주입했을 때 성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나와 너무도 다른 자녀에게 내가 원하는 교육 방식을 강요했을 때는, 오히려 엄청난 반발과 저항에 부딪혀서 끝내 자기 뜻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이게 바로 ‘노력해도 되는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 하는데, 상대야 어떻든 무조건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바로 독재고, 폭력이고, 무지이고, 어리석음이다. 실제로 딱 여기까지만 받아들일 수 있어도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수많은 괴로움들을 없앨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복잡한 걸 싫어한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무언가에 적용하는 것을 귀찮아한다. 그래서 이거면 이거, 저거면 저거, 이런 식으로 이분법적 사고를 좋아한다. 그래서 “모든 것은 내가 노력하기에 달려있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 가지 패턴으로만 직진한다. 상대가 어떻든, 그 일이 나에게 맞든 안 맞든, 될 때까지 밀어붙인다. 상대가 싫어하든 말든, 내가 그러다가 죽든 말든 상관없이 그냥 끝까지 밀고 나간다. 그 결과는 상대를 죽이거나, 내가 죽거나 둘 중 하나다. 이분법적 사고에 딱 맞는 이분법적 결과인 셈이다.
반대로 ‘세상일은 아무리 노력해봤자 내 뜻대로 되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해도 안 될 일이니 아예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사실 어떤 일은 노력하면 되는 일도 있는데, 그것조차도 애초에 포기해버린다. 그러면서 무기력과 염세주의에 빠진다. 이런 세상에 태어난 것을 한탄하면서, 막연히 여기 아닌 다른 세상만을 꿈꾼다. ‘이번 생은 망했다’로 결정지어 버리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들은 자기가 생각한 그대로 된다. 다른 일체의 가능성을 보려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이 자기를 망친 게 아니라, 자기가 세상에 대해 정확하게 몰라서 자기 스스로를 망친 건데도, 세상을 원망하고 저주하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그렇게 인생을 버린다.
정말 현명한 사람들은 안 되는 건 포기하고, 되는 건 끝까지 노력한다. 그래서 지혜가 최고의 가치인 것이다. 될 것과 안 될 것을 분별할 줄 아는 능력. 우리에겐 이것이 너무나 절실히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살면서 경험을 통해 이것을 분별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배워나갈 수밖에 없다. 되는 건 줄 알았는데 해보니 안 되는 걸 깨닫게 되고, 안 되는 줄 알았는데 해보니 되는 걸 깨달아가면서, 그렇게 지혜를 늘려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