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여우" (팀 마이어스/한성옥/보림)

by 마하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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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쇼는 왜 강가에 있는 벚나무의 버찌가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자기 먹을 것을 먹고, 자기 잘 만큼 자고, 자기 사는 대로 살면서, 자기 시를 썼’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 자기중심적이 되어버린 것일까? 사실 그림책 첫 장의 이 글귀를 보고 바쇼가 부러웠다. 자기 페이스대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남 눈치 보지 않고 사는 그런 삶이 멋져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장에서 여우가 버찌를 먹고 내려오는 걸 보면서 “이봐, 여우 친구! 버찌를 그냥 둬! 저리 가!”라고 소리를 지르는 장면에서 아연실색했다. 여긴 숲이다. 숲의 나무가 바쇼 개인의 것일 리가 없다. 숲속에 살면서 동물들과 공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나도 당연하게 아는 것을 어째서 위대한 시인이라는 자가 그것도 모르고, 버찌를 자기 것처럼 말하는지 정말 의아했다. 먼저 먹은 자가 임자라는 법이라도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중심적이라는 건 어쩌면 ‘함께’라는 개념이 희박해진 상태가 아닐까 싶다. 세상은 자기를 위해 존재하고, 자신은 모든 것의 중심이며, 따라서 세상 모든 것이 당연히 자기 뜻대로 되어야 한다고 정말로 믿는 상태? 그런데 그건 어쩌면 여우도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바쇼랑 부딪혔겠지. 둘 다 벚나무의 버찌가 자기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그러니까 대결을 하려고 하지. 여우는 “난 내가 먹고 싶을 때면 언제든 버찌를 먹을 거야.”라고 얘기하는데, 이게 어쩐지 바쇼가 자기 페이스대로 사는 그런 모습을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여우는 바쇼가 벚나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자기가 위대한 시인이라서 그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 여우들이 더 위대한 시인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자기들이 쓰다 남은 걸 인간의 귀에 속삭여준 거라고도 한다. 즉, 내가 너보다 더 낫고, 따라서 버찌를 먹을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늘 이런 식이다. 공유가 아닌 경쟁은, 항상 둘 중 하나만 승리하고, 다른 하나는 패배해야 한다. 둘 중 하나만 얻을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잃어야 한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반드시 자기가 더 잘났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한다. 비교를 통해, 경쟁을 통해, 싸움을 통해, 한 사람이 우위에 서서 밑에 있는 사람을 눌러줘야만 끝난다. 그렇기 때문에 난데없이 여우와 바쇼 사이에서 시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바쇼가 처음 여우가 버찌를 먹는 것을 발견했던 그 순간, “이봐, 여우 친구! 안녕하신가? 늦여름 버찌 맛이 정말 끝내주지 않는가?”라고 반응했다면 어땠을까? 그럼 둘이서 나란히 나무 기둥에 앉아 버찌를 나눠 먹으면서, 버찌의 단맛에 대해 주거니 받거니 시를 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서로를 위대한 시인이라고 추켜올려주며 피차 기분 좋게 그 자리를 떠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바로 이 그림책의 엔딩 장면처럼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우와 바쇼는 서로를 버찌를 두고 싸워야 하는 경쟁자로, 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쓸데없는 기 싸움이 시작되었다. 바쇼는 여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먹었던 버찌를 먹기 위해선 자기가 위대한 시인이라는 것을 여우에게 증명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여우가 어떤 취향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여우가 만족하는 시를 써내야 하는 부담도 얻었다. 자유롭게 원하는 시를 쓰던 바쇼가 삽시간에 괴로워하면서 시를 쓰게 되었다. 그의 얼굴이 괴로움에 점점 일그러지는 게 그 증거다. 버찌를 독점하기 위한, 여우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버리기 위한 그의 욕심이 초래한 괴로움이었다. 버찌는 여전히 다 따먹을 수 없을 만큼 나무에 잔뜩 매달려 있는데도 말이다. 마치 그게 한정적이어서 승자만 먹을 수 있는 것처럼. 정말 치사한 싸움이 아닐 수 없다. 자기만 버찌를 먹기 위해, 여우를 못 먹게 하기 위한 시 싸움이라니!


쌤통인 것은 바쇼는 여우에게 좋은 시라고 인정을 받지 못한다. 자기 스스로를 ‘위대한 시인’이라고 지칭한 자의 말로가 바로 이렇다.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그것을 증명해야 하는 위험을 얻는다. 남들이 위대하다고 말해주는 건, 그들의 생각이니 나와 상관이 없지만, 내가 스스로 위대하다 칭하는 순간, 타인은 그걸 증명해보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인의 취향이란 말 그대로 들쭉날쭉 제멋대로이고, 위대한 시라는 것 또한 명확한 기준이 없긴 마찬가지이다. 결국 바쇼는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난국, 수렁에 빠진 것이다. 버찌를 혼자 다 먹겠다는 욕심 때문에!


게다가 나중에 드러난 여우의 취향이란, 그저 시 속에 여우가 들어가기만 하면 무조건 좋아하는 수준이었다. 이전의 시가 꼭 나빴던 것이 아니란 얘기다. (물론 나는 마지막 여우 꼬리가 들어간 시가 제일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가 몇 달 동안 애쓴 게 무의미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든 그로 인해 바쇼는 위대한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지키게 되었다. 여우들이 별로 대단한 시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에. 그래서 마음이 여유로워졌는지, 바쇼는 약속과는 달리 여우들과 버찌를 나눠먹기로 한다.


나는 바쇼가 자신이 위대한 시인이라는 걸 확인하는 것에서 글이 끝나지 않고, 애초에 버찌를 독점하고, 자신을 위대함을 증명하려고 했던 욕심과 어리석음을 반성하길 바랐는데, 그건 아니어서 좀 아쉽다. 애초에 욕심 부리지 말고,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기지도 않았다면, 그 고생을 굳이 사서 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말이다. 이 이야기를 한 줄로 표현하자면 ‘욕심이 시인 잡네!’ 정도로 하고 싶다. 이 이야기를 통해 나는, 자연은 늘 넉넉하고 풍요로우며, 인간은 다른 생명체들과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하며, 위대함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바쇼의 시는 참 멋지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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