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원 Jan 30. 2020

<뮤지컬 팬레터>의 섬세한 상처치료 -만병통치 옥도정기

아까징끼 옥도정기 포비돈, 너의 진짜 얼굴은 히카루 혹은 세훈 누구니?

공연제작사 라이브가 제작하는 팬레터는 일제강점기 문인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라이브가 운영하는 창작 뮤지컬 공모 프로그램인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를 통해 개발된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1930년대 소설과 김유정과 이상, 문인들의 모임인 '구인회'를 모티브 삼았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 2018년에는 해당 작품을 그대로 대만에 수출, 공연한 것은 물론 상해 공연 또한 마쳤다. 한국의 아픈 역사를 소재로 한국에서 만들어낸 뮤지컬을 1930년대의 아픔을 같이 한 동아시아 문화권에 수출한 사례이자,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뮤지컬을 들여와 라이선스 공연하던 나라에서, 먼저 좋은 작품을 만들어 해외로 보낼 수 있는 국가로 위상이 변모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실존 인물과 가상의 인물이 뒤섞인 뮤지컬 팬레터(2019.11.07~2020.02.02,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비록 이름은 바뀌었지만, 누가 모티브가 되었는지 번뜩 떠오르는 인물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구인회 대신 무대에 오르는 칠인회의 구성원들이 누가 우리 동인지에 들어오기로 했고, 누구를 영입할 것인지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중에는 실제 9인회의 멤버였던 시인 정지용을 비롯, 간간히 중고등학교 시절 문학시간에 들어봄직한 유명 문인들이 등장해 어디 제대로 배웠는지를 시험받는 느낌을 들게 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 문학마저 탄압의 대상이 되던 그때의 문인들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 팬레터는 그래서 캐스팅보드라는 말 대신 오늘의 문인들이라는 단어로 당일 캐스팅을 소개한다

그중 1막의 6번째 넘버인 '그녀를 만나면'에서 

얼굴 한 번 본 적 없다고 아무리 놀려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김해진의 연인이자 뮤즈인 히카루에게 보내는 연서를 이야기하다, 놀란 세훈은 정리하던 종이에 손을 베고 만다. 


"아..."
" 왜 그래? 베었니?? 녀석 조심해야지... 어디 보자.. 아이고  크게 베었네... 앉아봐라... 너 종이 조심해야 한다.. 종이에 베인 게 칼에 베인 것보다 아픔이 오래가거든. 이상하지? 칼도 아닌 것이 말이야... 아마도 흰 종이에 쓴 글이 마음속에 더 깊이 박혀서 그런가 보다... 다됐다... 왜?? 뭐 할 말 있니??"
" 아니...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가르쳐 주시면 안 될까 싶어서..."
" 글은 쓰고 있니??"
" 예..."

세훈은 작가 지망생이다. 그에게도 소설가 김해진은 동경해 마지않는 인물임은 물론이다. 일제 강점기 우리말과 우리글을 사랑해 우리말 잡지를 품고 다녔다는 이유로 유학 중이던 동경 학교의 동급생(일본인)을 때려, 한국으로 쫓겨오게 된다. 일본으로 돌아가길 종용하는 아버지의 의사에 반해, 가출해 명일 일보의 편집실에서 급사 노릇을 하며 칠인회의 멤버들과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역할이다. 

초연부터 수남 역을 맡았던, 이승현 배우는 가장 마음에 드는 가사 혹은 대사로 '그녀를 만나면'의 일부를 꼽았다. (ⓒStage Talk)

그런 해진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 흰 종이에 쓰인 글이 마음에 더 박혀서인지, 종이 때문에 깊이 베인 세훈에게 서랍 속에서 옥도정기를 꺼내어 발라주시는 자상한 해진 선생님. 자연스레 해진의 손이 옥도정기로 향했을 만큼 

1930년대 옥도정기는 가정에 회사에서 외과적 응급처치를 위해 꼭 갖추어야 할 일종의 만병통치약이었다. 
뮤지컬 팬레터 프레스콜-종이에 손을 베인 세훈(문성일 분)의 손에 그 시절의 만병통치약, 옥도정기를 발라주는 해진 선생님(김종구 분). 오늘 글의 소재, 옥도정기다(ⓒ글로벌문화뉴스

옥도정기는 일본에서 왔다. 
옥도는 아이오딘(요오드, Iodine)을 뜻하는 일본어이고, 정기는 Tincture의 일본식 발음이다. 립 틴트 혹은 일부 바르는 외용약에서 말하는 틴크제(안타깝게도 너무 오래도록 고유명사로 굳어진 나머지 대한민국약전 제11 개정에서도 여전히 틴크 제로 쓰인다. 현재 틴크제의 사전적 정의는 '보통 생약을 에탄올 또는 에탄올과 정제수의 혼합액으로 침출 하여 만든 액상의 제제'이다)가 이것이다. 


현재 쓰이고 있는 만큼의 많은 약물이 개발되기 전, 생약에 의존하거나 막 합성의약품이 공장에서 만들어 지기 시작한 그때에는, 그때 그때 달여먹거나 캐먹는 생약제제가 아닌, 상점에서 사다 두고 쓸 수 있는 약이 많지 않다 보니, 실제로 어디가 아파도 '빨간 약' 바르면 괜찮다 하는 말들이 횡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빨간약이 아까징끼라고 하기도 옥도정기 라고 하기도 했었다는데, 둘은 같은 것일까? 
1939년 10월 5일 동아일보 5면, 머큐로크롬을 홍보하는 내용 중 옥도정기가 등장한다 - (ⓒ동아일보/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엄밀히 말하면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다만 현재 사용되는 소독약인 포비돈 요오드의 도입 이전 쓰이던 1세대 외용제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머큐로크롬의 상품명에서 유래한 아까징끼,

요오드팅크의 성분명의 일본식 발음인 옥도정기가 그 답이다. 


당시 기사 내용에 따르면, 옥도정기를 바르면 매우 따끔했던 것, 그것이 빨간약에 대한 어르신들의 향수 아닌 향수로 남은 것 같다. 

잘못하면 우숩게 생각하던 상처로 미균이들어가패혈증으로 변해가지고생명을 일른일도 잇어 너머 엄청난일을 당하는 때도 잇습니다. 또 몹시 상해서 위태하게 생각하던 것이 오히려 일없이낫는 경우가 잇습니다. 너머져서 보통 베껴지기나햇으면 옥시풀로 소독한 다음'마큐로크롬(빩안물약)'을 발러두면 그만입니다. 옥도정기도 조흐나 몹시 앞어서 견디지 못합니다. 

아까징끼는 붉은 물약을 뜻하는 말로 성분은 메르브로민으로 1919년  미국 존스홉킨스 병원의 의사 휴.H.영에 의해 상용화되어, 금세 옥도정기의 경쟁자로 급부상하게 된다. 위 광고처럼 말이다. 관습적으로 써오던 옥도정기와 새로 나온 아까징끼 사이에서 고민하던 사람들이 꽤 많았던 것인지 1961년 3월 3일 자 경향신문은 마큐롬(머큐로크롬)과 옥도정기의 차이를 4면에서 다루고 있다. 요지는 두 개를 같이 쓰면 혹 상처가 빨리 나을 수 있을지를 묻는 독자에게, 확실한 차이는 없고, 두 성분을 번갈아 쓰게 되면, 아까징끼에 포함된 수은이 유리되어, 살균작용이 사라지고, 살균 작용이 사라진 수은은 유해작용이 일으켜 상처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고 전달하고 있다. 


이렇게 수은이 주 성분이었던 머큐로크롬, a.k.a 아까징끼는 현재,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약이 되었다. 


일본에서 발생한 대표적 환경병의 하나인 미나마타병의 원인이 수은중독으로 알려지며, 수은 독성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당사국인 일본은 1973년에 판매 및 제조를 금지하게 됐고, 1992년 미국 식품의약국인 FDA가 재조사를 시작해 1998년에 판매 중지를 결정했고, 우리나라 또한 같은 길을 걸어가게 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즈음을 기해, 한국에서도 수은 함유 건전지의 생산에 대한 논란, 폐건전지 함의 설치 등이 논의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호주를 포함한 영국 연방 국가 들에서는 여전히 아까징끼, 아니 머큐로크롬을 아직 만나볼 수 있다. 외용제로서, 상처가 생겼을 때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약제이다 보니, 실제 이 머큐로크롬에 의한 수은중독, 사망례가 없다는 데서 기인한 결정이었다. 


한국에서는 이를 대신해, 2세대 외용 소독제인 포비돈 요오드가 사용되고 있다. 

흔히 약국에 가서 빨간약 주세요 라고 하면 볼 수 있는 그 포비돈 요오드 용액이다. 폴리비닐피롤리돈과 요오드의 화합물로, 요즘 들어서는 포비돈 요오드를 묻힌 면봉 등으로 사용 편의성을 개량한 제품들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세정액, 인후(목) 스프레이, 거즈볼 등 소독이 필요한 모든 부위에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개량되어, 국내에서 포비돈요오드 성분의 완제 의약품으로 허가 판매되는 것 만도 모두 81건이다. 

가장 친숙하게 느껴질 포비돈 요오드 - 현재도 널리 팔리고 있는 제품이다 - 출처 :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 통합정보시스템

아이오딘, 즉 요오드의 산화력으로 소독 효과를 가져오는 이 약은 광범위한 살균 효과를 가지고 있어, 박테리아, 바이러스, 곰팡이, 원충, 포자 모두를 사멸시킬 수 있다. 

찢긴 상처, 화상, 창상의 살균 소독, 궤양, 농양의 살균 소독, 감염 피부면의 소독, 수술 부위의 살균 소독, 주사 및 카테터 부위의 소독에 쓸 수 있는 데, 1일 수회 환부에 적당량을 바르는 것이 그 용법이다. 


다만, 이런 요오드는 아무리 국소용으로 사용하더라도 전신으로 흡수될 수 있고, 이 같은 효과는 농도, 투여경로, 피부의 상태(심한 화상 등으로 진피가 벗겨진 상태라면, 장벽이 사라진 상태라 전신으로 쉽게 흡수, 때에 따라 독성을 나타낼 수도 있다)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2019.12.19일의 커튼콜 - 김환태, 이윤, 김해진, 정세훈 그리고 히카루

팬레터는 무력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시기, 글로서 이 세상을 바꿔보려 했던 이 문인들의 감정, 사랑을 다룬 이야기였다.

그때의 만병 통치약 옥도정기를 비록 구할 수는 없지만,  빨간약을 바르면 낫는다는 그 믿음은 남았다. 엄마손이 약손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아마 정성스레 베인 상처에 옥도정기를 발라주던 해진 선생님의 마음도 글에 제법 재주가 있었던 세훈이가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 또 일본 아이들로부터 조선사람이어서 겪어야 했던 상처를 보듬어 주려던 그런 빨간 약이 아니었을까.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팬레터의 포토존 - 오늘의 캐스팅은 물론, 그 시대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김사부는 왜 에스몰롤을 선택했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