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유럽, 가장 흔한 독약 - 비소
똑똑, 토드 씨의 이발소 문을 두드릴 준비가 되셨습니까?
"들어는 봤나 스위니 토드, 시퍼런 칼날을 쳐들면"
The Ballad of Sweeney Todd
뮤지컬 음악의 거장, 손드하임 그의 독특한 음악 작법의 핵심을 이루는 스위니 토드는 막을 여는 서곡에서부터 어쩐지 기괴한 효과음과 묘하게 이질적인 불협화음으로 시작된다. 서곡의 마지막쯤, 이때는 아직 벤자민 바커의 모습을 한 토드 씨도 무대에 등장하고, 러빗 부인은 흰 가루를 무대 바닥에 서늘한 표정으로 뿌리고는 지나간다. 그렇게 뮤지컬 스위니 토드는 시작된다.
조승우, 홍광호, 박은태
지킬에 이어 이 세 배우를 곧바로 샤롯데에서 또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만큼 주역인 토드를 맡은 배우들, 그리고 이 토드들과 합을 맞추는 러빗 부인으로 옥주현, 김지현, 린아의 캐스팅 소식으로 개막 전부터 관객의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었다.
장장 15년을 갇혀있었다는 이발사 스위니 토드의 원래 이름은 벤자민 바커다. 그가 어쩌다 15년을 감옥에 갇혀 지냈는지, 그에 대한 대답은 극의 초반에 몽땅 제시된다. 그의 사연을 앞서 다 풀어버리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보잘것없는 이발사가 거대 권력이랄 수 있는 터핀 판사에게 복수를 진행하는지, 앞으로 2시간 동안 복수에만 올곧게 집중하겠다는 창작진의 의지 표현이랄까.
벤자민 바커(현, 토드 씨)는 그때도 빼어난 솜씨를 자랑하는 이발사였다. 아리따운 아내 루시와 루시를 꼭 닮은 예쁜 딸, 조안나 까지 행복한 가족이었다. 아내 루시의 미모를 터핀 판사가 탐하기 전 까지는 말이다. 루시를 차지하기 위해 터핀 판사는 거리낌이 없었다. 바커 씨를 잡아 가두고, 결코 곁을 내어주지 않는 루시에게 바커를 풀어주겠노라 유혹해 데려오게끔 비들 경을 시켜 꾀어내기도 한다. 그렇게 몹쓸 짓을 당한 루시, 그리고 루시의 비극을 방관했던 사람들 속, 그녀는 비소를 사다 털어먹고 만다. 자살을 하기 위해서였다.
비소(Arsenic)는 구리, 납, 아연 등의 광석에 섞여 있는 비금속 원소 중의 하나로 오랜 옛날부터 알려진 독성 물질의 하나다. 이러한 비소의 중독현상에는 만성과 급성이 있는데, 비소를 단일 물질로 많은 양을 섭취하게 되면, 위경련, 구토, 설사, 무뇨, 구토 등의 중상을 일으킨다. 이어 피부가 창백해지고, 치아노제(의학드라마를 보면 많이 나오는 그 단어 맞다. 혈액 속의 산소가 줄어들고 반대로 이산화탄소가 늘어나, 피부 그리고 점막 등이 검푸르게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가 나타나고, 이어 혈압이 급격히 떨어진다. 증세가 심한 경우, 쇼크로 사망할 수 있다.
이 끔찍한 가루는 흰색이고 냄새가 없다. 게다가 구입도 쉬웠다. 그래서 음식에 섞거나, 몰래 먹이기 좋아 17-18세기, 유럽에서 독살사건이 있었다 하면, 한 번씩 이름에 오르내리곤 했다.
이렇게 대량을 먹이기 보다, 서서히 중독 증상을 일으켜 죽게 만드는 것이 다반사였다. 스코틀랜드의 변호사 가문에서 태어난 메리 브랜디가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 윌리엄 헨리크 랜스타운과 결혼하기 위해, 아버지 브랜디 씨에게 비소를 조금씩 먹인 죄로 교수대에서 처형당한 사건(1751년 스코틀랜드), 법정에서 판사에게 "제겐 독약이 진정한 친구나 마찬가지예요"라고 말했다는 독일의 연쇄 독살 마녀 안나 츠반치커(1809년 독일 뉘른베르크), 주인을 죽인 하녀 나네테 센 레이벤, 자그마치 15명을 살해한 올라문데 백작부인, 비소가 매장한 사체에도 흡수되느냐를 놓고 논란을 일으킨 프랑스의 메르시에 사건 등, 17~18세기 잘 알려진 독살사건의 도구가 비소였던 경우가 많다.
죽자고, 비소를 먹은 루시는 아마도 많은 양을 단시간에 먹었을 터.
루시처럼 급성 중독을 일으킨 사람의 호흡에서는 마늘향이 나고, 심장 부정맥 혹은 급사는 물론, 신경계에도 작용할 수 있다. 신경계에 작용하는 급성 뇌염은 며칠에 걸쳐 진행되는 양상으로 섬망을 일으키거나, 발작, 혼수상태에 빠지게 만들 수 있다. 또 대다수는 영구적인 중추신경계 후유증을 남긴다. 예를 들면 가볍게는 두통에서부터, 착란 그리고 기억력 문제까지.
이러한 급성 중독은 대개 비소의 형태(흡입 또는 복용했는지)와 용량에 따라 그 예후가 결정된다. 비소를 먹어서 생기는 급성 중독 증상은 체중 1kg 당 600 mcg 이상을 하루에 먹었을 때, 죽음에 까지 이를 수 있다. 깡마른 루시의 체격을 50 kg이라고 가정하면, 30000 mcg, 즉 30 mg 정도는 먹어줘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비소를 해독하는 방법은 기초적인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간 지지요법에 기반한다. 급성 중독이 확인된 환자는 장기 기능을 보존하기 위해, 빠르고 공격적인 집중 치료를 요하는데, 메르스가 한국을 엄습했을 때 많이 들었던 체외 순환 시스템인 ECMO를 달고, 빨리 독소를 빼내느라 투석을 하고, 교환 수혈을 해야 한다. 한마디로 독소를 빼내고, 무해한 피로 교체해야 그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어지는 치료는 킬레이션, 몸속에 축적되거나 남아있을 비소를 흡착해 몸 밖으로 꺼내야 한다. 이러한 치료 단계부터는 중독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의사에게 보내져야 한다. 그런데 ECMO, 투석 등의 중환자 치료법은 모두 최첨단이자 현대적인 치료다.
루시가 비소를 집어삼킨 건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시대, 산업화가 진행되던 영국 런던.
이런 의료 기술이랄 게 있을 리 없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루시가 집어삼킨 양은 우리가 흔히 보는 시럽병 크기를 가득 채우지 못했나 보다.
치사량에 이르지 못한 양만을 삼킨 그녀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제대로 기억하는 것도 없고, 머리는 산발에 미친 여자, 거지 여인으로 불리는 꼬락서니를 해서 말이다. 극 내내 그녀는 플릿가 24번지, 러빗 부인의 파이 가게 근처를 맴돈다. 악취가 난다거나, 이 여자는 악마라거나, 그런 알지 못할 말들은 중얼거리면서.
유일하게 진실을 알고 있는 그녀만 보면 화들짝 놀라는 러빗 부인, 극의 초반, 러빗 부인은 토드 씨에게 말했었다.
"루시가 약방에서 비소를 사다가 그만.... 삼켜버렸다고...
마침내 아내를 죽게 만들고(이때까지 토드 씨는 비소를 사다 먹었다는 말에서 온전히 루시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딸인 조안나를 훔쳐간 것도 모자라, 어여삐 자란 양녀를 파양하고 자신의 아내로 삼겠다 말하는 탐욕스러움 앞에 복수할 것을 다짐하는 토드 씨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거지 여인은 2층 무대, 토드 씨의 이발소까지 진출한다.
토드 씨가 아직 벤자민 바커였던 시절, 딸 조안나와 남편과 행복했던 그 기억이 온전치는 않지만 그 장소에 남아 있었는지, 1막 조안나를 부르며, 딸을 어르던 토드 씨의 행동과 비슷한 행동을 하면서.
쓰레기통을 뒤지고, 거리에 살아서 거지 여인의 몰골이 된 것이 아니라, 머리가 푸석하고, 횡설수설을 하고, 과거의 기억을 잊어버린 모습, 극적으로 살아남기는 했지만, 온전히 비소 중독자를 묘사하는 교과서적 모습, 그대로이다.
그렇게 스스로가 누구인지 인지하지 못한 채, 위험한 토드 씨네 이발소에 올랐던 그녀는 터핀을 향한 복수에 눈먼 남편에게 그만. 사건의 전말을 나중에야 알아차린 토드 씨에게 러빗 부인은 잔뜩 겁에 질린 채 말한다.
"비소를 먹었다고 했지 죽었다고는 안 했어."
저런 몰골로 살았다고 말하는 게, 저 모습을 보는 게 당신이 더욱 고통스러웠을 거라고.
현재의 모습뿐 아니라, 비소는 그 노출이 끝난 수년 뒤에도 후기 중독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피부암이라던가 폐암을 포함해 암 발병률이 월등히 높아진다. 최초의 항암제가 만들어진 것이 유대인을 향한 Nitrogen gas에서부터이니, 만약 비소를 집어삼킨 결과로 암이 발생했대도 손 쓸 방법 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저 더욱 고통스럽게 죽는 방법밖에는
손드하임의 기괴한 뮤지컬만큼이나 아이러니한 건, 이 비소가 오늘날에도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흙이나 토양에서 발견되는 정도나, 가끔 비소가 검출되어 화들짝 놀라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을 고칠 목적으로. 삼산화비소, 기존 독성이 있는 비소와는 달리 산화물로 독성을 조절했고, 약리작용을 찾아냈다.
놀랍게도 삼산화비소는 트리세녹스 라는 이름의 약으로 급성 전골수성 백혈병(APL : acute promyelocytic leukemia ) 치료에 쓰인다. 비소에 중독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증상 중 하나가 암 발생 위험 증가 인 걸 생각하면, 이것 또한 아이러니다. 그런데 이 삼산화비소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한 노동자는 직업적으로 비소 노출로 인해 만성 중독의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하니 암을 치료하는 약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한 노동자는 다시 중독과 암의 위험에 높게 노출되니, 출구를 알 수 없는 미로 같달까. 어찌 되었건, 비소는 삼산화 비소로 탈바꿈하며,
피렐리의 묘약 이상 가는 묘약이 된 셈이다.
비소는 분명 독약이었다. 그런데 독약이라고 해서 소량을 먹어도 바로 독 작용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치료 효과를 입증한 약도 과도하게 많이 먹으면 의도와는 무관하게 죽음이라는 결말을 가져오기도 한다.
치사량이라고 부르는 LD50 값이 개별 약제에게서 다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루시가 살던 시대에, 비소를 먹다니 불쌍한 것 하기에 앞서, 그 시절 의사에게라도 데려갔더라면, 삼킨 비소를 다 토해내게 하고, 충분히 많은 물을 먹였더라면 어땠을까. 그때도 루시가 지금 만큼이나 비극적인 삶을 살아야 했을까.
잘못이야 비들을 앞세운 터핀 판사가 했고, 남편인 바커가 나름의 사적 복수를 했다지만,
루시의 불행을 그저 지켜만 보았던 터핀 파티의 참가자들, 비소를 먹은 루시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은 러빗, 토드 씨에게 사실대로 루시가 죽지 않았다 말하지 않은 러빗, 끝내 자신의 손으로 루시의 목숨을 뺐고 만 토드. 누가 더 잘못의 크기가 큰 지 따지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루시에게 최초의 불행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혹은 그 순간 방관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딸 조안나와 남편 바커를 기다리며 행복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