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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직 애널리스트 Apr 25. 2020

트로트 가사들

다시 사랑받고 있는 트로트, 그 가사들을 곱씹어보다



임영웅 – 어느 60대노부부 이야기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카카오톡도 느릿느릿 독수리 타법으로 보내는 어머니가 무려 ‘카카오스토리 설치하시고, 매일같이 ‘미스터트롯 ‘임영웅에게 투표하셨다. 항상 책만 읽으시고, 아버지의 기타 소리마저 시끄럽다며 핀잔주시던 어머니가 트로트에 빠지셨다는  믿기지 않았다. 어머니의 마음을 흔든 트로트는 무엇일까,, 궁금했지만 굳이 찾아보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트로트는 어르신들만 듣는 노래라는 편견이 있었던 것도 같다.


어느 , 부모님이 서울 집에 찾아오셨고 어머니의 강력 추천으로 임영웅의 <어느 60 노부부 이야기> 틀었다. , 노래를 듣자마자  어머니가 트로트에 빠졌는지   같았다. 트로트하면 생각나는 빠르고 경쾌한 템포가 아닌 차분하고 조용한 멜로디였다.

노래  소절  소절도 주옥같았다. 50 넘기시고 60 바라보시는 어머니에게 <어느 60 노부부 이야기>  삶의 일부였다. “곱고 희던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주던  아버지를 만나, “막내아들 대학 시험  눈으로 지내던 밤들 지나서, “ 딸아이 결혼식날 흘리던 눈물 방울 훔치는 날로 향하고 계셨다.


이 노래는 우리 어머니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또 다른 영감을 주었다. 트로트를 피하기만 했던 나에게 반성한다. 그리고 줄곧 자식만 생각하시던 어머니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준 트로트에게 감사하다.

글_김서영





홍진영 – 엄지 척


"엄지 엄지 척 엄지 엄지 척

자상하고 다정다감해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매력이 넘쳐요

엄지 엄지 척 엄지 엄지 척

천생연분 내 사랑이에요

그냥 좋아요 왠지 좋아요 엄지 척"



다음의 구절을 A라 할 때, '엄지 척'에 A는 몇 번이나 나올까? 답은 4번이다. 이 곡은 A-B-A-C-A-A'로 매우 단순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가사 전체를 읽어봐도 남는 건 '엄지 척' 뿐이다.


그러나 남는 건 '엄지 척' 뿐이라는 것이, 트로트로서 이 곡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이유다. 어린 아이들이 재롱이랍시고 트로트를 부르며 '여자는 꽃이고, 사나이는 어떠해야 한다'는 등의 가사를 외는 것을 보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전화번호에서 숫자 8개는 외우기 어려워도 노래 가사는 금방 외워지고, 또 한 번 입에 붙으면 계속해서 머리에 남는다. 아무리 시적이고 한(恨)을 담은 가사라 한들, 고정관념에 멜로디까지 붙여가며 부르는 걸 귀엽다며 박수쳐주고 싶지는 않다. 차라리 '자상하고 다정다감한 사람에게 엄지 척' 이라는 내용밖에 없는 '엄지 척'을 들려주자.

글_연인지




송대관 – 해뜰 날


"뛰고뛰고 뛰는 몸이라 괴로웁지만
힘겨운 나의 인생 구름 걷히고
산뜻하게 맑은 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뜰 날 돌아온단다."



이 노래를 들을때마다 나에게 거는 주문같다고 느껴졌다.

괴로운 시절 있듯이 언젠가도 나에게도 한줄기 빛과 같은 '해'가 뜬다며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힘듦을 버티게 해주는 주문.

내 인생 '구름'걷히고 '쨍'하고 '해뜰 날'이라니, 이 얼마나 경쾌한 은유인가!


코로나가 우리나라, 전세계 사람들의 일상을 바꿔버린지도 3개월이 다 되어간다.

어제는 미스터트롯 출연진들이 신청곡을 불러주는 '사랑의 콜센터'에서 한 대구시민의 신청으로 이찬원이 이 노래를 불렀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수입이 줄어든 자영업자들, 공연이 취소된 뮤지션들, 채용 일정이 연기된 취준생들 등등, 저마다의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주문을 외워보라고 말하고 싶다.

코로나로 모두가 괴로운 이 구름도 얼른 걷히고, 다시 평범했던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날,

'해뜰 날'이 얼른 돌아왔으면하고 바래본다.

글_김수민




강진 - 막걸리 한잔


“아빠처럼 살긴 싫다며

가슴에 대못을 박던

못난 아들을 달래주시며

따라주던 막걸리 한잔

따라주던 막걸리 한잔”



TV 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이 마지막 회 시청률 35.7%로 케이블 최고의 시청률을 찍고 종영을 했다. 그 인기를 실감하듯, 얼마 전 엘리베이터에서 유치원생 아이와 할머니가 내가 탄지 모르고 함께 ‘막걸리 한잔’을 부르고 있었다.


어렸을 적, ‘트로트는 어르신이다’라고 생각했고, ‘내일은 미스터트롯’의 많은 참가자들 또한 트로트 시작의 계기는 조부모라고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트로트는사라진 줄 알았기에 ‘내가 할머니가 되면, 발라드를 들려줘야 하나?’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유행은 돌고 돌아 ‘K-트로트,’ ‘트로트 아이돌’ 시대가 왔고, 나도 트로트를 즐기는 세대가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 트로트의 ‘한과 얼’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우리의 ‘흥’은 세대가 달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세계가 우리의 ‘흥’을 알 수 있길...

글_서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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