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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직 애널리스트 Oct 03. 2022

팬덤 플랫폼의 빛과 그림자

'소통'이 서비스가 될 수 있는가

소비가 있는 곳엔 생산이 따라가는 법. 케이팝 문화가 성장하고 이를 소비하는 이가 늘어남에 따라, 케이팝 생산자가 비즈니스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케이팝 생산자는 음악을 제작하는 것 외의 다양한 방식으로 케이팝을 제공했다. 여러 갈래 중, '소통'을 서비스하는 "팬덤 플랫폼"이 최근 5년 내 급속도로 성장하며 미디어 산업의 신흥 모델로 자리 잡았다. 기존의 SNS(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에서 영상 플랫폼(유튜브, 브이라이브, 틱톡)으로 넘어가, 메시지 소통형 플랫폼(유니버스, 위버스, 디어유)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일구었다. 


(출처: 각 사, 하나금융투자)


"팬덤 플랫폼"은 팬과 아티스트의 소통을 중개하는 모델이다. 대표적으로 네이버의 브이라이브, SM엔터테인먼트의 디어유(버블), 엔씨소프트의 유니버스, 하이브의 위버스가 있다 (브이라이브는 다른 3개의 플랫폼과 다소 맥락이 다르지만, 일련의 소통 서비스를 관통하는 플랫폼이기에 함께 포함했다). 팬 모집·관리부터, 공지사항 전달, 자체 콘텐츠 유통, 온오프라인 굿즈 판매, 이벤트 예매, 팬과 팬의 소통까지 활동 전반이 이루어지고 있는 통합형 플랫폼이다. 팬 카페, 음반사, 티켓 판매처 등 제각각 이루어지던 서비스를 한 곳에 모아 제공한다고 생각하면 보다 이해하기 쉽다.


팬덤 플랫폼의 가장 큰 특징은 아티스트와 팬 간의 '소통'을 서비스하는 것이다. 유니버스의 경우, 아티스트 구독 서비스를 마련하고 있으며 이는 다시 유/무료 서비스로 나누어진다. 유료 구독자는 아이돌 멤버 전체를 구독할 수도 있고, 자신의 *최애 멤버만을 개별적으로 구독할 수 있다. 유료 구독자는 무료 구독자가 받을 수 없는 아티스트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으며, 텍스트뿐만 아니라 아티스트의 사진까지 포함되기 때문에 꽤나 희소성이 높아 상품 가치가 크다.

*'가장 사랑함'을 뜻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표준어 단어.


팬덤 플랫폼은 팬과 아티스트 간의 거리를 좁혀주며 이전에 경험할 수 없었던 색다름을 선사한다. 이는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지만, 동시에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소통'이 또 하나의 노동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티스트는 무대 위에서 노래와 퍼포먼스를 보여준 후, 무대 아래에서까지 핸드폰이라는 매개를 통해 다시 노동을 시작한다. 소통이란 심리적, 감정적인 소모를 함께 동반하기 때문에, 팬덤 플랫폼을 통해 이용하는 행위는 단순노동 이상의 감정노동이라는 의견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플랫폼을 통한 소통의 수는 ‘팬을 향한 사랑’으로 여겨졌으며 동시에 아티스트를 향한 ‘평가 수단’이 되었다.


일정 기간 동안 메시지를 보내지 않은 일부 아티스트는 비판을 받는다. 팬 입장에서도 일정한 대가를 위해 돈을 지불한 상태에서, 그에 준하는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한다면 분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티스트 또한 메시지를 꼭 보내야 하는 의무도 없을뿐더러,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 행위가 무조건적으로 비난받을 이유가 될 수 없다.


(출처: 비즈 한국)


과연 팬 소통형 플랫폼의 강점과 문제점은 무엇일까? 또 이 문제점을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모델을 만들기 위해선 어떠한 개선이 요구될까? 아래에서 그 내용을 정리해보았다.




팬덤 플랫폼의 빛

 

팬-팬, 팬-아티스트 간의 친밀도 상승


앞서 언급했듯이, 팬덤 플랫폼의 가장 큰 강점은 아티스트와 팬 간의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조성했다는 점이다. 보통 아티스트는 TV라는 매체를 통해 일방향적으로 팬에게 의사를 표현해왔다. 페스티벌/축제와 같은 오프라인 행사의 경우 진솔한 대화가 불가하였고, 간혹 개최되는 팬미팅에선 1:1 대화가 1분 내외로 진행됨에 따라 소통을 나누었다고 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팬덤 플랫폼을 통해, 아티스트는 팬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팬은 아티스트에게 자신의 언어를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더불어 팬-팬 간의 커뮤니케이션 장이 조성되었다. 네이버/다음 팬카페와 같은 소통 창구가 있어왔지만,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팬카페의 UX/UI는 팬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부족했다. 특히 글로벌 팬덤이 구성되면서, 국내 위주로 서비스하는 포털 사이트보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과 같은 글로벌 SNS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팬덤 플랫폼은 소비자의 니즈를 기회로 캐치하였고, 스마트폰에 알맞은 UX/UI 환경으로 SNS보단 조금 더 사적이고 폐쇄적인 팬덤 놀이터를 조성했다.

 

아티스트의 새로운 표현 창구


아티스트 역시 본인의 목소리를 '비교적'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기업이 메시지를 확인할지언정, 소통 창구가 전혀 없는 것과 있는 것의 차이는 거대하다. 아티스트는 팬덤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다양한 아이덴티티를 보여준다. 최근 유니버스의 배우 '이동욱'이 대표적인 예이다. 연예인 중에서도 '배우'라는 직업은 다른 직군보다 대중 앞에 설 기회가 흔치 않다. 배우 이동욱은 유니버스의 프메(프라이빗 메시지)라는 기능을 통해 팬과 소통하기 시작했고, 팬 역시 그의 재미난 입담을 보기 위해 그를 구독했다. 그의 프메는 긍정적인 바이럴을 얻었고, 기존의 이동욱 팬덤을 넘어 일반 대중까지 그의 메시지를 구독하고 있다.


(출처: 유니버스)

 

추가적인 수익 창출


문화가 산업으로 발전했을 때, 수익적인 측면을 분리할 수 없다. 팬덤 플랫폼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매우 적절하고 효율적인 아이템이었다. 아쉽게도, 케이팝 산업은 음원 소득(저작권료) 외의 정기적이고 지속적인 수익 확보 방안이 마땅치 않다. 행사/앨범을 통한 수입은 단발적이며 불규칙적이다. 아티스트가 방송 콘텐츠의 고정 멤버가 되거나 브랜드 전속 모델로 발탁되지 않는 이상, 안정적인 수입을 마련했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팬덤 플랫폼은 구독형 서비스에 기반하기 때문에, 일정한 수익 확보가 가능하. 이는 생산자와 아티스트 입장에서 팬덤 플랫폼을 애써 마다하지 않는 이유이다.





팬덤 플랫폼의 그림자

아티스트의 노동 


팬덤 플랫폼은 '커뮤니케이션'을 상품/서비스로 내세워 수익을 창출하는 모델이다. 아티스트는 커뮤니케이션의 주체이며, 커뮤니케이션은 곧 아티스트의 노동이다. 커뮤니케이션이 노동으로 인식되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업무 카톡 금지법' 발의 건이다.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 자체가 하나의 스트레스 및 추가 노동으로 인정되어 '업무 카톡 금 지건'이 지난 9월에 발의되었다. 프랑스를 비롯하여 이탈리아, 슬로바키아, 필리핀, 포르투갈에서는 노동법에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명시하는 등 법제화를 통해 직장인들이 퇴근 후 개인 생활을 온전히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케이팝 산업은 사회가 추구하는 이상향의 반대 방향으로 역행하고 있다. 오히려 '업무 카톡'을 하나의 서비스로 만들어 아티스트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케이팝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가 드러난다. 케이팝 산업은 연예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아티스트를 발굴, 관리, 감독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을 매니지먼트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한국 음악 산업이 더 좋은 음악, 아티스트를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데 일조했으며, 케이팝이라는 글로벌 음악을 발굴할 수 있는 조건을 생성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아티스트의 주체성이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한다. 음원 발매에서부터 팬덤 플랫폼에 대한 참여 권한까지 기업의 손에 달려있다. 따라서 팬덤 플랫폼에 참여하는 것 역시 기업의 의사결정이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소비가 있는 곳에 생산이 붙는 것은 이치다' 라거나 '아티스트도 이를 통해 수입을 벌지 않느냐'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이 점에 있다.  


제한된 능동적, 활동적 소비


팬덤 플랫폼을 통해 팬-아티스트 간의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고 언급했으나, 소통이란 것이 무색하게 주로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전보다 쌍방 소통의 기회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나, 아티스트가 모든 팬 메시지에 답장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간혹 메시지의 답을 받을지언정, 장기적인 대화를 이어갈 수 없다. 팬은 아티스트의 메시지를 기다리는 것 말고 다른 능동적 활동을 하기 어렵다. 팬이 직접 참여하는 문화가 대세인 현시점에서, 팬덤 플랫폼의 서비스 구조는 이와 다소 거리가 있다. 따라서 다른 플랫폼에 비해 팬이 활동적인 액션을 취할 수 없는 것이 단점이라기보단 하나의 아쉬움이다.


부와 시간의 분산 (선택과 집중 부재)


팬덤 플랫폼이 다른 액션에 비해 시간/육체적 노동이 덜 소모된다고 하지만, 아티스트의 시간을 짬 내서 하는 노동이다. 마찬가지로 팬덤 플랫폼을 관리 및 감독하는 스태프의 노동/임금/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동일한 시간, 노동, 임금을 투자한다면 상대적으로 더 큰 가치를 이룰 수 있는 방향으로 잡을 필요가 있다. 만일 아티스트가 추구하는 컨셉이 보다 친근한 이미지라면, 팬덤 플랫폼을 통해 팬과 소통하는 것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친근함과는 거리가 있는 아티스트라면, 팬덤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에 추가적인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근래에는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아도 인스타그램/유튜브 라이브 등 여러 소통 서비스가 존재하기 때문에, 목표하는 방향성에 맞게 팬덤 플랫폼을 활용해야 한다. 단기적인 성과를 취하고자만 한다면, 장기적인 이득을 발견하는 눈을 잃을 수 있다.





이 글이 주장하고 싶은 바는, 팬덤 플랫폼이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거나 이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강점을 살리고 단점을 줄일 수 있는 일종의 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팬덤 플랫폼은 ‘팬을 향한 사랑’이자 ‘평가 수단’이 되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도 이는 필히 해결해야만 하는 숙제이다. 


누군가에게 팬덤 플랫폼은 하나의 의사 표현이자 취미 활동이며, 삶의 질을 상승시켜 주는 수단이다. 하지만 그 장점이 크다고 하여, 고통받고 있는 일부를 외면할 수 없는 일이다. 케이팝 산업 자체가 아이돌의 주체성이 크지 않은 산업이다 보니, 팬덤 플랫폼을 이용 권한을 아티스트에게 넘기기 어려운 실정이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자본의 이윤 창출이기 때문에, 팬덤 플랫폼을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이윤은 기업에 속한 사람들과 기업이 속한 공동체의 사람들을 위한 이윤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팬덤 플랫폼 이용 규정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무한정 자유를 제공하는 것은 오히려 아티스트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 일정 기간 내의 최소 메시지 수를 정하는 등의 이용 규칙을 만들어준다면, 플랫폼 구독자, 아티스트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성장에는 예상치 못한 문제가 따를 수밖에 없다. 아티스트와 팬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음악 산업을 위해, 끊임없는 시도와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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