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igma - Return To Innocence
아티스트 : Enigma
장르 : 일렉트로닉 연주 , 에스닉 퓨전
발매 : 1993.12.06
배급 : 이엠아이 뮤직
정규 앨범 [The Cross Of Changes]의 세 번째 트랙 타이틀 곡
이번 글에서 다룬 『데미안』 출판사는 '문학동네'입니다. 참고 바랍니다. ^ㅡ^
첫 인턴, 첫 기획 기사
일 년 반 전인 1월 겨울, 한국경제에서 인턴을 했다.
한경닷컴 편집국으로 들어가 기본적인 기사 작성법과 기사 작성 프로그램 사용법 등을 배웠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신문에 대한, 신문사에 대한 적지 않은 면들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한 달간 인턴으로 활동한 것에 대한 졸업 작품인 기획 기사를 혼자서 작성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많은 자료들을 찾아보며 획득한 퍼즐 조각들로 '하나의 기사'라는 큰 퍼즐을 완성해나가는 것은 꽤나 힘들었지만, 기사가 발행되고 마지막에 내 이름이 달린 것을 보았을 때, 그 힘듬은 순식간에 녹아버렸다.
아래는 나의 첫 기획 기사다. 기획부터 인터뷰, 자료 탐색, 기사 작성까지 혼자서 해야 했던.
'기사 하나 쓰는 게 참 어렵구나'라고 느꼈던, 하지만 즐거웠던 좋은 경험이었다.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501281322g&intype=1
기획 기사와 함께 한 달간의 짧은 인턴 활동을 마칠 때쯤, 편집국장님께서 인턴 수료증을 주셨다.
그리고 한 달간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꼭 읽어보라고 하시면서 책 한 권 또한 추천해주셨다.
어제서야 드디어 『데미안』을 읽었다. 책 추천을 받은 지 1년 반이나 흐른 뒤에.
이건 『데미안』을 위한 음악이다
『데미안』을 다 읽고 여운에 젖어 여러 곡의 음악들을 듣다가, 순간 머리가 번쩍 했다. '이건 『데미안』을 위한 음악이다'라는 생각을 들게 해 준 곡. 바로 <Enigma - Return To Innocence>이다.
<Return To Innocence>의 가사는 『데미안』의 내용과 굉장히 잘 맞아 떨어진다. 이니그마는 『데미안』을 인상 깊게 읽은 독자일까, 라고 슬쩍 생각해본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니그마는 '독일' 프로젝트 밴드이다)
나는 오로지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에 따라 살아가려 했을 뿐,
그것이 어째서 그리도 어려웠을까?
『데미안』을 펼치면 바로 보이는 인트로 문구이면서, 115페이지에서도 등장하는 문구.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에 따라 사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왜 그리도 어렵다고 하는 것일까.
Love-Devotion
사랑, 헌신
Feeling-Emotion
느낌, 감정
Don't be afraid to be weak
약해지는 걸 두려워하지 마요
Don't be too proud to be strong
강하다고 너무 자만하지 마세요
Just look into your heart my friend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봐요, 친구여
That will be the return to yourself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테니까요
The return to innocence
순수로 돌아가요
If you want, then start to laugh
웃고 싶으면 웃으세요
If you must, then start to cry
울어야 한다면 우세요
Be yourself don't hide
숨지 말고 당신답게 행동하세요
Just believe in destiny
그저 운명을 믿으세요
Don't care what people say
사람들이 하는 말에 신경 쓰지 말고
Just follow your own way
그저 당신의 길을 따라가세요
Don't give up and use the chance
포기하지 말고 기회를 이용하세요
To return to innocence
순수로 돌아가기 위해
That's not the beginning of the end
그건 끝의 시작이 아니라
That's the return to yourself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The return to innocence
순수로 돌아가는 거죠
※ 음악을 들으면서 읽으시는 걸 추천해요.
저도 이 음악을 들으며 그때의 감정을 더 캐치해 적었답니다.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데미안』은 쉽게 말하면 싱클레어의 내적 성장기를 다룬 내용이다. 싱클레어의 혼돈, 반성, 고독, 깨달음, 성숙의 과정들을 보다 보면 읽는 내 자신또한 혼란스럽다가, 부끄러워지다가, 뿌듯해지다가,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그리고 싱클레어에 나 자신을 대입하면서 그를 공감하고, 데미안에게 위로를 받고 깨달음을 얻는다.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세계라는 알을 깨뜨려 나오려 한다. 여기서 알은 싱클레어가 어렸을 적 느꼈던 '밝은 세계'만을 비추는 이 세계를 지칭하는 것은 아닐까.
새는 알을 깨뜨리고 나와, 신과 악마를,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모두 아우르는 신인 아프락사스에게로 날아가야 한다.
우리가 태어나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모든 세계를 아우르고, 모든 것을 생각해보고, 모든 '나'를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오로지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에 따라 살아가려 했을 뿐, 그것이 어째서 그리도 어려웠을까?
(Intro - p.7,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 p.115)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 p.110)
고독
『데미안』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중 하나는 고독이 아닐까 싶다.
고독(孤獨) :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 (cf. 네이버 국어사전)
위 사전 뜻처럼 고독이란 정말 외롭고 쓸쓸하기만 한 것일까. 데미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아래는 데미안이 말한 '함께함'에 대한 글이다.
"함께한다는 건," 데미안이 말했다. "아름다운 일이지. 하지만 지금 사방에서 번성하고 있는 건 아름다운 게 아니야. 아름다운 함께하기는 개인들의 상호이해에서 새로 생겨나게 될 거야. 그리고 한동안 세계를 변화시키겠지. 지금 사람들의 함께하기란 그냥 패거리 짓기일 뿐이야. 사람들은 서로서로가 두려워서 서로에게로 도망치는 거지. 신사들은 신사들끼리, 노동자는 노동자들끼리, 학자들은 학자들끼리 말이지! 그럼 그 사람들은 어째서 두려워하느냐? 인간은 자기 자신과 하나가 아닐 때에만 두려움을 갖는 법이야. 자기 자신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거지. 그러니까 자기 안에 있는 모르는 존재를 두려워 하는 사람들끼리의 공동체인 거야! 그들은 모두가 제 삶의 법칙이 이제 더는 맞지 않음을, 자기들이 낡은 규범에 따라 살고 있음을 느끼지. …(생략)"
(에바 부인 - pp.163-164)
함께하면 물론 즐겁다. 하지만 휩쓸리기 쉽다. 나다움을 잃을 수 있다.
고독 속에서는 진정한 '나'를 알 수 있고,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
싱클레어는 철저히 고독했다. 그는 고독 끝에 깨달음을 얻었고,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고, 성장할 수 있었다.
Return To Innocence
그러한 고독과 끊임없는 고통의 끝에서 얻으려는 깨달음은, 도달하려는 목적지는 결국 참 나(眞我, The Self)를 발견하는 것,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우리 각자가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는 일, 자신 안에서 작동하는 자연의 소질에 완전히 어울리게 되어 자연의 의지에 맞게 사는 일, 불확실한 미래가 가져오는 것이 무엇이든 그에 대한 각오를 다지는 일만이 우리의 의무이며 운명이라고 느꼈다.
(에바 부인 - p.176)
<Return To Innocence> 곡도 『데미안』과 뜻을 같이 한다.
Don't care what people say
사람들이 하는 말에 신경 쓰지 말고
Just follow your own way
그저 당신의 길을 따라가세요
Don't give up and use the chance
포기하지 말고 기회를 이용하세요
To return to innocence
순수로 돌아가기 위해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듣는 수많은 말들, 그 말들에 휘둘리고 두려워한다면 데미안의 말대로 '자기 자신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휘둘리지 않기 위해선 이 곡의 가사처럼, 데미안의 말처럼 자기 자신을 알고, 나의 길을 가면 된다.
너 자신만의 길을 가라
깨어난 인간에게는 단 한 가지, 자기 자신을 탐색하고, 자기 안에서 더욱 확고해지고, 그것이 어디로 향하든 자신만의 길을 계속 더듬어나가는 것 말고는 달리 그 어떤, 어떤, 어떤 의무도 없다. …(생략)…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진정한 소명이란 오직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그것뿐이다. …(생략)… 그의 과제는 멋대로의 운명이 아닌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 내면에서 완전하고도 끊임없이 그에 따라 사는 것이다. 그것 말고 다른 것은 모두 반쪽이자 벗어나려는 시도이며, 대중의 이상(理想)으로의 도주, 그냥 적응, 자신의 내면에 대한 두려움일 뿐이다. 내 앞에 새로운 모습이 두렵고도 거룩하게 떠올랐다. 이미 수없이 예감했고 어쩌면 자주 표현했던 것. 그러나 나는 이제야 비로소 진짜로 체험했다. 나는 자연의 내던짐이었다. 불확실성을 향한, 어쩌면 새로움을 향한,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향한 내던짐이었다. 그리고 태고의 깊이에서 나오는 이 내던짐이 완전히 이루어지도록 내 안에서 그 의지를 느끼고, 그것을 완전히 나의 의지로 삼는 것, 그것만이 내 소명이었다. 오직 그것만이!
(야곱의 싸움 - pp. 153-154)
우리의 진정한 소명은 오직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이다. 왜? 우리는 자연의 내던짐이기 때문에. 자연, 순수함에서 태어난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기의 내면과 끊임없이 대화를 하면서 진정한 자기 자신을 깨닫고, 그곳으로, 나의 운명으로, 순수로 가는 것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데미안』의 가장 유명한 문구 중 하나인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에서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를 가만히 음미하면 『데미안』의 모든 내용이 집약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세계를 깨뜨린다는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죽음이 아니라 진정한 태어남이다.
That's not the beginning of the end
그건 끝의 시작이 아니라
That's the return to yourself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The return to innocence
순수로 돌아가는 거죠
Just follow your own way
오로지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에 따라 살아가는 것, 그것은 바로 운명이고 숙명이고 소명이다.
가장 쉬운 것 같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진정한 나로 살아가는 것은.
Be yourself don't hide
숨지 말고 당신답게 행동하세요
Don't care what people say
사람들이 하는 말에 신경 쓰지 말고
Just follow your own way
그저 당신의 길을 따라가세요
<Enigma - Return To Innocence> 뮤직 비디오가 정말 아름답다. '음악을 들으면서 읽으시는 걸 추천해요'라고 적었지만, 뮤직 비디오를 '정독'하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혼자 보기 너무나 아까운 아름다움이다.
『데미안』의 여운을 오래오래 느끼게 해줄 고마운 음악. 아마 당분간 이 곡에 푹 빠져 지낼 듯 싶다.
음악을 쓰는 여자의 더 자세한 내막이 궁금하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