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기 전에 본인만의 체크리스트가 있을 것이다.
옷, 속옷, 세면도구, 상비약 등등
여행을 밥 먹듯 다니는 나에게 가장 우선순위의 여행 물품은 다름 아닌 악기다.
제주도에 스쿠터 여행을 갔을 때도 기타와 함께하였고 일본에 온천 및 식도락 여행을 가면서도
기타를 챙겨갔다.
여행뿐이겠으랴.
일이 있어 홍대를 가도 언제 어떻게 시간이 날지 몰라 악기를 항상 지니는 탓에 몸만 고되다.
악기, 여행 두 가지를 키워드로 잡았다면 다음에 해야 할 고민은 아래와 같다.
1. 악기와 함께하는 여행
2. 악기를 위한 여행
악기와 함께하는 여행은 크게는 이동수단과 악기의 종류 두 가지를 고려한다.
6년 전에 회사 동료와 제주도 여행을 갔었다.
여행의 목적은 스쿠터로 제주도 한 바퀴 돌기
그때는 스쿠터가 처음인지라 고려해야 할 부분이 뭐가 있는지 몰랐기에
애초 생각했던 그림과는 다르게 기타를 싣고 다녔다.
지금이야 스쿠터에 기타 두대씩 실어 다닐 수 있지만 저땐 스쿠터에 미숙했기에
사진과 같이 고정하는 게 최선이었다.
당시 스쿠터 여행의 재미가 좋긴 했지만 마지막 날 내린 비로 인한 악기 걱정에
다시는 악기를 지참한 스쿠터 여행은 안 하겠다 다짐하였다.
제주도 여행 당시엔 갖고 있던 기타가 많지 않았기에 메인 통기타를 가져갔다.
4년 전, 강원도에 여행을 자주 다닐 당시 여행용으로 쓸 미니기타를 장만했지만
연주 감이 좋지 않아 만족하지 못했고 무거운 짐을 가져가기 힘들었던 일본 여행에서도 짐짝만 되고
역시나 사운드적으로 불만족스러워 결국 처분하였다.
그렇다면 나의 여행 시 원픽 악기는 무얼까.
꽤나 다양한 악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래도 여행의 원픽은 역시 클래식 기타이다.
그중에도 서민석 기타를 최우선으로 가져간다.
악기 자체가 무겁지 않고 기타 가방에는 노트북과 여벌의 옷도 넣을 수 있다.
무엇보다 아무리 가끔 친다 해도 소리는 항상 만족스럽다.
특히나 여행지에서 떠오르는 감성을 바로 악기로 옮기려는데 기타의 소리가 따라와 주지 않는다면,,
그 감성은 바로 고이 접어 던져버리게 된다.
이와 같이 악기와 함께하는 여행은 이동수단과 어떤 악기를 가져가야 몸이 덜 피로하고
그래도 가져간 만큼 즐겁게 연주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추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악기를 위한 여행은 무엇이 있을까?
악기를 위한 여행은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다.
악기, 여행 두 가지 키워드에서 악기가 메인이 되기 때문이다.
[악기를 위한 여행]에서의 목적은 아래와 같이 나눌 수 있을 것이다.
1. 악기와 작업을 위한 여행
2. 악기를 구매하기 위한 여행
3. 악기를 배우기 위한 여행
이와 같은 여행을 위한 팁과 필자의 경험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악기와 작업을 위한 여행은 장소의 설정이 중요하다.
악기와의 여행은 충실하게 곡 작업에 초점을 맞추어하는 여행이기에 [악기와 함께하는 여행]과는 조금 다르다.
온전히 곡 작업에 몰두하고 싶을 때면 악기를 여러 대 바리바리 싸들고 파주의 쉼표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한적한 마을인 율곡리에 위치한 파주 쉼표 게스트하우스는 내가 사랑하는 장소이다.
얼마 전 사장님께서 안타까운 사고로 명을 달리하셨지만, 항상 웃는 얼굴로 맞이해주셨던 사장님과
따뜻한 분위기에 나무가 많이 사용된 인테리어는 억지로 기타를 안치려 해도 연주가 술술 나오게 했고
곡이 잘 써지는 마법 같은 장소였다.
강릉에 하슬라 게스트하우스는 마당이 있고 바람이 잘 드는 곳이다.
그곳 특유의 한적한 분위기와 선선한 바람을 맞다 보면 그 바람에
음악을 실어 좋아하는 사람에게 띄우고 싶어 진다.
좋은 영감을 주는 장소를 찾는 것은 [작업을 위한 여행]의 기초라고 생각을 한다.
때문에 여러 장소를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결국 그런 장소를 찾았을 때 그간의 노력은 좋은 영감과 좋은 곡으로 보답을 한다.
든든함.
악기를 구매하기 위한 여행으로 일본, 스페인, 포르투갈, 터키 등의 나라를 가보았다.
수년 전 우리나라에는 적은 수요로 인해 잘 들어오지 않는 마틴 기타의 00 바디를 구하기 위해 일본으로 향했다.
이후에 클래식 기타를 다양하게 쳐보고 싶어 방문을 하기도 하였다.
대다수의 일본 기타 매장에서는 시연을 편하게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굉장히 프로페셔널하게 시연을 위한 기타 케어 용품과 튜닝, 기타 받침대 등을 제공하는 경우가 잦고 일랙 기타의 경우 원하는 앰프를 이용해 시연을 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잠실의 우리 악기사처럼 프로페셔널하고 악기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해주는 곳도 있지만
악기상가의 모 유명 기타 매장은 기타에 흠집이 난다며 구매를 조건으로 걸고 시연을 해야 한다고 했다.
(시연도 안 해보고 어떻게 구매 결정을 한단 말인가..)
스페인의 경우 세비아에 Alberto Pantoja라는 제작가의 공방에 찾아갔다.
이미 판토하 선생님의 기타를 사용하기도 했고 안달루시아 주정부가 인증한 몇 안 되는 제작가이기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일본과 동일하게 기타의 시연을 편하게 할 수 있었고 연주를 들어보고 잘 맞을 것 같은 기타도 제안해 주셨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였고 (물론 손님이 오던 말던 신경도 안 쓰는 곳이 있기도 했다) 시연이 조금 더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었다.
즉 원하는 기타를 천천히 고민을 하며 연주해 볼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처음엔 우리나라의 기타 매장들처럼 눈치를 보며 기타 시연을 했는데, 다른 기타를 넘겨주며 너무 쿨하게 돌아가 본인들 할 일을 하는 그들의 모습이 생소하면서도 좋았다.
물론 아닌 곳들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기타를 신중히 연주해보아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니 이 점을 참고하여 좋은 악기 구매를 위한 여행을 했으면 한다.
다른 나라의 악기 구매나 레슨을 위한 팁은 따로 글을 남길 예정이다.
배우기 위한 여행에서의 가장 힘들었던 것은 소통의 어려움이었다.
스페인에서는 플라멩코를, 포르투갈에선 파두 기타, 터키에 카눈을 배우기 위해 여행을 했었다.
음악으로 통하는 것이 많다지만 가르치는 사람의 말을 정확히 알아듣기 어려워 번거로움이 상당했다.
물론 파두 기타를 가르친 안토니오처럼 영어를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스페인과 터키의 친구들은 영어가
자유롭지 않았기에 악기를 배우러 갈 땐 영어 가능 여부도 알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필자가 영어도 잘 못해서 소통이 쉽진 않았다만 그래도 영어가 된다면 편하긴 할 것이다)
악기와의 여행에는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하고 어느 것을 중점으로 두는지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나온다.(물론 필자처럼 이렇게 고민을 안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어떤 여행이던 좋지만 한 가지만 당부하고 싶다.
긴 기간을 두고 하는 여행이 아니라면 한 번의 여행에 너무 많은 목적과 가치를 두다간 여행이 아니라
쉼 없이 일을 하고 올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악기와 즐겁게 여행을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