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 혼자 울고 있나

오카방고

by 뮤즈 윤담

상아 혼자 울고 있나


‘바람이 소리 없이 소리 없이 흐르는데

외로운 여인인가 짝 잃은 여인인가

가버린 꿈속에 상처만 애달 퍼라

아 아 못 잊어 아쉬운

눈물의 그날 밤

상아 혼자 울고 있나'


가녀린 여인의 애달픈 소리처럼, 조심스럽게 피아니시모의 기타 선율이 현을 뜯듯 시작 음을 울린다.

'바람이 소리 없이 소리 없이 흐르는데….'

낮은 조명으로 은은한 붉은 빛이 감도는 카페 안에 잔잔히 울림이 들려온다. 뮤직 박스 안에는 잘생긴 디제이가 보인다. 이십대 중반인 여인의 눈을 끌기에도 넘칠 정도의 매력적인 불란서계 혼혈인 남자. 그윽이 바라보는 그의 눈은, 우수에 젖어 있었고 어두운 조명에서도 빛이 났다. 한국인 어머니와 프랑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사생아로 자란 어두운 그림자는 그의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그의 손길을 타고 흘러나오는 음악은 예술이었다. 흘러간 팝송, 처음 듣는 노래들로 시간의 흐름도 잊은 채 시간을 붙들어 놓는다. 턴테이블에서 검고 둥그런 LP판이 그의 손을 타고 너울대며 돌아가고 있다. 그 모습 또한 감동적이었다. 복사판이 아닌 라이선스 원판으로만 음악을 틀어내는, 디제이들 세계에서는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친구 나미를 만나러 오카방고에 들렀던 첫 날.

좋아하는 노래를 적은 쪽지를 디제이 박스에 신청했다.

<상아의 노래>가 홀 안을 은은하게 채웠다.

나미는 그와 교대하고 저녁 타임에 근무였다. 그녀의 형부를 도와주기 위해 잠시 디제이를 맡아하고 있었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나의 관심은, 어느 결에 불란서인 디제이한테 가있었다. 최고의 프랑스 배우 알랑들롱과 견줄만한 그의 외모는 누구나 한 눈에 반할만큼 잘 생겼고, 깊고 그윽한 눈매는 여인들의 가슴을 녹여 낼 만큼 매력적이었다. 깊은 속눈썹에 까만 눈동자는 애수가 드리워져 있었고, 부드러운 그의 미소는 거의 완벽한 프랑스 배우 같았다. 그런 그에게 무슨 콧대가 그리도 높았는지, 인사도 눈길도 한번 주질 않았다.

그 곳에 드나든 지 얼마가 지났을까. 내가 카페에 들어서면, 흘러나오는 음악이 멈추고 이내 나의 노래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쿵하며 가슴이 뛴다. 그 설렘을 지금도 기억한다. 디제이 박스를 사이에 두고, 어둑한 불빛을 가로질러 오고가는 애틋함은 눈빛으로 말을 한다. 그제야 새침하게, 고맙다는 인사를 목례로 답했다. 이제는 약속이나 한 듯, 주인을 기다렸다는 듯이 흘러나오는 두 곡, <상아의 노래>와< I'm in love with you.>

디제이는 그것으로 대신 그의 마음을 전하 듯, 언제나 말없이 한결 같았다.


음악이 사랑으로.

그와 나를 잠시나마 사랑의 고리로 추억 하게 만든 노래.

까마득하게 잊혀 있던 상아의 노래는 삼십년의 시간도 거스르는지, 여전히 가슴을 뛰게 한다.

새벽 네 시.

글을 쓰고 있는 손길이 빠르게 내려가고 있다.

새벽 신문이 하루를 깨운다.

<상아의 노래>가 그와 나의 인연으로 맺어 주진 못 했지만, 그의 친구는 내 친구의 남편이 되었다.

그의 불행한 결혼 생활 소식을 나중에야 전해 들었다.

그가 혼혈인이 아니었다면, 사회에서 말하는 평범한 서른세 살의 직장인이었다면 그와 나는 어찌 되었을까.

영화 스토리 같은 그의 삶에, 나의 작은 연민은 사랑의 인연으로 꽃 피우지 못 하고 돌아서야 했다. 사회의 잘못된 편견과, 사회적 통념으로 사랑의 해피엔딩을 이루지 못 한 채, 가버린 꿈속에 상처만 애달파 남아 있는지.

‘어떤 음악을 듣고 과거에 머물렀던 특정한 장소를 떠올리며 추억에 잠긴다거나,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는 것은, 음악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음악과 관련된 우리 삶속에 갖가지 사건들 때문이다.’

이런 진리의 말을 남긴 이는, 어떤 음악에 추억이 서려 있어서일까.

음악이 영화보다 좋은 이유는, 이래서인가보다.

그 때를 추억 할 수 있기 때문에….

삼십 여년이 지나 상아의 노래를 듣는다.

스물여섯 살의 가슴과, 예순의 나이의 가슴은 꼭 같이 뛰고 있구나.

지금 어딘 선가 그 사람도, <상아의 노래>로 그 때를 추억 할 수 있을까.

삼십년 전의 청색시대를 아련하게 수놓아 새겨진, ‘상아의 노래‘.

상아 혼자 울고 있니….

잊지 못 할 노래가 된 상아의 노래는 지금,

아름다운 미소로 그 때를 추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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