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樂 투어> 프랑스, 랭스(Reims) 1탄
파리에서 기차로 1시간 남짓, 북동쪽 샹파뉴-아르덴(Champagne-Ardenne)에 위치한 랭스는 '왕들의 도시'로 불린다. 486년, 프랑크 왕국이 만들어지고 클로비스 1세(재위, 481-511)를 시작으로 이후 프랑스의 역대 왕들이 랭스 대성당(Cathédralel Notre-Dame de Reims)에서 대관식을 갖는 것이 관례가 되었기 때문이다.
클로비스 1세는 496년 알라만족과의 전투에서 한때 전멸의 위기에 처했던 그의 군대가 기적적으로 승리를 거둔 것을 계기로, 전쟁 후 랭스 대성당에서 레미기우스(St. Remigius)에게 세례를 받으면서 로마 가톨릭(Roman Catholic)으로 개종했고, 이는 프랑크 왕국 전체가 가톨릭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클로비스의 개종보다도 더 유명한 일화는 이 세례식에 비둘기 한 마리가 성유(聖油) 병을 물고 날아왔다는 것이다. 확실한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어찌 되었든 이때부터 성유를 머리에 붓는 도유식(塗油式)은 프랑스 왕의 권위와 전통을 세우는데 중요한 의식이 되었다.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마지막 왕인 샤를 10세(Charles X, 1757-1836) 역시 1825년 5월 29일 랭스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가졌다. 형이었던 루이 18세가 자식을 두지 못한 채 1824년에 서거하면서 67세의 늦은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샤를 10세는 왕위에 오른 후 강력한 절대 왕정의 부활을 꿈꾸며 전제정치를 강행하고 의회를 해산시켜버리는 등 반동주의를 펴나갔고, 결국 이에 불만이 커진 프랑스 국민들은 1830년 7월 혁명으로 그의 정치권력을 박탈하고 왕좌에서 물러나게 만들었다.
프랑스 왕들의 군주로서의 첫걸음이 시작된 랭스 대성당의 명칭은 '노트르담 성당'이다. 이름도 생김새도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Cathédralel Notre-Dame de Paris)과 꼭 닮지 않았나.
그러나 클로비스 1세가 세례를 받았던 당시의 그 대성당은 1210년에 불탔고, 지금의 랭스 대성당은 소실된 성당을 대신해서 13세기 말에 세워진 것이다.
외관에서 볼 수 있듯이 2천 개가 넘는, 그야말로 조각상들로 '뒤덮인' 랭스 대성당은 많은 조각과 화려한 장식으로 프랑스 고딕 양식의 절정을 보여준다. 그중 서쪽 입구에 있는 조각상 중에는 미소를 띠고 마치 파이팅을 외치는 것 같은 천사의 모습이 보이는데, '랭스의 미소'(Sourire de Reims)로도 불리는 이 조각상 때문에, 미소 짓게 되고 기분도 좋아진다.
성당 내부는 화려한 장미 문양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는데, 바깥의 빛을 이용하여 성당 내부의 분위기를 화려하면서도 성스럽고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멋스러운 외관을 느끼고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그 웅장함에 한 번 놀라고 따스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에 압도되어 또 한 번 놀란다.
맨 위에 있는 동그란 장미 문양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13세기 말에 만들어진 것으로, 가장 가운데 성모 마리아를 중심으로 12명의 사도가 둘러싸고 있고 그 주위를 24명의 천사가 주위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아래의 장미 문양은 1차 세계대전 이후 1936년에 다시 만들어진 것으로, 가운데 역시 성모 마리아가 있고, 꽃잎들은 그녀의 여러 자질을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한쪽에 2개의 장미 문양이 크게 위치하고 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두 장미 문양 사이로 세로로 길게 세워진 스테인드 글라스는 왕의 대관식을 나타내고 있는데, 왕은 공작이나 백작 그리고 보좌하는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으로 프랑스 왕의 대관식이 행해졌던 랭스 대성당이 가진 특별함을 스테인드 글라스로 나타내 준다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성당 곳곳에는 현대에 만들어진 스테인드 글라스를 찾아볼 수 있다.
로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 1792-1868)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벨칸토 낭만주의의 정수를 보여주는 대표적 작곡가이다. 랭스와 로시니가 도대체 무슨 관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로시니의 오페라 중에는 <랭스로 가는 길>(Il Viaggio a Reims)이라는 작품이 있다. 바로, 그의 마지막 이탈리아어 오페라이자 파리에 정착한 이후 쓰인 오페라! 그리고 샤를 10세의 대관식을 위한 오페라!
이탈리아 페사로(Pesaro)에서 태어난 로시니는 음악가였던 부모님 덕분에 어려서부터 음악을 접하고, 바이올리니스트, 성악가, 피아니스트로 무대에 섰다. 1804년 볼로냐로 이사 간 후에는 몇몇 극장에서 쳄발로 주자로도 활동했다. 그러다가 1806년 로시니는 볼로냐 콘서바토리(Bologna Conservatory)에서 공부하게 되는데, 아마 이때부터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음악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음악 스타일을 만들어간 듯하다.
볼로냐 콘서바토리에서 공부하는 동안 썼던 그의 첫 오페라 <데메트리오와 폴리비오>(Demetrio e Polibio)는 몇 년의 시간이 흘러 1812년에서야 로마에서 초연되었고, 잇달아 그의 오페라들이 발표되었다. <탕크레디>(Tancredi, 1813)와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L'italiana in Algeri, 베니스 초연, 1813) 등이 성공을 거두면서 로시니는 이탈리아 밖에서도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고, 1829년 <기욤 텔>(Guillaume Tell, 파리 초연, 1829)에 이르기까지 약 20년 동안 38편의 오페라를 썼다. 그야말로 대단!
파리에 정착하기 전, 로시니는 1815년부터 1822년까지 나폴리의 산 카를로 극장(Teatro San Carlo)에서 전속 작곡가 겸 예술감독으로 활동했고, 이 곳에서 많은 작품을 썼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은 나폴리뿐만 아니라 <세빌리아의 이발사>(Il Barbiere di Siviglia, 로마 초연, 1816), <도둑까치>(La gazza ladra, 밀라노 초연, 1817)와 같이 여러 도시에서 연주되었다. 하지만 당시 이탈리아에는 저작권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로시니가 오페라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연주에 참여하고 계속해서 곡을 써야 했다. 결과적으로 많은 작품(多作)이 남겨진 셈인데, 로시니의 '다작'은 현실과 그의 열정이 빚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런던을 거쳐 1824년 파리에 정착한 로시니는 그해 12월 Théâtre Italien(혹은 Comédie-Italienne)의 감독이 되었다. 이 곳은 파리에서 이탈리아 오페라가 상연되던 극장이었는데, 그의 <랭스로 가는 길>도 이 곳에서 초연되었다.
<랭스로 가는 길>(Il Viaggio a Reims)은 로시니가 1825년 랭스 대성당에서 열릴 샤를 10세의 대관식을 축하하고 기념하기 위해 쓴 곡이다. 프랑스 낭만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세웠다고 평가받는 제르망 드 스탈(Anne Louise Germaine de Staël-Holstein, 1766-1817)의 소설 <코린느>(Corinne, ou L’Italie, 1808)에 영감을 받아, 이탈리아의 극작가 루이지 발로키(Luigi Balocchi)의 대본으로 만들어진 로시니의 마지막 이탈리아어로 된 오페라이다.
대관식을 위해 준비된 <랭스로 가는 길>은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테너, 베이스로 구성된 주연급 성악가가 14명이나 등장하는 그야말로 스페셜 오페라였기 때문에 가수들을 캐스팅하는 데부터 큰 어려움을 겪었다. 노래 자체도 음역이 넓고 음폭이 커서 부르기 쉽지 않았을뿐더러, 주연급 가수가 많다 보니 각각 자신이 무대에서 돋보이지 않는데 대해 불만도 생겨났다고.
그래서 대관식 이전에 초연하지 못하고 결국 대관식이 거행된 지 약 3주 후 1825년 6월 19일에서야 로시니가 직접 지휘하고 샤를 10세가 참석한 가운데, <Le voyage à Reims, ou l'Hôtel du Lys-d'Or>라는 프랑스어 제목으로도 소개되면서, 로시니가 감독으로 있었던 Théâtre Italien에서 열릴 수 있었다. (*초연한 가수와 배역은 아래에서 참고)
샤를 10세에게 헌정하기 위해 쓰인 곡인 만큼 내용은 그의 대관식에 가기 위해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랭스에 가는 길목인 플롱비에르 레 뱅(Plombiéres-les-Bains)에 '황금 백합'(golden lily)의 의미를 가진 'Giglio d’oro'라는 여관에 모이게 되면서 이리저리 얽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로도 플롱비에르 레 뱅은 온천으로 유명해서 휴양을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프랑스 왕의 대관식은 평생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엄청난 사건이자 이벤트였기 때문에, 대관식이 있을 때 이를 보기 위해 유럽 각국에서 랭스로 모여드는 사람들은 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고 한다. 당시 교통수단을 생각해보면 랭스로 가는 길은 쉽지 않은 여정이었을 터. 로시니의 오페라 <랭스로 가는 길>에서도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관식을 보기 위해 자신의 나라로부터 긴 여행을 떠나온 이들이다. 이들은 '황금 백합'이라는 여관에 모여 서로 자신이 얼마나 힘들게 랭스로 가고 있는지를 얘기하는데, 결국에 모두 말이나 마차를 구할 수 없어 갈 수 없게 된다. 이들은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자신들의 나라와 관련된 노래를 부르면서 대관식에 갈 수 없음을 노래로 달래고, 피날레에서는 결국 오페라의 의도와 극 중 인물들의 목적이 합해져서 샤를 10세를 찬미하는 합창으로 마무리된다.
프랑스 왕들의 대관식이 이루어졌던 곳, 바로 그곳 랭스로 향한다는 의미는 프랑스에 정착한 로시니가 샤를 10세를 향해 보여주고자 했던 열렬한 지지였다. 대관식을 보기 위해 각국의 사람들이 몰려드는 장면을 그려냄으로써 랭스에서 열린 프랑스 왕들의 대관식에 대한 역사와 전통을 높이사고 나아가 샤를 10세에 대한 지지를 보여준 것이다. 물론, 로시니의 마음과는 달리 초연 당시 그리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고 하지만, 이 작품으로 로시니는 프랑스에서의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로시니는 <랭스로 가는 길>을 대관식을 위한 이벤트 용으로 연주한 후 곡의 일부를 다시 사용할 생각이었는지, 많은 부분들이 오페라 <오리 백작>(Le Comte Ory, 1828)에서 재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1825년 초연 당시 가수들과 배역은 다음과 같다.
Giuditta Pasta (Corinna), Adelaide Schiassetti (Marchesa Melibea), Laura Cinti-Damoreau (Contessa di Folleville), Ester Mombelli (Madama Cortese), Domenico Donzelli (Cavalier Belfiore), Marco Bordogni (Conte di Libenskof), Carlo Zucchelli (Lord Sidney), Felice Pellegrini (Don Profondo), Francesco Graziani (Barone di Trombonok), Nicholas-Prosper Levasseur (Don Alvaro), Luigi Profeti (Don Prudenzio), Piero Scudo (Don Luigino), Maria Amigo (Delia), Caterina Rossi (Maddalena), Dotty (Modestina), Giovanola (Zefirino), Auletta (Antonio), Trévaux (Gelsomino).
-이탈리아어 제목은 '랭스로 가는 길 혹은 황금 백합이라는 여관에서'(Il Viaggio a Reims ossia L'Albergo del Giglio d'oro)라고 쓰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랭스에는 대성당 외에도 바로 옆에 위치한 토 궁정(Palais de Tau), 카네기 도서관(Bibliothèque Carnegie), 성 레미 수도원(Basillique St. Remi), 그 옆에 위치한 성 레미 박물관(Musée St. Remi) 그리고 와인과 샴페인 농장까지, 랭스에는 즐길 거리가 참 많다.
샤를 10세의 대관식에 참석했던 유명 인사 중, 프랑스의 소설가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1885)는 랭스를 방문하면서 생 레미 수도원에 들르게 되었고, 이때 <노트르담 드 파리>(Notre Dame De Paris, 일명 <노트르담의 꼽추>)에서 콰지모도(Quasimodo)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역사와 아름다움을 간직한 랭스. 프랑스의 대표적인 와인, 샴페인 생산지이기도 한 랭스에 로시니의 오페라 <랭스로 가는 길>을 들으며 방문해보는 건 어떨지. 기차나 버스라면, 마차나 말을 탔던 그때 그들처럼 랭스로 가는 길을 포기하지 않아도 될 테니깐.
*다음 이야기는 <도시.樂 투어> 프랑스, 랭스 2탄, "마쇼를 잊지마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