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정윤 May 02. 2019

마쇼를 잊지 마쇼

<도시.樂 투어> 프랑스, 랭스(Reims) 2탄


앞서 로시니의 <랭스로 가는 길>을 소개하긴 했지만, 사실 랭스의 작곡가는 따로 있다. 로시니보다는 약 500년가량 앞선 14세기에 활동했던 프랑스의 작곡가 기욤 드 마쇼(Guillaume de Machaut, ca.1300-1377)이다.  



기욤 드 마쇼 거리 (Rue Guillaume de Machaut)


랭스 대성당(Cathédralel Notre-Dame de Reims) 주위로 눈에 띄는 거리 이름이 있는데, 바로 기욤 드 마쇼 거리(Rue Guillaume de Machaut)이다. 사실 거리 이름이 건물 벽에 표시되어 있어서 눈에 띄는 게 아니라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봐야 하지만!


Rue Guillaume de Machaut, Reims (Photo courtesy of @musicnpen)


서울의 퇴계로나 을지로와 별반 다를 게 없는데, 적어도 나에게는 왕이나 다른 유명인의 이름이 붙은 거리보다도 베토벤 거리나, 모차르트 거리, 하이든 거리처럼 음악가의 이름이 붙어있는 거리가 훨씬 더 반갑다. 우습지만, 여행지에서 반가운 친구를 만난 기분이랄까? 더군다나 프랑스의 음악 역사에서 아니 서양음악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인 '마쇼' 거리라니! 유럽에서는 음악가들의 이름을 붙인 거리를 발견하는 재미도 참 쏠쏠하다.




기욤 드 마쇼, 그리고 랭스


프랑스 아르스 노바(Ars Nova, 새로운 예술)의 대표적인 인물로 평가받는 기욤 드 마쇼는 동시대인들과 이후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준 14세기 프랑스의 시인이자 작곡가이다. 혹시라도 음악에 문외한이라 마쇼를 잘 모른다면, 마쇼는 프랑스에서 우표로도 제작되었으니 지금부터라도 유명인인 걸로!


마쇼가 그려진 우표


마쇼는 랭스가 위치한 상파뉴-아르덴(Champagne-Ardenne) 지역인 마쇼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그가 자라면서 성직자 교육받은 곳이 바로 랭스라고 알려져 있다. 그를 '마쇼'라고 부르긴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마쇼' 지역의 '귀욤'이라는 인물이다.


마쇼의 활동에 대해서는 그가 직접 쓴 설화시를 통해 알 수 있다. 마쇼는 당시의 사건이나 자신을 후원해준 사람들에 대한 설명을 시로 남겼는데, 이는 마쇼뿐만 아니라 당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기도 하다.


한 예로, 마쇼는 1323년에 보헤미아의 왕이었던 얀 루쳄부르스키(John of Luxembourg, 1296-1346)의 서기가 되어 그의 유럽 원정과 여행을 수행하였는데, 이 내용 역시 그의 시에 기술되어 있다. 마쇼가 이런 방식으로 남긴 작품은 <행운의 처방>(Remede de Fortune) , <진정한 시집>(Le livre du voir dit) 등이 있으며 설화시 서정시로 전해진다.


마쇼의 필사본(1372)에 그려진 채색된 세밀화 (출처: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BnF))


마쇼는 평생 귀족들과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지금의 스페인 바스크 지방에 해당하는 나바라(Navarre)와 프랑스의 왕들, 베리(Berry)와 부르고뉴(Burgundy)의 공작들 등 많은 귀족들의 후원을 받았다. 이 강력한 후원자들 덕분에, 그는 자신의 많은 작품을 필사본으로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음악사가들은 귀족들의 후원보다는 마쇼가 예술가로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고 후대에 남겨주기 위한 욕구가 훨씬 더 크게 작용했고 결과적으로 필사본 작업에 쏟아냈다는 쪽에 무게를 실어주는 편이다. 마쇼는 14세기 당시 작곡가로서 오늘날의 작곡가들 못지않게 매우 근대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노트르담 미사> (Messe de Nostre Dame)

 

마쇼는 300여 편의 시뿐만 아니라 자신이 만든 시로 140여 편의 음악 작품을 남겼다. 1340년부터 1377년 사망할 때까지, 마쇼 랭스에 거주하면서 성당에서 예배 의식을 담당하는 직책을 맡았고, 다른 사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를 짓거나 곡을 쓸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는 1350년경부터 자신의 작품을 필사하여 모으기 시작하는데, 당시 많은 작곡가들이 익명으로 작품을 남겼던 관습과는 달리, 마쇼가 자신의 이름으로 남긴 작품들은 23곡의 모테트(motet), 42곡의 발라드(ballade), 22곡의 롱도(rondeau), 33곡의 비를레(virelai), 19곡의 레(lai) 등 상당하다.


이 중에서도 마쇼의 <노트르담 미사>(Messe de Nostre Dame)은 가히 획기적인 곡이다. 1360년대 초 랭스 대성당의 제단에서 매주 토요일에 거행된 성모 마리아 미사에서 연주할 목적으로 작곡된 이 곡은, 라틴어 가사의 통상 미사곡(키리에, 글로리아, 크레도, 상투스, 아뉴스 데이, 이테 미사 에스트)을 다성음악으로 만든 초기 작품 중 하나다.


이전까지 미사곡은 전체가 아닌 각각 부분을 따로 작곡하여 다양하게 조합하여 미사에서 연주되었다. 간혹, 필사가들이 음악적으로 연관 지어 필사를 해둘 수도 있었고, 여기저기서 가져온 곡들로 전체를 다 구성해놓을 수도 있었다.


그 예로, 지금의 벨기에 남서부에 위치한 투르네(Tournai)에서 발견된 <투르네 미사>(Tounai Mass)는 통상 미사곡 6곡을 포함하지만, 음악적으로 서로 연관이 없기 때문에 여러 명의 필사가가 참여하여 합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툴루즈 미사>(Toulouse Mass), <바르셀로나 미사>(Barcelona Mass), <소르본느 미사>(Sorbonne Mass 혹은 Besançon Mass)도 마찬가지다. 즉, 조합이 이미 되어있는 상태로 전해지는 것도 일반적이지는 않고, 이렇게 발견되더라도 몇몇을 제외하고는 각 부분들은 음악적으로 연관성이 별로 없을 확률이 크다.


이에 비해 마쇼는 전체를 단일 악곡으로 구성하고 4성부로 구성하여  <노트르담 미사>를 만들어냈다. 6개 부분의 모든 악곡에서 서로 음악적으로 연결되는 유사한 부분이 발견되는데, 마쇼는 마치 성당 안에서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과 기둥이 교대로 이어지는 것처럼 리듬의 활동성을 음악 속에서 구축해 나가기 위해 반복되는 리듬을 사용한다거나 리듬의 휴지부(쉬는 부분)와 활동부(움직이는 부분)를 대조시키면서 음악을 구성해나갔다.


서양음악사에서 '한 작곡가'에 의한 '하나의' 악곡으로 인식된 '최초'의 '다성' 미사곡으로 기록되고 있는 <노트르담 미사>는 마쇼 사후에는 그를 추도하는 추도사를 예배에 추가하여 랭스 대성당에서 15세기까지 계속 연주되었다.



현재와 과거의 공존, 역사와 아름다움을 간직한 랭스


랭스 대성당의 장미 문양 스테인드 글라스와 조각들도 아름답지만, 무엇보다 성당 안쪽 애프스(Apse) 부분 깊은 곳에 위치해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던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기억에 남는다. 가운데에는 아브라함의 이야기와 그리스도의 초기 삶, 왼쪽에는 구약성경 말씀을 표현해두었고, 오른쪽은 성당의 역사이기도 한, 성 레미(St. Remigius)가 클로비스에게 세례를 주는 장면이다.


이 작품을 정말이지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게 된다. 영롱한 파란빛에 이끌려 가까이에서 보게 되고 다시 십자가 앞으로 돌아와서 멀리서 또 한 번 보게 되고. 십자가와 샤갈의 작품이 겹쳐진 광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파란색의 성스럽고 오묘한 빛이 십자가를 감싸면서 너무나도 황홀한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샤갈의 스테인드 글라스 (Photo Courtesy of @musicnpen)


랭스 대성당은 19세기 말 이후 독일군의 공격과, 세계대전을 겪으며 유리로 이루어진 스테인드 글라스는 대부분 산산조각 났었고, 성당 벽은 불에 타고, 조각상도 거의 부서졌다. 그러다가 1918년, 미국 록펠러 재단의 후원으로 랭스 대성당은 대대적인 복구공사가 시작되었다. 불에 탔던 나무 지붕은 이때 콘크리트로 바뀌었다. 이후에 재건 프로젝트에 함께한 샤갈은 본래 있었던 스테인드 글라스를 모델로 삼아 새로운 스테인드 글라스를 완성했고, 지금 랭스 대성당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은 1974년 6월 14일에 완성된 것이다.


샤갈의 스테인드 글라스 옆에는 2011년, 랭스 대성당 800년, 그리고 독일과 프랑스 수교 50년 기념으로 탄생한 작품인 이미 크뇌벨(Imi Knoebel, b.1940)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다. 프랑스는 독일군에 의해 파괴된 랭스 대성당에 독일인 아티스트를 참여시킴으로써 예술로서 포용하는 진정한 화합을 보여주었다.


두 작품은 분위기나 색깔에 있어 선명한 차이를 보이는데, 샤갈의 작품은 깊은 푸른빛을 띠는데 반해, 크뇌벨은 작품에 노란색과 붉은색, 파란색 등 원색을 과감하게 사용했고 이 때문에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본래 있던 고딕 양식, 그리고 샤갈과 크뇌벨의 작품들로 이어지는 역사와 예술의 흐름은 랭스 대성당에서 어우러지며 독특한 조화로움으로 남아있다.



이미 크뇌벨의 스테인드 글라스 (사진. https://www.maxpixel.net)




마쇼의 많은 음악이 탄생되고, 계속 연주되었던 랭스 대성당. 그리고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스테인드 글라스를 볼 수 있는 곳.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만 보고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곳에서 활동하던 음악가 '마쇼'도 잊지 마쇼!



매거진의 이전글 랭스로 가는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