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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정윤 May 09. 2019

J. S. 바흐와 성 토마스 교회

<도시.樂 투어> 독일, 라이프치히(Leipzig) 1탄


음악의, 음악에 의한, 음악을 위한 도시

(City of music, by music, for music)


라이프치히(Leipzig)는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꼭 방문해야 하는 혹은 방문하고픈 '성지'같은 곳이다. J. S.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가 활동했고, 바그너(R. Wagner, 1813-1883), 한스 아이슬러(Hanns Eisler, 1892-1862), 클라라 비크(C. Wieck Schumann, 1819-1896)가 태어난 곳이며,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 그리그(Edvard Grieg, 1843-1907),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1809-1847),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 말러(Gustav Mahler, 1860-1911) 등 수많은 음악가들과 인연이 깊은 곳이기 때문이다.


라이프치히에는 유대인 예배당인 시나고그(Synagogue), 독일 통일의 불씨가 시작된 성 니콜라이 교회(Nicolaikirche), 성 토마스 교회(Thomaskirche), 18세기 중반부터 연주가들의 소규모 공연장이었던 게반트하우스(Gewandhaus)가 있고, 성 토마스 소년합창단(Thomanerchor), 멘델스존이 지휘자로 활동하기도 했던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Gewandhaus orchestra, 1743년에 설립)도 여전히 명맥을 잇고 있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 출판사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Breitkopf & Härtel)이 1719년에 시작되었고, 1800년에 시작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에디션 페터스(Edition Peters)는 라이프치히에 본사를 두고 런던과 뉴욕에서도 운영 중이며, 1807년에는 피스(sheet music) 형태로 출판하는 호프마이스터(Hofmeister, Friedrich Hofmeister Musikverlag)가 시작되었고, 프랑크푸르트에 본사를 두고 있는 독일출판서점협회(Börsenverein des Deutschen Buchhandels)는 1825년 라이프치히에서 가장 먼저 생겨났다. 그만큼 출판이 활발했던 도시가 바로 라이프치히다.


1409년에 설립된 라이프치히 대학뿐 아니라, 1843년 슈만과 멘델스존이 함께 설립한 콘서바토리로 시작되어 독일 음악학교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펠릭스 멘델스존 음악연극학교(Hochschule für Musik und Theater "Felix Mendelssohn Bartholdy")가 있고, 슈타인웨이(Steinway&Sons), 뵈젠도르퍼(Bösendorfer), 벡슈타인(Bechstein)과 함께 세계 4대 피아노 중 하나인 블뤼트너(Blüthner) 피아노가 1853년 시작되는 등 라이프치히는 음악-인프라를 일찌감치 갖춘 그야말로 음악으로 꽉 채워진, 음악의, 음악에 의한, 음악을 위한 도시다.


*이러한 이유로 <도시.樂 투어> '라이프치히 편'은 여러 번에 걸쳐 이어나가려고 한다.




좀 식상해 보이긴 해도, 이 중에서 라이프치히와 함께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아마도 J. S. 바흐이지 않을까 싶다. 행여 바흐 때문에 라이프치히를 방문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라이프치히에서 응당 거쳐가는 중심부(zentrum)에는 바흐가 활동했던 성 토마스 교회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라이프치히를 방문했던 사람이라면 바흐를 자연스레 기억할 수밖에 없다.



J. S. 바흐, 라이프치히로 가다


바흐가 평생 거쳐간 도시는 경력의 흐름으로 볼 때 크게 8곳 정도 되는데, 아이제나흐(Eisenach), 오르두르프(Ohrdruf), 뤼네부르그(Lüneburg), 바이마르(Weimar), 아른슈타트(Arnstadt), 뮐하우젠(Mühlhausen), 쾨텐(Cöthen) 그리고 바로 라이프치히다. 꽤 많은 지역 같아 보이지만, 독일 북부 함부르크 근처인 뤼네부르그를 제외하면 모두 바흐가 태어난 아이제나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J. S. 바흐가 활동했던 지역의 주요 도시들


당시 많은 음악가들이 힘 있는 궁정에서 황제와 귀족을 위해 여러 곳으로 거처를 옮겨가면서 국제적으로 활동했던 모습에 비해 바흐의 활동 반경은 생각보다 그리 넓지 않다. 오늘날까지 이어진 바흐의 유명세가 아이러니 해질 정도이니 말이다.


그의 음악에서 위대함마저 느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나, 이쯤 되면 우리에게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로 주입(?)되기까지, 그리고 이를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기까지, 바흐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음악가가 얼마나 많았으며, 그를 연구하는 음악학자들이 도대체 얼마나 많았던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정말이지 전 세계에 바흐 추종자들이 어마 무시하게 많은 것이다.


멘델스존만 하더라도 1843년 성 토마스 교회에 바흐 동상 건립을 추진했다고 전해지며, 지금 교회 앞에 있는 바흐 동상도 교회 복원 추진과 함께 카를 제프너(Carl Ludwig Seffner, 1861-1932)에 의해 1908년 만들어졌으니, 동상 세우기 만큼이나 바흐 세우기가 꽤 오랫동안 이어져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음악 역사와 성 토마스 교회 역사 속에서 J. S. 바흐가 존재감 있는 인물임은 부정하기 힘들다.

 

성 토마스 교회 앞에 세워져 있는 J. S. 바흐의 동상 photo courtesy by @musicn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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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토마스 교회칸토르(cantor)와 음악 감독직은 독일에서 가장 명망 높은 자리 중 하나였고, 바흐는 1723년에 이 직책을 맡게 되면서 라이프치히로 오게 되었다. 요한 쿠나우(Johann Kuhnau, 1660–1722)가 세상을 떠나면서 공석이 생긴 것인데, 본래 이 자리에는 바흐가 아닌 게오르그 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 1681-1767)과 크리스토프 그라우프너(Christoph Graupner, 1683-1760)가 물망에 올랐었다. 그러나 텔레만은 더 높은 보수를 제시했던 함부르크로 떠났고, 다름슈타트에 있던 그라우프너도 이직을 거절하면서, 결과적으로 쿠나우의 후임은 바흐가 되었다. 오늘날 바흐의 위상을 생각해볼 때, 바흐가 성 토마스 교회에서 원한 1순위 음악가가 아니었던 사실은 조금 놀랍기도 하다.


쾨텐에서 라이프치히로 온 바흐는 성 토마스 교회를 비롯한 총 4개의 교회의 음악을 책임지면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성 토마스 교회 소년합창단의 지휘를 맡았으며, 1729년에는 라이프치히 대학 학생들로 구성된 연주 단체인 콜레기움 무지쿰(Leipzig collegium musicum)의 음악감독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바흐는 라이프치히에 소속된 시위원 신분으로 계약서에 적힌 대로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했고 시장의 허락 없이 도시를 떠날 수도 없었다. 이전에 있던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유롭지 못했고, 고용되어 있던 곳에서 요구하는 삶을 살아야 했던 것이다. 그런 위치에서 요구받은 많은 음악을 쏟아내야 했던 바흐는 라이프치히에 있는 동안, 칸타타와 많은 교회음악, 협주곡과 실내악 작품,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르쳤던 학생들을 위한 교육용 곡을 포함한 많은 오르간 곡하프시코드 곡을 작곡했다.


라이프치히 이전부터 바흐가 평생 일하며 작곡한 수많은 곡들은 20세기에 들어서 독일의 음악학자인 볼프강 슈미더(Wolfgang Schimieder, 1901-1990)에 의해 분류되고 목록화되어, BWV(Bach-Werke Verzeichnis, 바흐 작품 목록)라는 표시로 목록화되어 통용되고 있다.

 

바흐 자필본 BWV1045의 일부(출처. Staatsbibliothek zu Berlin)

*위의 악보는 바흐의 신포니아의 일부로, 그가 라이프치히에서 활동하던 시기인 1743-1746년 사이에 쓰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바흐 학자들은 이 곡이 본래 어떤 칸타타의 앞부분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바흐와 성 토마스 교회


성 토마스 교회는 1212년 건립되었고,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Thomanerchor) 역시 이때부터 역사가 시작된다. 교회 건물은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을 받아들여진 모습으로 14-15세기를 지났는데, 지금의 모습은 1884-1889년 사이에 있었던 교회 재건 사업을 통해 재정비되어 고딕 양식으로 보전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성 토마스 교회 (사진. https://www.thomaskirche.org)


바흐가 1723년부터 1750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성 토마스 교회의 음악을 책임졌기 때문에, 교회에는 바흐를 기리는 곳으로 가득하며, 그의 악보와 일부 악기들은 교회 내부 작은 전시실에서 관람도 가능하다.


먼저, 성 토마스 교회 내부에는 바흐의 무덤이 있다. 하지만 본래부터 이 곳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바흐의 유골은 성 요한 교회(Johanniskirche)에서 1894년에 발견되어 그곳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교회가 전쟁에 파괴되는 바람에 1949년 성 토마스 교회로 옮겨졌고, 다음 해인 1950년 바흐 서거 200년을 기념하여 무덤이 이 곳에 만들어진 것이다..


성 토마스 교회 내부에 있는 J. S. 바흐의 무덤. photo courtesy by @musicnpen


바흐의 무덤 너머로 보이는 대리석과 설화 석고로 된 세례반(Baptismal font)은 1614-1615년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기에서 바흐의 두 번째 부인이었던 안나 막달레나(Anna Magdalena, 1701-1760)와 그녀와 바흐 사이의 11명의 아이들이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맨 뒤쪽에 화려한 금장식으로 되어있는 것은 신고딕풍의 예수 제단으로, 건축가인 콘스탄틴 리프시우스(Johannes Wilhelm Constantin Lipsius, 1832-1894)가 1888년에 만든 것이다.


리프시우스가 성 토마스 교회에 만든 또 다른 것은 서쪽으로 나있는 문인데, 이 문은 1936년 전쟁에 부서졌다가 2008년에 복원되었고 2009년 멘델스존 탄생 200년을 기념하여 이때부터 '멘델스존 문'(Mendelssohn portal)으로 불리게 되었다.


남쪽에 있는 바흐 창문은 19세기 말에 만들어진 것으로 뮌헨 출신의 스테인드 글라스 아티스트이자 화가인 카를 부쉐 (Karl de Bouché, 1845-1920)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바흐 창문 (Bach Fenster)


성 토마스 교회의 모든 역사적 요소들이 J. S. 바흐에 대단히 의미를 두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성 토마스 교회에 있는 2개의 오르간은 아쉽게도 둘 다 바흐 시대의 오르간은 아니다. 하나는 서쪽 편에 있는 것으로 오르간 제작자인 빌헬름 사우어(Wilhelm Sauer, 1831-1916)가 1889년에 만든 것(일명, Sauer 오르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제랄드 뵐(Gerald Woehl, b.1940)이 만든 것(일명, Bach 오르간)이다.


Sauer 오르간(좌)과 Bach 오르간(우) (사진. https://www.thomaskirche.org)


'사우어 오르간'은 처음에는 63개의 소리를 가지고 있다가 1908년 88개로 소리의 폭이 넓어졌었는데, 전쟁으로 망가졌다가 2005년에서야 1908년 소리로 복원되었다. 그리고 '바흐 오르간'은 남쪽의 바흐 창문과 마주 보는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에 따르면 Bach-오르간은 61개의 스톱, 4개의 매뉴얼과 페달이 있으며, 소리는 18세기의 오르간 소리를 재현했다고 한다.




성 토마스 교회는 바흐와 함께 역사를 이어나가는 모습이다. 이 모습에 좀 더 보태자면, 바흐 이전에는 1519년 종교개혁 당시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와 요한 에크(Johann Eck, 1486-1543) 사이에 시작된 논쟁(일명, 라이프치히 논쟁)으로 인해, 1539년에 마틴 루터는 성 토마스 교회에서 자신의 생각을 설교하기도 했다. 그리고 바흐 이후로는 모차르트가 1789년 12월, 오르간 연주를 했다고 전해지며, 1841년 4월에는 멘델스존이 바흐의 <마태수난곡>(Matthäuspassion)을 연주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성 토마스 교회의 800년이 넘는 긴 역사, 그중에서 바흐가 차지하는 27년은 결코 길지 않다. 하지만, 바흐가 라이프치히와 성 토마스 교회에 남긴 음악과 흔적은 분명 적지 않은 무게를 갖고 있다. 성 토마스 교회는 바흐와 그 역사를 생각하며 충분한 시간을 갖고 둘러볼만하다.



다음 이야기는 <도시.樂 투어> 독일, 라이프치히 2탄, "라이프치히로 돌아온 에디션 페터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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