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허수(i)가 되어보자
학교에서 처음으로 '허수'를 배웠던 날을 기억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i^2 = -1"를 처음 마주한 순간 말이다.
자연과학이나 수학과 같이 자연의 본질을 탐구하는 분야를 좋아했던 나는 '허수'라는 걸 배웠던 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조금 어려워 보이는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 연산 방법이나 특성에 대해서만 배웠지 '허수' 그 자체에 대한 것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개념 이해와 성적은 무관하겠지만, 어딘가 참을 수 없을 만큼 불편했다.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그 개념으로 인해 한 동안 먹먹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그래서 똑똑히 기억하는 것이다.
정체도 파악이 안 됐는데 아무 의심 없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친구들에겐 열등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허수는 말 그대로 실재하지 않는 상상의 수를 뜻하며, 영어로도 Imaginary Number 이기에 소문자 i로 하나의 개념을 표현한다.
아무튼 "'허수'는 작은 아이(i)네?"가 나의 명료한 기억이다.
조금 더 성장한 나는 공학도가 되고자 했다.
나름대로의 야심 찬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공대로 진학하였다.
자연의 본질이 좋았던 내가 응용학문을 선택했으니,
줄기차게 등장하는 '허수'는 그저 연산 방법과 특성만 얕게 이해하고 있었을 뿐
여전히 '허수'는 작은 아이(i)였다!
대학 3학년이 되었을 무렵으로 기억한다.
'허수'는 상상의 수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기술하기 위한 수학적 개념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다시 한번 음미해보자!
가우스 선생이 n차 방정식엔 n개의 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수학에서의 '허수'는 없어서는 안 될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뉴턴 선생이 정립한 고전역학에서 세상이 양자의 세계와 우주에 대한 탐험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관측하기 어려운 양자역학, 우주 탄생 전후와 같은 문제가 풀리기 시작했다. 물리학에서의 '허수'는 없어서는 안 될 개념으로 굳건해졌다.
스프링, 자동차 쇽업소버, 자율주행, 통신, 내진설계, 전기소자, 빛, 소리, 파동 등 진동이 있는 모든 것(진동이 없는 게 있나?)에 대한 물리적 현상을 기술하기 위해 공학에서의 '허수'는 필수적인 개념이 되었다.
SNS에 업로드하기 위해 스마트폰에서 사진을 수정하고 필터를 씌우고 하는 없어서는 안 될 우리의 일상도
'허수'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라이프니츠가 '허수'에 대해 표현했던 것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허수는 존재와 비존재의 사이에 있는 양서류와 같은 것이며, 성스러운 영혼의 놀랍도록 훌륭한 피난처이다"
'작은 아이, i'가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없었다는 말과 같다.
대개 '작은 아이'는 꿈과 희망을 갖는 어린이를 떠올림과 동시에 소외되기도 하는 존재. 즉, 주류를 뜻하지는 않는다. 법정에서는 '작은 아이'의 증언이 효력을 갖기 쉽지 않다는 것도 상통하는 바일 것이다.
하지만 '다 큰 어른'은 용감해지기 어렵고, 책임감의 무게로 늘 어깨만 무거워 보인다.
소중한 존재이자 아직은 미숙한 존재였던 '작은 아이(i)'가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이 되기까지 기여한 모든 분야에서의 업적과 활약상에 사뭇 겸허해지는 마음까지 생긴다. 보이지 않고 직관적이지 않아 불편하고 먹먹했던 '허수'를 한참 동안 덩그러니 바라보았다.
실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막연히 두려운 무언가, 어쩌면 나와는 상관없는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마치 언어를 배워서 새로운 문화를 알게 되는 것처럼 차원을 뛰어넘는 것이다. 차원 너머에는 세상을 이롭게 해 주고, 이해의 폭을 확장시켜주었다.
'작은 아이(i)'가 '다 큰 어른'보다 훨씬 낫네!
'허수'라는 뉘앙스와는 다르게 묵직한 '작은 아이, i'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삶에 늘 관여하고 있는 힘은 부모님과 같다고 느껴진다. 무한한 사랑으로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 언제나 계시는 나의 부모님 말이다.
가능하다면
'다 큰 나'가 부모님께 예전의 '작은 아이'로 돌아가서 이렇게 전하고 싶다.
"존경하는 부모님처럼 묵직하게 '허수'와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또 꿈꿔본다면
아직 '작은 아이'인 우리 아들에게 훗날 이렇게 전하고 싶다.
"아빠는 '작은 아이, i'와 같은 사람이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렴"
새삼 '허수'가 있어 여러모로 고마운 순간이다.
오늘 하루는 '작은 아이'가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