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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음 Oct 19. 2020

멋진 배경

-Adam<Giselle>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가장 괴로운 것 중에 하나는 공연을 실황으로 못 본다는 것이다.    



생활비가 쪼들리고 컴알못이 온라인 수업하느라 밤늦게까지 고생하는데... 그런 게 힘든 게 아니라 공연을 못 보는 게 가장 괴롭다는 게 때론 웃기지만 그렇게 체감이 되는 인간인 것을 어쩌겠나.     



 똑같은 공연을 몇 번씩 보는 나를 보고 지인들은 도대체 같은 공연을 왜 여러 번 보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종종 한다. 거기에 대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여러 번 볼수록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공연의 내용이 매번 새롭게 느껴지는 재미는 한 번 중독되면 헤어 나오기 힘들다.         


 

 한 창 공연을 여러 편이 몰아보고 있을 때였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교수님께서 갑자기 나에게 질문을 던지셨다.               



"도대체 뭐가 되고 싶은 거예요?"       

        


이것저것 하며 열심히 사는 사람이긴 한데, 나이는 많고... 나라는 아이가 왠지 세상을 부유하는 느낌이 드셨나 보다. 하지만 그때 그 질문에 대해 나는 빠른 답을 내놓았다.  

             


"그냥 배경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          



교수님의 긴 침묵으로 보아 나의 뜻이 정확이 전달 안된 것이 분명하지만 이제라도 그 대답에 대한 이유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주변 지인들은 내가 무언가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을 보며 뭔가 큰 꿈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고백하건대 어렸을 때는 어디서든 내가 주인공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다. 능력도 없고 딱히 재능도 없었지만 사람들이 나를 못 알아봐 주는 거라고 굳게 착각하고 있었던 시절 말이다. 하지만 공연을 보러 다니면서 무대 위의 사람들에게 나라는 피사체를 투영하며 여러 가지를 생각하다 보니 나는 나 나름의 세 가지 개똥철학을 정립하게 되었다.     

          

                    

<국립발레단 지젤>  

             


1. 주인공은 힘들다.    

           

 존재 자체가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 말 안 하고 별 짓 안 해도 존재 자체가 사람의 이목을 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나로서는 아직도 신기하지만 수업을 하다가 많은 아이들 속에서도 특유의 존재감이 있는 아이를 만나면 저런 건 그냥 타고나는구나 싶다.     

 이런 사람들은 항상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다 보니 작은 행동도 눈에 띈다. 작은 사건이 사고가 되고 생각 없이 행동하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보통 사람보다 빨리 성공하기도 하지만 빨리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자신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의미가 되는 삶을 감당하는 것이 주인공의 역할인 것이다. 

              

2. 조연은 괴롭다.    

           

 조연은 주인공이 될 수도 있는 만큼의 매력을 가지고 있으나 존재감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주인공과의 거리는 단 1인치. 옆에서 봐도 주인공 못지않은 재주를 가지고 있으나 이상하게 무엇인가 부족하다. 이유를 알고 원인을 찾으면 고치기라도 할 텐데 조연이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특별히 없다. 그래서 조연들은 더 괴로운 것인지도 모른다. 조연 중에는 어느 순간 주인공이 되는 사람들도 있고 평생 그 자리에 머물다가 사라지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조연은 "나는 왜?"라는 질문에 답을 받지 못한 채 기약 없는 기회를 기다리는 괴로운 역할이다. 그들이 가끔 못되고 억세고 악하게 구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3. 엑스트라는 지친다.               


 엑스트라는 딱히 매력도 없고 야망도 없으나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하게 하는 사람들이다. 사실 세상은 수많은 엑스트라에 의해 큰 문제없이 돌아가지만 이들의 존재감은 워낙 미미해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계속 의심하게 된다. 나는 이 세상의 80% 이상의 사람은 엑스트라로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이론적으로는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이고 한 사람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엑스트라는 대부분 군중으로서 가치가 인정되기에 개개인은 존재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역할이다.          


     

 이렇게 내가 느끼는 세 가지 유형별 사람들의 역할을 나누고 나니 나는  주인공도 조연도 엑스트라도 되기 싫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도 평생 하겠지만 왠지 나의 행복은 주인공의 역할, 조연의 역할, 엑스트라의 역할과는 먼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공연을 볼 때 무대 위의 왕자도 공주도 유모나 친구, 군중도 아닌 무대의 사각지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우리가 보는 공연에는 보통 주인공, 조연, 엑스트라가 등장한다. 하지만 하나의 무대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등장인물 외에도 장소를 표현해주는 무대장치와 조명, 분위기를 연출하는 음악 등도 필요하다. 나는 연극이나 발레 공연을 보는 것을 좋아 하지만 극음악에 특별히 감명을 받거나 음악만 따로 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었다. 그것은 극에 나오는 음악들은 극을 위한 보조적 도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러 공연을 열심히 쫒았다니며 느낀 것은 극음악은 극에서 보조적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감 없이 꼭 필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젤이 미쳐갈 때 음악이 없다면?'             

  

'월리(유령)가 등장하는 장면에 조명이 밝다면?'         


      

 낮과 밤을 바꾸는 무대장치, 시시때때로 바뀌는 조명의 색과 강도, 무대 위의 이야기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음악. 이 모든 것은 무대 위에 항상 존재했지만 내가 인식하지 못한 것이었고 막상 발견하고 나니 없으면 안 되는 절대적인 것들이었다.               



 아마 이런 벅찬 <?> 발견을 열심히 하고 있었을 때에 교수님과 통화를 했던 것 같다. 뜬금없이 배경 이야기를 툭 던지고 나서 나도 조금 민망했지만 결론은 존재감이 없어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수많은 엑스트라 중 빠져도 되는 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존재감 없어도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히 가끔 하는 생각이다.          



 사람들과 대면하는 것이 조심스러운 요즘 공연이라는 장르도 영상화하는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영상화된 공연을 보면 확실히 배우의 땀 한 방울까지 자세히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공연을 보러 가게 되면 아무리 큰돈을 지불하고 좋은 자리를 선점하더라도 무대와 관객석의 거리가 있기 때문에 영상에서 보이는 만큼 자세히 배우들의 표정이나 연기를 볼 수는 없다. 그런 의미로는 지금 진행되는 영상화 작업들이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반갑기도 하지만 영상이라는 것은 그것을 만든 한 사람의 시선에 의해 공연의 방향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시각을 선택해서 볼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자기 인생이지만 그 누구도 스스로의 인생을 완벽히 컨트롤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 속에서 살고 있다. 무대라는 인생의 축소판 위에 다양한 인물들을 나만의 시각으로 해석해보는 재미에 푹 빠져 살았던 사람으로서 이제는 그마저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 슬프기도 하고 그래서 무대가 더더욱 우리의 인생과 가까워진 게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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