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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음 Oct 23. 2020

인생의 굴레

-Glass <Etudes-No.2 >

"도대체 이게 뭐야?"


박서보 <묘법 No. 071208>


 현대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과 같이 미술관에 동행하게 되면 그들의 반응은 대체로 이렇다. 첫 번째로는 당황하고 두 번째로는 예술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음을 고백하거나 한탄하며 마지막으로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이런 걸 왜 보는 거야?"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서적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현대 미술의 경우 그 간결함과 난해함으로 인해 개인의 상상력이 많이 요구된다. 나는 이러한 이유로 현대 미술관을 자주 찾는다. 그림에 음악을 입혀 상상하기를 즐기는 나로서는 현대미술관은 음표를 그려주길 기다리는 커다란 오선지 같다.


 우리나라에 훌륭한 작가들이 많지만 나는 1950년대 이후 서양화 작품을 특히 편애한다. 작가 박서보는 우리나라 현대 미술의 대가로 "묘법"으로 대표되는 작품을 그린다. 반 평생 넘게 선을 연구하는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으렴 경이감이 저절로 든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는 것을 넘어 시간 단위로 세상이 바뀌는 요즘, 한 매개체에 관심을 두고 오랜 시간 꾸준히 작업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이면서 동시에 도전이다. 그의 회고전에서 묘법으로 그려지지 않은 다른 실험적인 작품을 발견했을 때 나는 오히려 작가의 인간다운 고민이 보여서 즐거웠을 정도이다. 팔순이 넘은 대가에게도 인생의 굴레는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현대 미술의 가치 결정은 "존재 의미"를 사람들에게 얼마나 발현시켜주었냐? 에 있다고 본다. 내가 그린 선이 미술관 한쪽 벽을 장식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선들이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현대 미술의 주체는 창작자가 아니라 관람자이다. 두려워 말라. 오롯이 느껴보라. 어차피 답은 여러분의 내면 안에 있다.


40년 넘게 하나의 주제로 끊임없이 선을 그려온 그의 노력이 나에게 더 의미 있게 느껴졌던 건 색채를 입은 최근작들 때문이었다. 최근 그의 회고전 전시명을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라고 명명한 것은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단색의 배경에 강직하게 그려오던 선들은 최근에 예쁘게 색을 입는다.


 박서보의 최근 작품을 보면서 나는 필립 글래스의 음악이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연배인 두 작가는 한 가지 주제를 두고 집요하게 연구한다는 점이 닮아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도전하며 많은 작품을 꾸준히 생산하고 있다는 것도.


 필립 글라스의 음악은 미니멀리즘과 반복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정의된다. 그는 소수의 음을 반복적으로 연주하고 변형 또는 확장하여 자신의 음악세계를 펼친다. 어렸을 때부터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그는 음악에 문외한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명문 음악학교 줄리어드, 피바디 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다. 하지만 그도 예술가라면 누구나 한 번은 거치는 먹고사는 문제에 직면했고, 꽤 오랜 생활 택시를 운전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의 음악이 영화, 무용, 오페라 등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사용되는 것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최전방에서 오랜 시간 볼 수 있었던 이런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조용히 반복되지만 그래서 어느 곳에서든 어울리는 음악. 그의 음악은 조용히 묵묵히 반복되기에 우리에게 담담히 스며드는 감동을 준다.


 세상이 무서운 속도로 변한다고 우리 스스로도 계속 말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 중 대부분은 그 변화를 묵과한다. 우리는 그저 비슷한 하루를 반복하며 살고 있다. 때로는 변화하는 세상에 쫒아가려는 노력도 해봤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도 하고 객기를 부리며 무리해서 가보기도 한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진화하고 있는 두 거장의 작품을 보고 들으며 나는 내면의 강인함에 대해 생각해본다.


인간이 인생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일은 오히려 이처럼 묵묵히 자신의 길을 지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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