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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음 Oct 24. 2020

NO! 투 머치

-Paganini <24 Caprices>

 나는 말이 많은 편이다. 


 가르치는 일을 하기 시작하고부터 말이 더 많아지고 빨라졌다. 어쩔 때는 상대방의 말을 끊기도 한다. 한 번 시동이 걸리면 멈출 수 없는 폭주 기관차처럼 앞만 보고 내지른다.


  어느 순간 내 주변엔 두 종류의 토커만 남게 되었다. 말을 많이 안 하는 사람이거나 내가 입을 움직일 틈조차 주지 않는 대단한 빅마우스들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최악의 대화를 경험한다. 침묵을 어색해하며 맥락을 알 수 없는 말을 마구 뱉고 있거나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지도 않고 끼어들 틈만 노리는 대화를 하는 것이다.


기운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쉴 틈 없이 떠들고 들어온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뭐 하자는 거지?'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치오 악보-쉴 틈 없이 떠드는 내 모습과 닮았다>


 파가니니는 1782년에 태어난 바이올린리스트이자 작곡가로 '악마에게 영혼을 판 연주자'라는 루머가 돌 정도의 고난도 연주가 가능한 비루투오조 연주자이다.

 1840년에 죽은 파가니니의 연주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현재를 사는 우리들로서는 들어볼 방법이 없지만 그가 작곡한 바이올린 곡을 보면 그의 연주 스타일을 추측할 수 있다. 확실한 건 당대의 작곡가들이 작곡한 곡들은 그가 연주하기엔 너무 '쉬운' 곡이었다. 그가 작곡한 바이올린 곡 악보를 보고 있자면 음표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난 이것도 할 수 있어."


"난 이런 것도 가능하지."


 어려운 테크닉으로 가득한 그의 악보는 "나는 다 할 수 있다!"라고 외치느라 쉴 틈이 없다. 파가니니가 꽤 많은 곡을 작곡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파가니니를 작곡가보다는 연주자로 인식하고 있는 데는 그의 이런 작곡 스타일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일반 범인들이 다가가기에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틈이 전혀 없는' 스타일 말이다.


 파가니니는 살아생전 엄청난 부를 얻어 대중들에게는 인기가 없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난한 음악가를 도왔으며 주변 인물들에게도 자비로웠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죽는 순간까지 이상한 루머들과 애인 살해 누명 등으로 괴로워했고 죽으면 고향에 묻히고 싶다는 바람조차 사후 50년 후에나 이뤄졌다.




'쉴 틈 없이 자기 자신을 표현하면 사람들이 나를 이해해줄까?'


 요즘 세상은 무수히 많은 매체를 통해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시대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미친 듯이 혼자 떠들어 봤자 돌아오는 건 허무함과 지친 마음뿐이다. 파가니니는 어쩌면 지독히도 외로운 천재였는지도 모르겠다. 천재도 아닌 나는 적절히 떠드는 법을 배워야겠다.


No! 투 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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