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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음 Oct 22. 2020

재수 좋은 날

-Anderson <The Syncopated Clock>

안 좋은 일이 동시다발로 몰려올 때가 있다.



아침 저녁으로  매일 왔다 갔다 하는 길인데 주차를 엉뚱한 곳에 했다. 300미터는 걸어 커피 한잔을 샀다. 


‘요즘 운동도 안 했는데 조금 걷지 뭐’


스스로를 다독이며 씩씩하게 50미터를 걷고 커피를 쏟았다.  악기가방 위에!!


그냥 느낌이었지만 이때부터 나는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나의 느낌 또는 육감은 가끔 초능력을 발휘한다. 느낌이 딱딱 맞아들어가면 정말 소름 끼친다.


‘왠지 불안해’ 하고 생각만 했을 뿐인데 나의 평정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커피냄세 풀풀 풍기며 오랜만에 본가에 갔더니 나의 알렉스(고양이)가 뻗어있다. 가족들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이야기 했지만 내 눈에는 병세가 완연해 보였다. 말리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알렉스를 이불에 싸서 동물병원으로 곧장 달려갔다. 사람 병원이던 동물 병원이던 병원은 없던 병도 생길 것 같은 분위기가 있다. 시름 시름 앓는 눈빛과 서러운 울음 소리가 주로 범인이다.


2시간의 장렬한 병원 진료와 함께 췌장염이라는 진단을 얻었다. 나의 불길한 촉이 맞아 초기 치료가 가능하다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앞으로 동물병원에 데리고 다닐 생각에 심란했다. 심란한 와중에도 나의 위장은 제 기능을 하고 있어서 긴장을 푸니 곧바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차를 도로에 세우고 양념치킨을 한마리 포장해서 차에 시동을 거는데 시동이 안걸렸다.  


‘도대체 오늘 왜이러나….’


긴급출동 기사님을 기다리는 잠깐의 시간동안 아침부터 어르고 달래왔던 내 마음이 조금씩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짜증이나고 화가 나고 그와중에 배가 고팠다.


기사님을 보자마자  나는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배가 고파서 치킨 하나 사가지고 들어가려는데 잠깐사이에 방전이네요.”



그 순간, 기사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얼마나 다행이에요, 베터리만 교체하면 되서요.”


아침부터 다잡으려고 노력해도 심란해지기만 했던 내 마음이 갑자기 평온해졌다.


우리는 좋은 일에는 “왜?”라는 질문을 잘 안한다.  나쁜 일이 일어날 때만 항상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냐고  반문한다. 좋은 일이 연거푸 일어나는 것은 재주 좋네~하며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나쁜 일이 연속으로 일어나면 그 원인을 찾고 원망할 대상을 찾으며 분노한다.


좋은 일이 연이어 일어나는 데 특별한 이유가 없듯이 나쁜 일이 연이어 일어나는 데에도 특별한 이유가 없다.


언제나 어떤 일은 왜 일어나는 가가 중요한게 아니라 일어난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우리의 마음을 건강하게 지키는 데 중요한 문제가 된다. 


한발짝 물러나 생각해보니 오늘 하루가 시트콤 같다. 커피를 쏟고 동물병원에 가서 울고 길바닥에서 짜증내고…아주 가관이다. 다 식어빠진 양념치킨을 물고 리로이 엔더슨의 고장난 시계를 듣기 시작했다. 시트콤 같은 오늘에 가장 잘어울리는 음악같다.  음악을 트는 순간 번개가 번쩍하더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픽하고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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