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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음 Dec 28. 2020

나잇값은 어떻게 정하나요?

-개인주의적 시선.


 늦은 밤 전화가 왔다.      



 시작부터 한숨인 걸 보니 뭔가 힘든 일이 있나 보다 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올 한 해 쌓인 것이 폭발하기 직전이라 간절한 마음으로 SOS를 청하는 것이었다. 전화를 한 동생은 외국에서 유학생활을 10년 넘게 하고 뒤늦게 사회생활을 한 친구로 한국에 들어온 지는 2년도 채 안되었다.    

 


 이 아이가 처음 한국에 들어와서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했을 때가 생각난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매주 사람 만나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외국 골방 생활 10년. 참 힘들었을 것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그렇게 모든 것이 재밌다며 환하게 웃던 아이가 2년도 안돼서 SOS를 친 이유는 ‘나잇값’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30대 중반인데 경제적 기반은커녕 빈털터리에다가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불편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오랜 유학생활로 부모님께 큰 부담을 안겨드린 것도 모자라 한국에 와서 빨리 적응 못 하는 자신이 한심스럽고 나잇값을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한 해가 끝나가니 자신의 나이에 대해 부담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도대체 ‘나잇값’은 어떤 기준으로 측정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나잇값 못 한다.’는 말은 일상적으로 자주 쓰는 말이긴 하다. 철없는 어른에게 주로 쓰는데 어른인데 아이 같은 짓을 하거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 ‘나잇값 못 한다.’고들 한다.      


 나는 사실 나잇값은 개인주의적인 해석이 필요하다고 본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어린아이 같은 짓을 하는 것이 나잇값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대 때 일본 아이돌 콘서트에 간 적이 있다. 당시 방송국 FD였던 친구가 부정적(?)인 방법으로 나를 스태프 명단에 올렸고 그 덕에 콘서트장을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노래가 일본어인 데다가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는지 스태프 연기를 하느라 콘서트를 제대로 즐길 수 없었을 때였다. 적어도 70대는 되어 보이는 백발의 할머니가 열정적으로 소리를 치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때 그 할머니가 진심으로 멋져 보였다.    

  

 한국에서는 아이돌 콘서트에 70대 백발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하고 있는 모습은 정말 생경한 풍경이기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나는 그 할머니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외국의 음악 페스티벌에 가면 3대가 같이 페스티벌을 즐기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70년대 음악을 손자가 즐기고 90년대 음악을 할아버지가 따라 부르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어른이 인형을 가지고 놀거나 아이돌을 쫓아다녀도 그것이 나잇값을 못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가 좋아하는 인형을 사겠다고 10살도 안된 아이를 밀치거나 아이돌 굿즈를 혼자 독차지하겠다고 몇천만 원씩 사재기를 하는 것이 나잇값을 못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밖에 모르고 이기적인 것이 나잇값 못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전혀 주지 않는데 개인적인 취향이 보편적이지 못하다고 해서 나잇값을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 이유는 없다는 말이다.  


 나이도 그렇다. 20대에는 어떻고 30대에는 어떻고 40대에는 어떻고 하는 보편적인 기준이 과연 이 시대에 존재해야 하는가 싶다.      



 이제 사회생활 2년 차. 나이는 많지만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사회생활이다. 아직은 모든 것이 서툴고 어색한 것이 당연하다.     


 연주를 도와준 선생님의 선물을 하나 사더라도 “저보다 나이가 10살 정도 많으신데 이런 선물 괜찮을까요?”하고 묻는 아이다. 화가 너무 나서 잘못된 일이라고 대들고도 “제가 너무 버릇없이 이야기한 거일까요?” 하고 묻는 친구이다.      


 나는 그 친구에게 지금 충분히 너무 잘하고 있고, 네가 나잇값을 못한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이야기해주며 전화를 끊었다.      


 며칠만 있으면 누구나 한 살을 더 먹어야 한다. 나는 나이를 잘 먹고 싶다. 더불어 나이와 상관없이 내가 즐겁고 행복한 일에 항상 열정적이길 바라고 그 열정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주는 일이 아니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 나이... 잘 먹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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