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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굴꾼 Sep 17. 2024

09. 빈 슈베르트 박물관(들)에 가다

빈 슈베르트 생가와 그의 마지막 집을 함께 가다

'가곡의 왕'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 (출처: 위키백과)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 1797년 태어나 1828년 31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요절하기까지 1000곡 가까이 되는 곡을 써냈고, 그 가운데 600곡이 가곡이다. 16살 때 가곡을 쓰기 시작했다 가정하고 산술적으로 계산해 보면 1년에 40곡, 1개월에 3곡 이상의 곡을 써낸 셈이다. 사실상 독일 예술가곡 (리트)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다. '마왕' '들장미' '송어' '음악에' 등의 가곡과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겨울나그네' 등의 연가곡이 유명하며,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피아노 트리오 2번,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미완성으로 남겨졌으나 2악장만으로도 이미 작품성을 인정받은 '미완성 교향곡', 교향곡 9번 '그레이트', 현악사중주 '죽음과 소녀', 즉흥곡 등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31살, 전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참 젊은 나이다. 아마 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 가운데서는 슈베르트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슈베르트가 죽은 나이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죽었음에도 명곡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이 놀라웠던 작곡가였다. 보통 신동이나 천재라 하면 35살에 죽은 모차르트를 대표명사로 사용하지만, 고전시대보다는 낭만시대 음악을 선호하는 내게는 모차르트의 천재성보다는 슈베르트의 천재성이 직관적으로 와닿는다. 빈의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술집에 앉아 영수증 뒷면에 작곡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음악을 '쏟아내듯' 쓴 작곡가 슈베르트, 그 매력적인 선율에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다. 한 번 들으면 머릿속에서 쉽게 잊히지 않는 가락들을 어쩜 그렇게 잘 뽑아낼 수 있는지, 숨만 쉬면 그저 곡이 나왔던 것인지가 늘 궁금했다. 아직 클래식에 깊이 빠지기 전에도 미완성 교향곡과 죽음과 소녀 현악사중주를 얼마나 많이 돌려 들었던가... 그 시절을 향한 약간의 노스탤지어는 아마 슈베르트를 바라보는 나의 감상을 완성시켜 주는 감정일 것이다.


빈과 관련이 있는 작곡가를 대라면 끝이 없다. 빈고전파 3인방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을 시작으로 해서 후일 나올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브루크너, 후고 볼프, 나중에는 제2기 빈 악파인 쇤베르크와 베베른, 베르크까지... 그러나 빈에서 태어나 빈에서 죽은 작곡가만 대라고 하면 그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그런데 유명 작곡가 중에서도 빈에서 태어나 빈에서 죽은, 해외여행이라고는 살면서 한 번도 한 적 없는 것 같은 빈 토박이 작곡가가 한 명 있으니 바로 '가곡의 왕' 슈베르트다.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슈베르트가 죽은 집까지의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슈베르트가 태어난 집은 빈이긴 하되 빈 중심부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는 곳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도시가 그렇지 않겠냐만, 빈 또한 중심부와 외곽의 분위기가 많이 차이 나는 곳이었다. 중심부는 정말 으리번쩍하고 화려한 역사주의 건물의 섬세한 장식과 세공에 감탄하게 되지만 외곽으로 나가면 그런 건물들은 적고 대부분이 수수한 민무늬 외벽인 건물만이 늘어서 있다. 중심부에는 늘 사람이 북적였건만 트램에서 내려 슈베르트의 집까지 걸어가는 약 10분 동안 마주친 사람은 한 손가락으로 다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아파트가 있는 곳에서 빌라가 온 곳으로 온 느낌이랄까. 인적은 드물고 주변을 구성하는 상점들은 중심부처럼 기념품점이나 명품 옷가게, 서점 등이 아닌 슈퍼마켓, 음식점, 이발소처럼 일상생활과 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곳들이었다. 빈 중심부는 굉장히 시원한 색감이었던 것 같은데, 슈베르트의 집으로 가는 길은 내가 빈 하면 떠올리는 푸른 끼 도는 하얀색보다는 하얀 끼 도는 노란색이나 주황색이었던 것 같다. 하일리겐슈타트 싱그럽고 푸르른 아침과 달리 두 곳의 슈베르트 박물관에 갔던 기억은 후텁지근하고 텁텁하게 남아 있다.


슈베르트 박물관은 찾아가기 전부터 걱정이 좀 많았던 곳이었다. 구글 리뷰에서 좀 괜찮은 곳이면 대체로 4점을 넘긴다. 이전에 갔던 박물관들의 리뷰는 대체로 4.5점 이상이다.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했다. 내가 이전까지 간 박물관들 가운데 해당 도시에서 주요 관광지였던 곳은 바흐박물관과 모차르트 박물관, 하일리겐슈타트 베토벤 박물관 정도가 전부였고 다른 박물관들은 해당 작곡가에게 관심이 있지 않다면 굳이 찾아갈 이유가 없는 곳들이었다. 아니, 사실 하일리겐슈타트의 경우에도 베토벤에게 관심이 없다면 그 시간까지 써 가며 찾아갈 곳은 아닌 것 같으니 도시의 필수 관광 코스인 곳은 바흐와 모차르트 박물관 두 곳뿐이었다 해도 틀리지 않다. 내 기억이 맞다면 당시 슈베르트 박물관의 평점은 4.0점 정도였다. 다른 박물관들에 비해서는 좀 낮은 평가였다. 나는 어딘가를 갈 때 긍정적 리뷰를 익기 전에 부정적인 리뷰를 읽어보는 편인데, 슈베르트 박물관에 대한 악평은 대체로 '너무 작다', '볼 게 슈베르트 안경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다'였다. 또 독일에 오기 전 읽었던 책에서는 슈베르트 박물관은 초인종을 누르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었고, 박물관이라기보다는 건물 한편에 마련된 작은 기념관... 도 아니고 기념하는 방 정도였다라 적혀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도망쳤어야 하는데. 후회가 밀려온다. 나는 그 '작다'라는 말을 '슈베르트의 명성에 비해서는 너무 작은 박물관이었다'라고 해석해 버렸다. 클래식의 'ㅋ'만 들어도 재미없다면서 도망치고 꾸벅꾸벅 졸던 중학교 시절 받은 기초교육으로도 알고 있던 작곡가 가운데 하나가 슈베르트였다. 고등학교 때는 슈베르트 곡으로 가창 수행평가도 봤었다. 모르긴 몰라도 가장 유명한 클래식 작곡가 10명 안에는 들 수 있을 만한 작곡가였으니 나는 그에 상응하는 박물관을 기대했다. 대충 하이든 박물관 정도는 되기를 기대했다.


하일리겐슈타트에서 트램을 타고 10구에서 내려 걸어가면, 도로변에 바로 슈베르트 박물관이 있다. 열린 문 틈새로 쓱 들어가면 아무도 없는 ㅁ자 안뜰이 나온다. 자잘 자잘한 자갈을 밟으며 들어가면 내벽에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입구 맞은편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화분들, 그리고 그 너머로 웃자라 있는 관목을 보면 관리가 안 되어 있는 걸까 싶다가도 깨끗한 흰 벽을 보면 관리가 되고 있긴 하구나 싶다. 박물관 입구는 2층, 우측 계단으로 올라가면 바로 나온다. 다른 Wien museum 산하 기관처럼 들어가기 전 영어로 이곳이 어떤 곳인지가 적혀 있다. 이 집의 정식 명칭은 'Schubert Geburtshaus'로, 슈베르트가 태어난 집이라는 뜻이다. 슈베르트는 그리 부잣집은 아니었고, 5남매 가운데 넷째, 거의 막내로 태어났다. 집은 그냥 보면 넓어 보이지만 입구에는 "슈베르트 가족은 이 집 전체가 아니라 일부에 세 들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박물관까지 집 전체가 아니라 일부만 쓸 필요가 있었을까.


슈베르트 생가 안뜰.

처음엔 좋았다. 여느 Wien Museum 관할 박물관처럼 번역도 잘 되어 있고 사람은 없고 큐레이팅은 깔끔한 줄 알았다. 첫 방에 들어가자마자 앉아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책상 맞은편에 바로 슈베르트의 그 유명한 초상화가 걸려 있었고 한구석에는 슈베르트의 안경이 놓여 있는 유리 케이스가 놓여 있었다. 유리 케이스 안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슈베르트의 안경은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 번씩 서글픈 마음으로 바라보다가 지나가게 되는 전시품이다. 슈베르트는 심한 근시였고 때문에 늘 안경을 껴야 했다. 잘 때도 벗지 않을 정도로 슈베르트에게 안경은 중요했다. 분신이나 다름없던 그의 안경알 가운데에는 금이 가 있고, 아무도 없는 박물관 한가운데 너무도 큰 유리케이스 안에 담겨 있는 안경은 오묘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벽에는 슈베르트의 가족들과 주변인들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왼쪽 벽에는 살리에리의 초상화도 있었다. 살리에리는 슈베르트의 스승이었고, 슈베르트에게 레몬 아이스크림을 사준 적도 있다고 한다. 슈베르트는 살리에리의 빈 도착 5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살리에리를 위한 곡을 써줬다는데, 그 가사가 '선생님은 정말 최고고 정말 멋있어요' 이런 귀여운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박물관에서는 그런 내용을 하나도 설명해놓지 않았다. 그냥 살리에리 초상화만 가져다가 놓고, 밑에 이름만 적혀 있었다. 슈베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런 초상화가 왜 여기 있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살리에리 설명만 누락된 것도 아니었다. 설명이 없었다. 설명이 있는 건 전부 독일어로 적혀 있었다. 슈베르트의 안경, 이런 설명도 적혀 있지 않았고 서랍장을 열어서 설명을 읽어 보아도 "19세기에 그려진 슈베르트와 그 친구들의 그림 (레플리카)" 이런 간단한 기술이 전부였다. 오디오가이드도 없었다. 설명 팸플릿도 없었다. 가이드도 없었다. 나의 이해를 도와줄 만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전시실을 하나 넘어갈 때마다 있는 짧은 설명만이 영어로 번역되어 있었다. 휑한 유리 케이스 안 안경 하나만이 그나마 위안이 될 뿐이었다.

이것마저 없었더라면 이 박물관은... 말을 말자. 슈베르트의 안경이다. 깨진 알이 마음 아프다.
슈베르트의 기타다. 오른쪽에 있는 작은 나무판 안에 적힌 글귀가 이 기타에 대한 설명의 전부다. 전시품이 빈약하면 설명이라도 풍성해야 하는데...

박물관에 오는 건 단순히 전시된 유물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물론 유물을 보고자 하는 마음도 없다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박물관을 방문하는 건 공간을 경험하는 일인 동시에 그 큐레이션을 체험하는 일이다. 이 사람들은 이 인물의 삶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구나, 이런 이야기로 엮어내려고 하는구나, 하는 것을 알고 싶어서 오는 것인데 그런 앞뒤맥락이 모두 잘린 채로 전시되어 있는 유물들은 그 본래의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파리 Cite de la musique에 있는 멘델스존과 베를리오즈의 지휘봉을 예시로 들어보자. 지휘봉이 그냥 전시되어 있으면 이 사람이 사용한 물건이라는 맥락 말고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멘델스존의, 하얀 가죽으로 감싼 상아 지휘봉이 1843년 베를리오즈가 라이프치히에 방문했을 당시 멘델스존의 '첫 번째 발푸르기스의 밤' 리허설을 보고 존경의 표시로 멘델스존에게 지휘봉을 교환하자고 요청해서 베를리오즈의 수중에 들어갔다가 이 박물관으로 오게 된 물건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지휘봉이 가지는 역사적 가치는 배로 뛴다. 새로운 맥락이 생기는 순간 그 지휘봉은 단순히 '멘델스존의 소유물'이 아닌 '낭만주의자들의 전쟁 시대에도 정반대였던 음악적 이상에 구애받지 않고 나눈 상호존경의 표시'라는 새로운 층위의 의미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슈베르트 박물관에서는 그런 설명이 조금도 제공되지 않았고, 따라서 새로운 전시품과 새로운 관련 자료는 볼 수 있어도 그 자료와 전시품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주먹도끼를 봤을 때 주먹도끼의 의미를 알아보지 못하면 그냥 돌이나 다름없는 것처럼, 아무 설명도 맥락도 없이 전시되어 있는 그림과 종이쪼가리들은 슈베르트라는 사람과 그의 삶을 재구성해내기에는 너무 빈약해 아무 도움도 줄 수 없었다.


슈베르트가 빈곤하다고 해서 박물관까지 이렇게 빈곤할 필요가 있었나. 충격적이었다. 내가 지금 21세기가 아니라 19세기에 살고 있나, 그래서 혹시 슈베르트가 아직 명성을 덜 얻었고 이제 막 슈만과 멘델스존이 새로 슈베르트의 교향곡을 발굴해 초연하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휑덩그레한 박물관에 나와 관리인을 제외하면 찾아온 손님은 단 한 명 (마찬가지로 동양인 여성분이셨다). 그분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두 번째 방에는 슈베르트의 형이 갖고 있던 피아노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레플리카였고, 세 번째 방에서는 슈베르트의 기타를 제외하면 볼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안경과 기타가 아니었더라면 내가 그 자리에서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르겠다. 속으로 무료입장인 날에 와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몇 번이고 중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무료입장이 아닌 날에 갔더라면 내가 고작 이걸 보자고 6천 원이나 낸 줄 아냐면서 난동을 피우다가 관리인에게 끌려나갔을 것 같았다.


나를 화나게 한 것은 부실한 소장품과 독일어로만 제공되는 설명, 아니 독일어로조차 쓰이지 않은 설명뿐이 아니었다. 세 번째 방을 지나자 방이 두 개 더 있었다. 방 다섯 개, 그래 그 정도면 스메타나 박물관 정도는 되겠다-라 생각하며 다음 방으로 넘어갔는데 내가 기대하는 작곡가 이야기는 온데간데없이 무슨 풍경화들만 벽에 잔뜩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전 방으로 돌아가 보면 또 레플리카 악보와 레플리카 그림을 진열해 둔 슈베르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다음 방으로 넘어가면 갑자기 미술 이야기다. 멘델스존이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쇤베르크처럼 예술에 조예가 깊은 작곡가면 또 모르는데 슈베르트 집에서 갑자기 미술 이야기가 왜 나온단 말인가. 무척 혼란스러웠다. 그런 정보가 있었다면 한때 슈베르트를 무척 좋아했고 전기도 찾아읽어 본 내가 몰랐을 리가 없었다. 혹시나 슈베르트와 관련이 있는 곳인가 싶어 몇 글자 적혀 있지 않은 설명도 꼼꼼히 읽어봤으나 슈베르트 이야기는 없었다. 대신 처음 들어보는 사람 이름이 거듭 나오고 있었다. 슈베르트를 알리고 슈베르트의 집을 보존하는 데 큰 기여를 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냥 여기 살았던 화가였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름은 Adalbert Stifter로, 오스트리아의 화가 겸 소설가인 모양이다. 대표작으로는 'Der Nachsommer'와 'Witiko' 등이 있다고 하는데 이때의 나는 그런 사실은 몰랐다. 그 사람이 썼던 팔레트나 소규모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다른 상황이었더라면 '오, 이런 작은 전시관도 있구나. 역사 속에서 기억되지 않는 사람인데도 이렇게 기념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니 좋네.'라고 생각하며 지나쳤겠지만 아니 전국 팔도를 돌아봐도 이런 박물관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화가 가라앉지를 않았다. 난 슈베르트 박물관을 보러 왔던 건데, 박물관의 다섯 칸 가운데 두 칸이 슈베르트와 관련 없는 사람 이야기라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슈베르트와 관련이 없는 사람을 왜 전시하고 있냔 말이다. 하이든박물관은 브람스 관련 전시도 있다는 것을 적극적인 셀링포인트로 활용하고 있었을뿐더러 12개 방 가운데 한 개 정도만이 브람스 관련이었다. 후일 갈 헨델-헨드릭스 박물관은 이름부터가 헨델-헨드릭스 박물관이다. 그러면 슈베르트 박물관도 슈베르트-Stifter 박물관으로 적어놓지 왜 슈베르트 박물관이라고만 적어놓는 것인가? 입장료를 받을 때는 4유로를 슈베르트 박물관이라는 이야기만 해서 받으면서! 소비자 우롱 아닌가? 기만 아니냔 말이다.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말했다. 무료입장일이라서 다행이었다고.

문제의 슈베르트가 아닌 다른 사람을 전시하고 있던 곳이다. 슈베르트 전시보다 이쪽이 더 풍성해 보인다. (출처: Wien Museum)

슈베르트 박물관의 좋은 점은 앉아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것 그 하나뿐이다. 막장드라마나 극적인 사건을 표현할 때마다 늘 단골로 불려 나오는 슈베르트의 피아노 삼중주를 듣고 있으면 아주 고급스럽게 화난 기분이 든다. 나는 헤드셋을 끼고 맞은편에 걸려 있는 애꿎은 슈베르트의 초상화만 한참을 노려 보았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왜 슈베르트는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유명해졌는데 그의 집은 여전히 이렇게 빈곤하단 말인가? 공간이 없는 건 원래 슈베르트가 살았던 부지 이상을 구입할 정도의 예산은 없어서라고 치자. 유품이 없는 건 슈베르트가 너무 가진 게 없어서 아무것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치자. 하지만 최소한 영어 번역은 부착해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각각의 전시품에 대한 설명도 제시해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 정도도 해주지 않는 박물관을 박물관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저 창고에 불과하다는 평보다 더 좋은 평은 내려 줄 수가 없었다.


이쯤에서 이 시리즈 처음으로 두 개의 박물관을 묶어서 설명하려 한다. 슈베르트의 생가와 슈베르트가 죽은 집 두 곳은 전시 방식이나 전시품 퀄리티, 분위기가 모두 동일하기 때문에 글을 따로 작성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슈베르트의 생가를 방문한 뒤, 나는 두 개의 박물관을 더 방문하고 나서 오후 4시, 관람 시간이 1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급한 마음으로 두 번째 슈베르트 박물관으로 향했다. 역시 빈 외곽에 있는 두 번째 슈베르트 박물관은 뉘엿뉘엿 기울어가는 햇살 아래 좁고 낡은 간판으로 꽉 차 있는 거리 틈새에 있었다. 역시 초인종을 눌러야 들어갈 수 있었다. 이번에는 한국 기준 3층에 박물관이 있었다. 사람들이 가장 생활하기 좋은 2층이 아닌, 3층으로 올라가면 집값이 싸진다. 당연히 엘리베이터가 없어 불편하기 때문이다. 아마 슈베르트가 살았던 마지막 집이 3층에 있는 것도 그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이 시점에는 이미 슈베르트 박물관에 대한 모든 기대를 내려놓은 채였다. 그나마 두 박물관 중에서는 슈베르트의 안경과 기타가 있는 생가 쪽이 더 유명하다. 당연히 이 두 번째 박물관은 그 생가보다도 못하다는 뜻일 테니 Wien Museum 산하 6개 작곡가 박물관 가운데 마지막 박물관을 방문한다는 것 그 자체에 의의를 두며 올라갔다.

슈베르트 Sterbewohnung의 전경. 당연히 저 가운데 세 칸만이 박물관이다. (출처: Tripendy)

집 2개 층, 약 12개 정도의 방을 전시실로 쓰고 있던 하이든 박물관의 입장료와 전시실이 3개밖에 안 되는 슈베르트 박물관의 입장료가 같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슈베르트 생가뿐 아니라 슈베르트가 죽은 집의 경우에도 슈베르트가 사용했거나 남긴 실제 물품은 슈베르트의 머리카락이 담긴 편지 한 통, 슈베르트의 연필로 추정되는 것, 슈베르트의 형이 쓰던 피아노 정도가 전부였고 전시실 규모는 생가보다도 작아 방 3개가 전부였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대체 슈베르트 박물관의 구글 리뷰 평점이 어떻게 4점을 유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슈베르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가 볼 만한 박물관, 이라고 설명되어 있지만 글쎄다, 두 곳 다 빈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영어 책자나 영어 오디오가이드도 제공되지 않는데 영어 설명도 없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독일어 설명조차 없는 빈곤한 박물관이다. 그나마 슈베르트 생가보다는 슈베르트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긴 하지만, 슈베르트의 생가에서 인생 전반을 다뤘기에 해당 정보는 죽음에 관한 내용에 한정되어 있고, 무엇보다 슈베르트 생가보다도 작은 전시실 세 개에서 슈베르트의 인생 전반을 다루기는 역부족이었다.

슈베르트 Sterbewohnung 내부. 이런 방이 3개다. 그게 전부다.

대체 슈베르트 박물관의 전시는 이리도 가난한 것일까? 슈베르트가 31년밖에 살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이라기에는 35살에 죽은 모차르트나, 38살에 죽은 멘델스존이나, 39살에 죽은 쇼팽 박물관은 모두 괜찮았다. 슈베르트가 유명한 것일까? 한국인들만 해도 슈베르트의 '송어'를 휴대폰 컬러링으로 쓰고 '스카이 캐슬'에서 등장한 '마왕'에 반하지 않았던가. 만일 박물관의 목적이 슈베르트가 생전에 받았던 홀대와 가난을 체험하게 해 주려는 것이었다면 성공했다.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쓸쓸한 집에서 버려진 의자에 앉아 슈베르트가 작곡한 곡들을 듣고 있으면 절로 우울하고 마음만이 드니까 말이다. 4시 20분, 슈베르트 박물관에는 나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겨울에 갔더라면 홀로 버림받은 '겨울나그네'가 된 기분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을 듯싶다. 박물관 상태만 놓고 보면 슈베르트가 죽고 나서야 진가를 인정받은 비운의 작곡가가 아니라 지금까지도 진가를 인정받지 못한 무명 작곡가처럼 느껴진다. 웃긴 점은 이렇게 전시도, 설명도, 소장품도 빈곤한 와중에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미디어 스테이션만은 꼭 있었다는 것이다. 앉아서 몇 분이었을까, 아마 15분에서 20분 가까이를 음악만 듣고 있었을 것이다. 작곡가는 음악으로 말을 한다지만, 박물관까지 이렇게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두 곳의 박물관 모두 슈베르트라는 이름값을 내걸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실속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니, 움베르트 에코의 유명한 소설 마지막 문장을 따서 이번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지난날의 슈베르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최종평가

명칭: Schubert Geburtshaus (슈베르트 생가) Schubert Sterbewohnung (슈베르트의 마지막 집)
운영시간: 10:00~17:00, 12:00~13:00은 휴식시간 (생가의 경우 화-일 운영, Sterbewohnung의 경우 금-일 운영)
입장료: 성인 5유로, 할인가 4유로
사이트 링크: WIEN MUSEUM - Schubert Geburtshaus, WIEN MUSEUM - Schubert Sterbewohnung

1. 도시 접근성: ★★

그래도 빈이다.


2. 도시 내 접근성: ★★☆/

두 개의 박물관 모두 썩 접근성이 좋지 않았다. 첫 박물관은 10구, 외곽에 있고 두 번째 박물관도 중심가에서 남쪽으로 한참 가야 하기 때문에 2.5점, 3점을 각각 주겠다.


3. 소장품: ★

아예 없는 것보다야 나으니 머리에 힘을 주고 2점을 주겠다. 정말 아무것도 없지만, 슈베르트의 기타와 슈베르트의 안경이라는 중요한 물품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2점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머리카락도 있고.... 펜도 있고... 그게 전부긴 하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없진 않으니까 2점을 주겠다.


4. 언어 지원: ★

'그럼에도 슈베르트 박물관에 가겠어요!'라 말하는 여러분들의 결심을 꺾어놓기에 가장 좋은 장벽. 영어라고는 한 페이지밖에 찾아볼 수 없고, 영어 책자나 오디오가이드도 없다. 한국어가 없다는 것은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독일어로만 되어 있으니 독일어 B2 정도를 따신 분이라면 도전해 보셔도 나쁘지 않겠지만 난 독일어 원어민이 아니라서 1점을 주겠다. 사실 설명이 아예 없으니 이제 글자도 아니고 이미지에 의존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0.5점을 줄까 하는 고민까지 순간 했다.


5. 가성비: ★

하이든 박물관이 5유로인데 여기도 두 곳 다 5유로랜다. 규모가 4분의 1인데 가격을 똑같이 내야 하는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정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슈베르트 박물관에 꼭 가야겠다 결심하신 분들께는 매달 첫째 주 일요일의 무료입장을 놓치지 마시기를 권한다.


6. 규모: ★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런 박물관은 없었다. 슈베르트 생가와 슈베르트가 죽은 집 둘 다 정말 심혈을 기울여 꼼꼼히 봤는데도 각각 20분, 10분 만에 관람이 끝났다. 이동시간이 더 걸린 판국이었다. 거기다가 방 세 칸이라는, 아무리 커봐야 30평 정도 될 것 같은 공간 두 개가 전부였으니 실제 규모도, 볼륨도 최악이었다.


7. 상호작용: ★

음악을 들을 수 있으므로 2점을 줬다. 다른 상호작용은 전혀 없다. 오디오가이드까지 상호작용으로 포함해 줘도, 오디오가이드가 없으니 자동으로 2점이다. 대체 이런 박물관은 왜 만들고 왜 관리를 하고 왜 유지를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아무것도 없었다.


8. 굿즈: ★

무엇인가 팔았더라면 내 기억에 전혀 남지 않았다. 있었다 해도 엽서 정도가 전부였을 것이고, 만일 굿즈가 많았더라면 박물관이 세 칸인데 굿즈샵이 한 칸인 사태가 발생했을 테니 마찬가지로 용납할 수 없어 1점을 매긴다.


9. 큐레이팅:

큐레이팅을 평가하려면 내용을 알아들어야 하는데 내용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미 그 시점에서 큐레이팅 실격이라 생각한다. 또 설명이 하나도 제공되어 있지 않아 전시품 간의 연관성이나 맥락을 전혀 알 수 없었으니 점수를 전혀 줄 수 없다.


10. 총평:

내가 기행문을 쓴 것은 이 박물관들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최대 장점: 없음

최대 단점: 전부

추천 여부: X


"그래도 난 내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다" 하는 분들을 위해 슈베르트 박물관 영상을 가지고 왔다. 아래 주소에 들어가서 슈베르트 박물관이 아무것도 없다 해도 그 정도겠어, 하는 분들께서는 이 링크를 꼭 눌러 주시기를. 부디 여러분이 시간낭비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공익적인 목적에서 작성된 글임을 밝혀둔다.

https://x.com/i/status/1776999853261828103


10화 예고: 다시 한번 요한 슈트라우스 2세. 하지만 이번에는, 무려 2023년에 개관한 체험형 박물관과 함께 돌아가다. 대표곡은... 지난 회에 다 적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내가 좋아하는 곡을 소개하고 가겠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Op 207 "Cycloiden"의 도입부 2분의 잔잔함과 일본 고전 애니메이션에 나올 것 같은 우아한 왈츠 선율을 즐겨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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