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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굴꾼 Jul 23. 2024

0. 프롤로그

작곡가 박물관을 가기 위해 교환학생을 신청하다

라이프치히, 함부르크, 프라하, 빈(비엔나), 본, 잘츠부르크, 뒤셀도르프, 이제레의 코트 생탕드레, 바이로이트, 아이제나흐, 런던, 바르샤바, 부다페스트, 츠비카우, 할레잘레, 바이마르.

내가 갔던 박물관들을 지도에 표시해 봤다. 독일이 많아 보이겠지만 사실 10곳 가까이가 전부 빈에 쏠려 있다.

이 도시 (또는 크기에 따라 마을이라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들의 이름을 모두 들어 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높은 확률로 중증 클래식 애호가일 것이다. 다른 곳들이야 그렇다 쳐도 코트 생탕드레나 츠비카우는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없다면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인구 수 900만명의 런던부터 5천명의 코트 생탕드레까지 다양한 규모의 도시/마을 16곳의 공통점은 단 하나, 유럽권 작곡가의 박물관이 있다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작곡가 박물관이 있음에도 드레스덴,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루체른, 부셰토, 루카, 나폴리, 시칠리아는 왜 이 목록에 포함되지 못했을까? 이건 간단하다. 내가 못 갔기 때문이다.


자, '난 작곡가 박물관이 어떤 곳인지 궁금한 거지, 네 이야기는 궁금하지 않다' 라면 이 부분은 건너뛰어도 좋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의 시선을 이해하는 데 조금은 더 도움이 될지 모르니 클래식 음악이 어떻게 내 삶에 찾아오게 되었는지를 써보겠다.


2019년 상반기만 해도 나는 클래식 음악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남들이 다 아는 클래식 곡에 더해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가 보는 피아노 학원에서 배웠던 모차르트나 베토벤 소나타, 쇼팽 에튀드를 조금 더 아는 게 전부였다. 그러던 내가 클래식 음악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20년 코로나로 인해 집 안에 갇히게 된 뒤였다. '피아니스타' 라는 클래식 음악 리듬게임을 하며 드뷔시의 베르가메스크 모음곡 중 파스피에라든가, 라흐마니노프의 악흥의 순간 4번, 생상 죽음의 무도 등에 빠져들고 나니 닥치는 대로 클래식 음악을 주워먹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다음 단계는 (일종의 진화라고 봐도 좋겠다) 마침내 작곡가들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었다. 베토벤이 커피콩을 60알, 약 8g을 정확히 맞춰 커피를 마셨다는 사실이나, 하이든이 낚시를 즐겼다는 사실, 모차르트는 당구를 기가 막히게 쳤다는 사실, 멘델스존이 가장 좋아하는 색은 초록색이었다는 사실 따위를 조사하던 나는 결국 갈 데까지 가고 말았다.


"그 사람들이 살던 흔적을 보고 싶다."


그렇게 나는 유럽에 갔다. 정확하게는 두 번 갔다. 한 번은 여행객으로, 한 번은 교환학생으로.


지금부터 바흐, 멘델스존, 브람스, 스메타나, 드보르작, 하이든, 모차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베토벤, 슈베르트, 로베르트와 클라라 슈만, 베를리오즈, 바그너, 리스트, 헨델, 쇼팽, 그리그까지 18명의 작곡가와 나, 평범한 대학생 한 명의 이야기를 서른 번에 걸쳐 풀어내 보겠다.



*2024년 11월 19일: 원래 작성한 글에는 베토벤이 에스프레소 정량을 맞춰 마셨다고 되어 있는데, 이 말에 대해 지적을 받아 수정한다. 현대 에스프레소 한 잔에 넣는 커피콩이 약 8g인 것과 똑같이 베토벤도 그 정도 양으로 드립 커피를 마셨다는 말을 하려고 했으나 문장을 오해의 소지가 있게 썼기에 수정했다. 에스프레소 자체는 1900년대에 커피머신이 보급된 뒤에야 대중적이 된 음료기 때문에 베토벤이 마셨던 커피가 에스프레소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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