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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굴꾼 Jul 23. 2024

01. 라이프치히 바흐 박물관에 가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 (출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1685년에서 1750년 사이 활동한 독일의 작곡가. 대표작은 '띠로리'로 더 유명한 토카타와 푸가와 G선상의 아리아, 무반주 첼로 협주곡 1번, 평균율 등. 별명은 '음악의 아버지'. 그리고 내가 그렇게 애정을 갖고 있지 않은 작곡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흐는 음악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위대한 작곡가라는 건 부정하지 않겠다. 그냥 내 취향이 아닐 뿐이다. 아마추어 음악 애호가가 굳이 바흐의 심오한 아름다움을 이해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나는 바흐의 음악과 친하지 않다. 아니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클래식 음악과 가장 먼저 친해진 사람이 나다. 바흐를 좋아하는 친구는 있지만 하프시코드, 쳄발로, 오르간, 그리고 무엇보다 푸가와 종교곡을 좋아하지 않는 내게 바흐는 여전히 장벽이 높은 작곡가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인 펠릭스 멘델스존이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바흐의 제자' 라 지칭할 정도로 바흐를 존경하고 있기에 바흐를 이해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2년 여름, 3주간의 유럽 여행을 준비하며 멘델스존이 너무 좋았던 나는 라이프치히를 어떻게든 독일 일정에 끼워 넣자고 친구에게 애원했고 고흐를 좋아하는 내 친구는 아를을 넣는 조건으로 도시를 하나씩 등가교환했다. 그렇게 라이프치히 제일의 관광상품, 바흐는 우리 일정에 들어오게 됐다.


2022년 6월 28일, 이비스 버짓 호텔에서 나온 나와 친구는 본격적인 라이프치히 구경을 시작했다. 앞으로도 수 차례 언급될 이 '라이프치히'라는 도시는 다소 생소한 곳일지도 모르겠다. 라이프치히는 현재 인구가 약 60만 명을 넘겼고 지금도 꾸준히 상승세를 타고 있는 도시다. 독일에서는 나름 대도시로 분류되고 동독 제2의 도시라고도 불렸던 곳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크기 행정구역에 살고 있는 내 동네가 30만 명이니 60만 명이 어떻게 대도시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은 통일국가가 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고, 이에 따라 지역마다 지방색이 강하고 비교적 전 국토가 균일하게 발전해 있었다. (동독 서독 분단 전까지는 그랬다.) 라이프치히는 앞서 말했듯 구 동독 도시이며, 니콜라이교회에서 시작된 평화행진을 기점으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까지의 물꼬를 튼 곳이기도 하다. 또한 중세시대에 생겨 아주 유서 깊은 라이프치히 대학교가 위치한 곳이며,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레스토랑 '아우어바흐 켈러'가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괴테는 일찍이 라이프치히를 '작은 파리'라 불렀다지만 나는 아직 당최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머릿속의 파리는 오스만 시장이 동네를 1800년대 중후반 싹 다 밀어버리고 재개발한 결과이며 라이프치히도 2차 대전과 동독 시절을 거치고 이제야 다시 재건되는 동네니 괴테가 본 것과는 뭐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다. 현재의 라이프치히는 독일에서 가장 '힙한 동네' 중 하나로 꼽히며, '하이프치히'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하는데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프라하에서 나와 함께 낙오되었던 동료 외국인들 가운데 한 명이 베를린과 라이프치히가 가장 힙하다 했던 것을 보면 어느 정도의 신빙성은 있지 않을까.


하지만 클래식 애호가에게 물었을 때 라이프치히에 대해 위의 답변이 나올 확률은 거의 없다고 자신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건 다 그렇다 치더라도 일단 이곳은 바흐가 몇십 년을 근무한 성 토마스 교회가 있는 곳이다. 당연히 그 옆 부속 건물에 살았던 바흐의 박물관도 있고, 다음 글과 한참 나중에 나올 글에서 언급하겠지만 멘델스존, 그리그, 슈만, 레거 등의 대작곡가들과도 연이 깊은 곳이다. 하다 못해 바흐가 라이프치히에서 살았다는 것을 몰랐다 하더라도, 이곳은 그 유명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있는 곳이다. 라이프치히 중앙역에 내리면 휘황찬란한 빨간 필기체로 'Gewandhaus orchester'라 적혀 있는 글귀를 볼 수 있는데, 주요 관광지나 어트랙션 포인트를 소개해주는 자리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정도로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세계적이다.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에 대해서는 2번 포스팅에서 더 자세히 언급하겠다. 바흐보다 더 연관이 깊은 작곡가가 있기 때문이다. 나열된 이름을 보면 라이프치히라는 동네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데, 1800년대 내내 라이프치히는 음악적으로 가장 보수적인 동네 중 하나였다. 아마 그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는 바흐를 심각하게 존경하는 모 작곡가가 큰 공헌을 한 것 같은데, 여기서는 일단 바흐에게 집중하도록 하자.


라이프치히에 대한 내 첫인상은 최악이었다. 친구와 라이프치히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11시 30분이었고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데 8시까지인가 10시까지인가밖에 운영하지 않는 역내 엘리베이터로 인해 그 23kg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역 앞에는 취객들이 모여 고함을 지르고 유리병을 깨고 있었다. 호텔까지 가는 길에는 그라피티와 공사 현장이 있어 '역시 동독이군'이라는 생각과 함께 위협을 느꼈다.

도착했을 당시의 라이프치히 중앙역이다. 연 가게가 하나도 없다.

다행히 다음 날 다시 마주한 동네는 밤과 완전히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날이 맑은 것은 물론이었고, 대도시치고는 시끄럽지 않아 친구와 나는 한가로이 도시 중심부로 향하며 브레첼까지 하나 사 먹었다. 구 시청사와 성 토마스 교회를 둘러보고 난 뒤 우리는 교회에서 걸어봐야 5분도 걸리지 않는 바흐 박물관에 도착했다. 바흐박물관은 몹시 좁고 작은 집처럼 보였다. 나중에 보게 될 암스테르담이나 브뤼셀처럼 집이 가로로 좁고 세로로 긴 형태였기에 더 작아 보였던 것 같다. 노란 외벽을 지나 표를 사고 나면 드디어 박물관이다. 

바흐 박물관이다. 앞에서 보면 굉장히 좁아 보이는데 사실 그렇게 작지 않다. (출처: 라이프치히 바흐박물관 공식 홈페이지)

바흐박물관은 바흐가 살던 집도 아니고 일하던 곳도 아니다. 바흐의 지인 중 하나라는 보세라는 사람의 집이었으며, 바흐의 집은 헐린 지 오래다. 처음 1950년 바흐 사망 200주년을 맞아 연구소가 세워진 뒤 1985년 상설전시가 처음으로 열리게 된 장소긴 하다. 이후 2000년과 2008~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증설된 박물관은 확고한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뭐? 바흐 박물관이 1900년대 후반에나 생겼다고?'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왜냐하면 아이제나흐의 바흐 생가는 라이프치히 바흐 박물관보다 100년은 일찍 생겼기 때문이다. 어쩌면 종교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던 동독에 자리했기 때문에 더 늦게 세워졌나 싶기도 하지만, 그런 심증을 확인할 수는 없다. 비록 규모, 역사, 전시 모든 방면에서 아이제나흐의 바흐 박물관 (역시 다녀왔으며, 개인적으로는 아이제나흐 쪽이 본좌라고 생각한다) 에는 못 미치지만, 바흐가 30년 가까이 살았던 도시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작곡가 박물관 중에서 접근성이 대단히 좋은 축에 속한다는 측면에서 강점이 뚜렷하다. 


당시 바흐 박물관의 입장료는 8유로였다. (학생할인) 정가는 10유로로, 무료 오디오가이드가 포함되어 있는데 한국어도 지원이 된다. 이때는 정말 몰랐지만,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지원되는 박물관은 내가 돌아다닌 서른 곳 가운데 많아 봐야 다섯 곳도 안 되니 무겁더라도 꼭 오디오가이드를 가지고 가기를 권한다. 


박물관 입구에 있는 바흐의 흉상.

오디오가이드를 픽업하면, 오른쪽으로는 보물창고와 아카이브가 있고 왼쪽으로는 바흐의 흉상이 있다. 쭉 안쪽으로 들어가면 정원이 나오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때 정원의 존재를 몰랐던 건지 정원을 가지 않았다. 안내에 따라 위층으로 올라가면 바흐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 글을 읽을 정도로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우리가 아는 바흐는 대바흐라고 불리고 다른 바흐들도 끝도 없이 존재한다. 클래식 교양 음악 시험에 관한 농담이 돌았을 때 '독일 클래식 작곡가를 10명 대시오'라고 하면 바흐만 열 번 적어도 이론적으로 맞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특히 대바흐의 아들 중에서도 빌헬름 프리데만, 요한 크리스티안, 카를 필립 엠마누엘 이렇게 셋은 WF, JC, CPE 바흐라 해서 각각 저마다 나름대로 유명하다. WF 바흐의 경우에는 나-중에 이야기가 나올 헨델 박물관과 같은 도시인 할레잘레에 따로 박물관이 있을 정도다. 쭉 뻗은 가계도에서는 각각의 구성원을 선택해 그 구성원의 음악을 들어 볼 수 있는 인터랙티브 전시가 되어 있다.


바흐 가문에 대한 이해를 어느 정도 하고 다음 방으로 넘어가면 바흐가 사용하던 오르간 콘솔이 전시되어 있다. 이 오르간 콘솔은 실제로 바흐가 썼던 악기라는 면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물론 바흐가 하도 옛날에 (300년 전) 살았던 바람에 엄청난 보수공사가 이루어져야 했던 오르간이다. 테세우스의 배도 아니고 뭐 테세우스의 오르간이다. 줄에 매달려 늘어뜨려진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둥에 귀를 가져다 대면 오르간 곡이 각각 재생된다. 바흐 생전 바흐는 작곡가만큼이나 오르가니스트로 유명했다. 아마 작곡가들 가운데서도 바흐만큼 오르간 장인이었던 작곡가는 없을 것이다.

바흐의 오르간 콘솔이다. (출처: 라이프치히 바흐 박물관 홈페이지)

오르간 방을 넘어가면, 시대악기들을 모아 놓은 방이 나온다. 오보에 다모레, 비올라 다모레, 쳄발로 등 분명 익숙하긴 한데 다른 악기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고 각각의 소리도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인 곳이다. 덧붙이자면, 꽤 많은 클래식 작곡가 박물관이 이런 시대악기 연주관이나 박물관을 겸하고 있다. 나는 옛 악기에는 별 관심이 없고 오직 작곡가만을 위해 돌아다닌 사람이기 때문에 이 방은 자세히 둘러보지 않았으나 악기에도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옛 악기들을 모아놓은 박물관에서 종종 악기 소리를 들려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걸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곳이다.


그다음 방은 바흐의 가족생활에 대해 다루는데, 너무 많은 걸 기대하지는 않길 바란다. 클래식 작곡가 박물관의 또 다른 경향성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옛날 작곡가일수록 남은 게 정말 없다는 거다. 바로크 작곡가들은 아무리 유명했어도 남은 게 없다. 당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TOP 10에는 들고 있는 헨델조차도 뭐가 남은 게 없는 판에 바흐는 남은 게 존재한다는 것부터가 기적일 지경이다. 지금 바흐를 모르면 기초상식 부족이라는 소리를 듣지만, 1829년 그러니까 멘델스존이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부활시키고 독일 전역에서 바흐 붐이 일기 시작하기까지 100년간 바흐는 아는 사람만 아는 음악가였다. 완전 무명까지는 아니었지만, 당장 바흐는 생전에도 라이프치히에 임명될 때 '텔레만이랑 누구랑 다 싫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긴 한데 아휴 뭐 바흐 같은 삼류 음악가라니...' 같은 소리를 듣는 판이었다. 그래서 편지 자료가 풍성하게 전시되어 있는 건 기대하지도 않았다. 이 방에는 정말 귀한 바흐 아티팩트가 하나 있는데, 기가 막히게도 이 유물은 2009년에나 발견되었다. 바흐가 태어나고 300년도 훌쩍 넘고 멘델스존이 태어나고 나서도 200년이 지난 시점이다. 원래 박물관에서 기부금 수집 상자로 쓰이고 있던 이 상자의 뚜껑 안쪽에는 바흐가 직접 디자인한 본인의 모노그램이 새겨져 있는데, 이 모노그램을 알아본 사람이 없었다면 나는 라이프치히 바흐 박물관의 소장품 점수를 크게 깎았을 것이다. 바흐가 사용한 가구 중 살아남은 것은 사실상 이 상자가 유일하다는 점에서 충분히 자랑할 만한 소장품이다.

바흐의 가족이 쓰던 상자. 진열장 안쪽 상자 뚜껑 안쪽을 보면 밑에 달아 놓은 바흐의 모노그램이 보인다. (출처: 라이프치히 바흐박물관)


바흐의 모노그램이다. JSB와 JSB의 거울 형태를 한 번씩 겹쳐 만든 모노그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바흐 박물관에서 로고로 절찬리에 써먹고 있기도 하다.


이제 거의 마지막이다. 그다음 방은 바흐의 궁정생활, 그러니까 바이마르 시절을 다루고 있다. 유물이나 편지가 남아 있는 것은 아니고 모두 설명 패널로 구성되어 있으니 참고 바란다. 궁정 생활과 바로 뒤에 나오는 라이프치히 생활 칸에서는 음악감상실이 있어 잠깐 쉬어갈 수 있다. 생각보다 의자는 많고 너그러운 편인 박물관이다. 궁정 생활에 대해서는 크게 설명할 것이 없으니 다음 방으로 넘어가자면, 바흐가 라이프치히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때문에 내 머릿속 라이프치히의 이미지 가운데 하나가 바흐의 도시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이 방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바흐의 라이프치히 생활을 거의 뜯어놓다시피 분석해 놓았다. 당시 남아 있던 성 토마스 교회 관련 기록들을 바탕으로 해 바흐의 일과가 어땠을지, 학생들은 어떻게 지냈는지, 하다못해 성 토마스 교회 요리책까지 긁어온 독한 인간들이다. 성 토마스 교회의 내부를 모형으로 만들어 더 자세한 내용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만들어 둔 코너가 있어 바흐의 일과를 조금 더 실감 나게 상상해 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비밀스러운 성격이었는지 자료를 당최 남겨 두지를 않은 바흐의 일과를 상상하기가 쉽지는 않다.) 이 방에서 창 바깥을 내다보면 바흐의 근무지, 성 토마스 교회가 바로 보인다. 그 앞에 서 있는 바흐 기념상도 보이고 말이다. 2022년 6월 28일 라이프치히의 날씨와 그 전후 유럽의 날씨는 대체로 맑았고 그래서 그랬는지 거리의 악사들이 유달리 많았다. 성 토마스 교회 모형을 보고 있던 나는 창밖에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소리를 확인하려 고개를 숙였고 바흐 기념상 앞에서 'G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하고 있는 거리의 악사를 보았다. 바흐박물관과 성 토마스 교회 사이에서 G선상의 아리아라, 상징적이군-그렇게 생각하며 감상에 젖어 음악을 듣다가 다음 방으로 걸음을 옮겼던 기억이 난다. 특히나 도시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방인지라 더 감명이 깊었던 것도 같다. 성 토마스 교회도, 라이프치히 대학교도 지금까지 남아 있지만 그보다도 그 대학도시의 정신과 도시의 음악이 전해져 내려온다 생각하자 말로 설명하기 힘든, 그 도시 사람도 아닌데 밀려오는 괜한 자부심에 오래 서 있었던 게 분명하다.


다시 1층으로 내려오면 연구실과 보물창고 (treasury)가 있다. 바흐박물관은 bach-archiv라는 곳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바흐 연구가 현재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자면, 바흐의 악보 필체를 보며 이건 바흐가 쓴 걸까 바흐의 아들이나 아내가 쓴 걸까처럼 필적 감정하는 내용도 보이고 바흐가 음악을 작곡할 때 어떤 식으로 작곡했는지 그 과정을 살펴볼 수 있게 해 준다. 박물관 전체를 통틀어 가장 상호작용 요소가 강한 부분이며, 위층에서 눈깔 빠지게 줄글만 읽다 온 방문객들에게는 신선한 기분전환이 되어 준다. 사진을 찍지 못해 정확한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나 전시 내용을 읽으며 '독한 놈들... 전시할 게 없으니까 전시할 내용을 만들어내는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어두운 초록색 벽의 보물창고는 바흐의 자필보들을 전시하는 데 주로 쓰이고 있는데, 박물관에서는 바흐의 '라이프치히 칸타타'를 최고의 전시품으로 꼽는 듯하다. 위층을 둘러보는 데 너무 힘을 빼기보다는, 바흐의 삶에 대해 미리 공부를 하고 빨리 보물창고로 와서 찾아보기 힘든 바흐의 자필보들을 구경하는 데 시간 투자하기를 권장한다. 그뿐이 아니라, 바흐와 바흐의 아내 안나 막달레나의 무덤에서 나온 부장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바흐의 '무덤에서 나온' 게 아니라 '무덤에서 나온 걸로 추정되'는 이유는 바흐 무덤 위치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문에서 직선으로 여섯 걸음' 위치에 묻혔다는데, 현재로서는 일단 바흐와 그 아내의 무덤이 맞다는 추측이 우세하다.


이렇게 모든 방을 관람하고 나오면 굿즈샵이 나온다. 라이프치히는 자기들도 바흐로 먹고산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 그런지 바흐 대접이 상당히, 아니 아주 많이 좋다. 바흐 플레이모빌도 있고, 바흐 관련 도서도 많고, 음반이야 당연히 팔고, 간 지가 꽤 됐기 때문에 기억은 나지 않지만 6~8평 정도 크기의 굿즈샵이었다. 이게 뭐가 크냐고 짜증을 낸다면 할 말은 없지만, 굿즈샵이 정말 데스크에 음반 몇 개 진열해 놓은 수준의 박물관도 있어서 돌이켜 보면 선녀 같다.

바흐박물관에서 구입한 굿즈. 왼쪽은 당연히 자석일 거라 생각하고 샀는데 자석이 아니어서 실망한 바흐 모노그램이다. 오른쪽 초콜릿의 맛은 평범했다. 


바흐 박물관은 겉으로 보이는 작은 크기에 비해 볼륨이 큰 박물관이다. 바흐에 특별한 애정이나 관심을 가지지 않고 구경해도 1.5시간 정도는 잡아야 넉넉하다. 또 바흐 박물관은 주기적으로 특별 전시를 하는데 (이 전시의 경우 100% 한국어나 영어가 지원된다는 보장은 없다. 내가 갔을 당시에는 50% 정도만이 영어로 번역되어 있었고 따로 오디오 가이드는 없었다. 2022년 당시 추가전시는 하인리히 쉬츠*라는 작곡가에 대해 다루고 있었는데, 이처럼 음악에 좀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한 전시를 위주로 하고 있는 듯하다. 월요일에는 운영하지 않음에 유의해야 하며, 바로 옆에 레스토랑과 카페가 즐비한 중심가에 위치해 있으므로 (이 가운데 대부분은 바흐 이름을 상호로 걸거나 콘셉트로 잡아 운영하고 있다) 주변 부대시설도 나름 우수하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바흐 박물관은 내부 촬영을 금하고 있다. 바흐의 자필보 등이 워낙 연약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2022년 6월에는 내부 촬영이 금지라서 자료가 많이 없다. 내가 규정을 잘못 읽은 것이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간 박물관 가운데 내부 촬영 제한이 걸려 있는 유일한 박물관이었다.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한가한 박물관이라 느긋하게 둘러볼 수 있다. 바흐가 한가하면 다른 작곡가 박물관에는 사람이 얼마나 없는 거냐고? 그건...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의 교회음악 작곡가로, 바흐보다 100년 정도 앞서 활동했다. 르네상스 말기와 바로크 초기 사이의 가교가 되는 작곡가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사람의 흔적은 드레스덴에서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https://artsandculture.google.com/story/-QUxaRWMS0bbJA 이곳에서 버추얼 투어가 가능하니 관심 있다면 여기를 들어가서 더 살펴봐도 좋을 것 같다.


최종평가

명칭: Bach Museum Lepizig (라이프치히 바흐 박물관)
운영시간: 화-일 (공휴일 포함) 10시부터 오후 6시
입장료: 10유로/학생할인 시 8유로, 오디오가이드 포함
Bach-Museum | Bach-Archiv Leipzig (bachmuseumleipzig.de)

1. 도시 접근성: ★★★★

라이프치히는 60만 명이라는 인구로 들었을 때는 체감이 안 되지만 엄연한 대도시이며, 내가 교환학생으로 지내고 있던 만하임에서부터 바로 가는 ICE*가 있을 정도로 접근성이 좋았다. 베를린에 들른다면 ICE를 타고 1시간 30분 걸리는 도시기 때문에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다.

*독일의 고속 열차. KTX 같은 거다.

2. 도시 내 접근성: ★★★★★

도심, 아예 중심지다. 라이프치히에 오게 된다면 라이프치히 대학, 니콜라이 교회, 성 토마스 교회, 구 시청사 이런 것들을 둘러보게 될 텐데 이 모든 것들에서 도보로 5분 이상 걸리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다. 완전히 시내 중심이기 때문에 보지 않으려고 해도 보일 정도다.

3. 소장품: ★★★

많은 악보를 소장하고 있고 바흐 가족이 사용하던 상자, 바흐가 사용하던 오르간 (비록 테세우스의 오르간이 됐지만) 까지도 소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교적 점수를 높게 매겼다. 자료가 많이 남아 있기 힘든 바로크 시대 작곡가라는 바흐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이만하면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4. 언어 지원: ★★★★★

유럽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한국어 지원 박물관이다. 오디오가이드가 아주 잘 되어 있다. 오디오가이드가 싫다면 영어로 적힌 판넬들을 읽으면 되는데 이 또한 대부분 독어와 영어가 병기되어 있기 때문에 유럽에 올 정도면 언어 문제는 없을 박물관이다.

5. 가성비: ★★★

적절하다. 비싸거나 저렴하다는 생각을 따로 하지 않았다.

6. 규모: ★★★★

규모 자체는 크지 않으나 설명된 내용이 빽빽해 볼륨이 큰 편이다. 때문에 박물관이 작다는 생각은 따로 할 일이 없다.

7. 상호작용: ★★★

존재하긴 하지만 눈에 띌 정도로 미디어나 인터랙티브 요소를 잘 활용한 박물관은 아니다. 성 토마스 교회의 일상을 보여주는 때나 바흐연구소 부분에서는 잠깐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박물관에서 가장 재미있던 부분은 나오면서 바흐 가발 철사 틀에다가 소원나무처럼 소원 적어놓고 나올 때였다. 색색깔의 종이가 레게머리처럼 늘어진 바흐 가발 틀이 상당히 웃기다.

8. 굿즈: ★★★★★

비교적 굿즈욕을 자극했던 박물관이었다. 저렴한 바흐 플레이모빌 (장난감의 일종이다)이나 바흐의 커피, 바흐의 초콜릿 등 바흐와 실제로 연관이 있는 상품들을 팔고 있으며 바흐가 직접 디자인한 모노그램을 나무로 조각해 팔고 있어 사지 않을 수가 없다.

9. 큐레이팅: ★★★★

라이프치히에 지내던 바흐의 시기와 그 살짝 전, 즉 바흐의 인생 중후반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유년 시절은 아이제나흐에서 중점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바흐의 유년시절이나 가정생활보다는 음악과 직업적 삶을 더 자세히 다루고 있다. 자료가 없으니 어떻게든 있는 모든 자료를 긁어모아 바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보여주마 하는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10. 총평: 

어차피 라이프치히까지 갔다면 당신은 이미 바흐를 좋아하는 사람일 텐데, 굳이 이 박물관을 피해서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가? 라이프치히에 온 당신, 바흐박물관을 다녀오라.

최대 장점: 뛰어난 접근성, 작곡가의 유명도, 깔끔한 큐레이션과 한국어 지원

최대 단점: 바로크 작곡가 특징상 다소 빈약한 소장품

추천 여부: O


그렇게 바흐 박물관은, 내 30곳의 작곡가 박물관 기행의 시작이 되었다.



2편 예고: 요하네스 브람스. 1833년에서 1897년까지 활동한 독일의 작곡가. 대표작은 '자장가'와 '헝가리 무곡'. 2024년 1월, 갈매기와 빗소리로 가득 찬 독일의 항구도시, 함부르크에 그의 발자취를 좇아 도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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