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훈련소 훈련일지 - 009
눈을 뜨니 목이 많이 아팠다. 창문을 열어 놓았기 때문이겠지. 주섬주섬 아침 점호 준비 마치고, 훈련소 내 지구병원에 방문하기 위해 식사를 일찍 진행했다. 나날이 식사가 부실해진다고 느낀다. 기분 탓이겠지.
약 20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지구병원에는 종합병원 같은 느낌이었고, 대기 시간이 길었다. 평소 부족했던 잠을 보충하려 꾸벅꾸벅 졸다 보니 차례가 되어 진료를 받았다.
이전에 병원 진료를 받은 인원들은 진료를 못 보고 다시 생활관으로 복귀하는 경우가 있어 금일부터는 조교들이 미리 번호표를 뽑아주었다. 운이 좋았다.
병원 일정은 오전 / 오후 1회씩 진행되는데, 오전에 진료를 못 본 인원들은 오후에 진료를 봐야 하고 이로 인해 필수 훈련을 마치지 못했다면 일과시간이 지난 18시 이후에 따로 연병장에서 추가 훈련을 받아야 한다.
진료는 일반 병원과 같았다. 다만, 군의관들이 진료를 담당하기에 해당 과의 군의관이 전역을 하는 경우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을 약 4시간 이상 병원 의자에서 보내게 될 수 있다.
진료를 받고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오늘은 영점 사격 자세를 배운다고 한다. 먼저 이동한 인원들은 훈련장 근처의 간이식당에서 식판에 비닐을 놓고 밥을 먹었다고 한다. 이 또한 운이 좋았다.
오후에는 간단히 사격 자세와 순서를 숙지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전에 선행된 교육도 있었기에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전우들에게 물어가며 익힐 수 있었다. 처음과 달리 나도, 생활관 인원들도 마음이 많이 열렸다.
잔뜩 찡그린 표정의 하루가 지나니, 다들 조금은 누그러졌다. 딱히 기분 나쁜 일도 없었고, 자잘한 불평과 우스갯소리로 하루를 채웠다.
저녁 식사 전에 게시판에 얼마 전 1차 체력 측정 결과가 나왔고 감사하게도 특급 전사 인원에 올랐다. 다양한 운동으로 체력을 다져놓은 덕분이겠지, 내심 뿌듯했다.
일과 시간 후에는 별다른 일 없이 개인 정비가 이어졌다. 다만, 슬슬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항상 60% 수준의 에너지가 차는 기분인데, 편히 자지 못함이 원인으로 여겨진다.
이런저런 사회에서의 썰들을 풀고, 고민상담도 나누는 시간이 이어져 항상 5시간에서 6시간 밖에 못 자고, 불침번도 서는 데다 은은한 조명이 항상 비추고 있어 깊이 잠들 수가 없다.
은근하게 스며드는 나른함과 함께 저녁 식사에 부식으로 나온 박카스를 보고 피식했다. 우연이겠지만, 지친 기색이 느껴지기라도 한 걸까 싶었다.
오늘은 크게 별 일 없이 지나갔다. 잠들기 전 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평소의 가벼움과 달리 밤이라는 시간은 다들 감성적으로 변하게 하는 신비함이 있다. 129번, 136번 훈련병과 삶에 대한 대화에 약간의 즐거움을 느꼈다.
139번 훈련병은 자다가 갑자기 헛소리를 하기도 하고, 모태 신앙을 가진 142번과는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투닥거리기도 했다. 조금씩 입이 거칠어지기도 하고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기도 하는 게 슬슬 위험한 조짐도 느껴진다.
그렇게 오늘도 잘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