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은 술자리였다. 어쩌다 얘기가 거기까지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편지를 받아본 지 오래되었다는 친구에게 내가 편지를 써주겠다고 공수표를 날린 것이었다. 처음엔 그냥 넘어가려고 했다. 말 그대로 공수표였으니까. 친구는 해외로 멀리 떠나는 것도 아니었고 걔한테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서울에서 잔잔하게 잘 사는 친구에게 편지라니 뜬금도 좀 없어야지. 술자리에서 그 정도 빈말은 약속된 플레이였다. 그러다 갑자기 편지를 쓰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은 이유는, 그러니까 굳이 공수표에 대금을 치른 이유는, 그 날따라 날씨가 선선해서 만사에 열정이 솟아났고, 마침 집안에 편지지가 있었고, 편지를 받으면 그 친구가 좋아할 것 같다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편지를 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편지를 좋아한다. 한 글자씩 직접 써야 하고 직접 전달해야 하는 편지의 비효율성을 좋아한다. 마음의 크기를 재는 표준도량형인 시간법에 따르면 편지를 쓰는데는 이메일보다 많은 시간이 들기 때문에 마음 또한 듬뿍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편지는 0과 1의 전기신호로 치환되지 않고 상대방이 썼던 그대로 전해진다. 그 아날로그 물성에서는 사람의 흔적이 느껴진다. 기계놈들이 아무리 정교해진다 해도 대체될 수 없는 인비저블 섬띵이 있다 이 말이다. 편지를 쓰거나 읽을 때 그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그곳에서 어떤 마음으로 편지를 읽을 것인지, 또 쓸 것인지, 상상할 수 있다. 타인에게 몰입하는 순간 마음은 마찰열을 일으킨다. 일상에서 쌓인 마음의 더께가 벗겨지고, 나는 한 꺼풀 얇아진다. 이렇게 평소보다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는 그 이완의 순간을 좋아한다.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편지를 발견하거나, 서간체로 쓰인 글을 읽는 것, 편지를 노랫말로 쓴 노래를 듣는 것도 언저리의 즐거움이다. 편지에 대해서라면 이외에도 좋아하는 순간들이 아주 많지만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좋아하는 건 편지를 쓰는 일이다.
"편지하다"는 말은 "편지를 쓰다"를 의미한다. 명사에 접미사 "-하다"가 붙어서 만들어진 동사는 그 명사의 가장 보편적인 의미인 경우가 많은데, 편지를 쓰는 일은 편지에 있어서 가장 보편적이며 동시에 본질적인 의미이다. 편지를 쓴다는 문장에는 "굳이"라는 부사가 어울린다. SNS도 있고 이메일도 있는데도 편지를 쓰는 건 굳이 벌이는 번거로운 일이다. 그러니 편지가 연인들의 전유물 취급을 받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연인들이야 말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굳이 하지 않을 일들로 서로에게 애정이 있음을 확인하는 비논리적인 족속들이니까. 논리의 세계에 사는, 그러니까 당장 편지할 연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편지를 쓰고 싶다고 해서 누군가를 황급히 좋아할 수도 없는 발신인 부적격자인 나는 이런 기회가 아니면 딱히 편지를 쓸 일이 없기도 했다.
오랜만에 편지를 쓰는 일은 수월하지 않았다. 쓰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거니 싶어서 조잘조잘 써봤지만 정신을 차리고 읽어보니 이건 편지도 뭣도 아니었다. 거기엔 재미도 감동도 없었고, 무엇보다 알맹이가 없었다. 망한 소개팅에서의 대화처럼 계절과 근황, 코로나 시국, 기약 없는 약속을 겉돌며 변죽만 울렸다. 이런 시덥잖은 이야기를 왜 편지로 써? 이건 카톡도 아깝고 회사 메신저에나 어울릴 법한 넋두리였다. 내가 만약 이런 편지를 받는다면 기분이 썩 좋지 않을 것 같았다. 편지지를 그대로 구겨서 버리고 새 편지지를 책상에 놓은 채 고민에 빠졌다. 어떤 편지를 받아야 당신이 기뻐할까? 편지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야 할까?
그 때부터는 당신에 대해서 생각했다. 당신의 첫인상과 지금의 당신은 어떻게 다른지. 선입견이 강한 내가 어떻게 당신을 달리 보게 되었는지. 앞으로의 당신에게는 어떤 미래가 그려지는지. 일상에 파묻히지 않기 위해 당신이 얼마나 분투하는지. 안주해야 할 현실과 놓을 수 없는 이상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계속 흔들리기로 한 당신의 마음을 내가 얼마나 응원하는지. 민망해서 말하지 못한 장점. 고마웠지만 충분히 표현하지 못했던 순간. 진부해서 굳이 꺼내지 않아왔던 말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봤다. 첫 줄에 당신의 이름을 적어놓고 이틀 정도를 틈날 때마다 생각했다. 생각할수록 당신은 선명해졌다.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도 명료해졌다. 편지지에 옮겨 적을 때에는 오히려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써놓고 보니 편지는 당신을 주제로 쓴 한 편의 에세이가 되어있었다.
편지를 쓰는 펜의 펜촉을 적시는 건 그 사람을 생각하는 시간이다. 진심이 담긴 편지를 쓰려거든 그 사람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해야 한다. 자주 오래 생각할수록 내가, 당신에게, 편지로 할 수 있는 고유한 이야기를 꺼내어 쓸 수 있다. 편지하겠다는 말은 당신을 생각하겠다는 말이다. 답장을 기다리겠다는 말은 당신도 나를 생각해달라는 말이다. 그러니 실상 편지할게요. 당신의 답장을 기다리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마음은 구애에 가깝다.
마지막 줄에 2021년 9월 모일을 적고 봉투에 편지지를 접어 넣었다. 잠시 부풀었던 당신에 대한 생각이 납작해져서 작은 봉투에 담겼다. SNS에서 힘이 되는 선플 하나를 만난 것처럼 잠시 웃고 당신의 서랍 어느 한편에 수납될 수 있길 바라면서 편지를 봉했다. 다음 번에 만난 자리에서 편지를 건넸다. 편지를 읽어본 당신은 진짜로 써주었냐고 놀라면서도 고맙다고 꼭 답장하겠고 했다. 언제까지 답장하겠다는 기약은 없었다. 그 편이 더 좋았다. 답장을 기다리는 날 동안은 계속 가을일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