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나는 평범한 모자지간이다. 엄청나게 친하지도 소원하지도 않고, 애틋하지도 무관심하지도 않다. 만일 친밀도를 수치를 낼 수 있다면 대한민국 평균치에 딱 떨어질 만큼 흔하고 평범한 사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보다 걱정이 많다. 오늘 어떤 흥미로운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지만, 일상을 잘 지켜내고 있는지는 궁금해한다. 잘 자고 일어났는지, 잘 먹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어제보다 나은 오늘보다는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내길 바란다. 평범한 사이답게 우리 둘 중에 걱정을 더 많이 하는 쪽은 어머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모든 근심의 안테나를 내 쪽으로 세우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몇 통씩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효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효자는 더더욱 아니었고, 효도를 해야겠다고 다짐은 많이 하나 실천은 그만큼 하지 못하는 관념적 효자로서 먼저 전화를 걸진 못해도 걸려오는 전화는 모두 받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주말엔 뭐하니?
교회 안 가요
그 결과가 이거였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듣는다면 저게 과연 대화인가 싶은 의아한 문답을 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생략된 부분을 복원하면 이랬다.
주말엔 뭐하니? 별일 없어요. 일요일에도 쉬어? 네. 근처에 교회 있어? 없어요. 대한민국에 교회 없는 곳이 어딨니? 그니까 우리나라는 교회가 너무 많아. 근처에 OO교회에 눈 딱 감고 한 번만 나가봐. 싫어요. 너도 어렸을 때는 독실했어. 이젠 아니에요. 너 진짜 교회 안 갈 거야? 네, 교회 안 가요.
숱하게 어머니와의 대국을 반복한 끝에 어머니가 주말 일정을 묻는 것은 결국 교회가라는 말을 하기 위한 포석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와의 통화를 바둑이라고 친다면 정말 손쉬운 바둑이었다. 노림수가 분명했다. 어머니가 어떤 말을 하든 결론은 셋 중 하나였다. 교회 다녀라. 결혼해라. 밥 잘 챙겨 먹어라.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에 의도를 넘겨짚기 쉬웠다. 그리고 그것은 위험한 마음가짐이었다. 상대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뻔히 아는데 돌려 돌려 말하는 모습을 보면 화딱지가 나기 마련인데, 그게 어머니라면 문제가 좀 곤란했다. 화는 나는데, 또 에둘러 말하는 어머니가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들고, 따지고 보니 그게 내 잘못은 아닌 것 같아서 억울하기도 했다. 부정적인 감정을 다 버무리면 짜증이라던데,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짜증이 늘었다.
로스쿨 시험을 준비할 거라고 처음 얘기를 꺼낸 날, 어머니는 못마땅한 듯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직장은 그만두려고? 그 공부 힘들지 않니? 공부 기간은? 학비는? 결국에는 시험 준비를 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둘러둘러 말을 꺼내는 듯했다. 나도 슬슬 말에 가시가 돋기 시작했다.
왜요? 하고 싶은 말이 뭔데요?
엄마는 기도해주려고 그러지.
뭐가 못 마땅하신 것 같은데, 얘기를 해보세요.
아니, 공부 그렇게 하다가 결혼은 언제 하려고.
결국 또 결혼? 맨날 교회 아니면 결혼. 왜 자꾸 어머니 원하는 대로만 하려고 하세요. 내가 뭐 하려는 거 응원은 해줘 봤어요?
엄마니까 하는 말이잖아. 엄마는 너보다 더 경험이 많고.
됐어요. 그런 식이면 더 할 얘기 없어요.
바로 전화를 끊고, 다시 걸려오는 전화는 수신을 거절했다. 잠시 후 잔뜩 화가 난 어머니에게서 문자가 왔다. 문자에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지만 또 그래야만 하기도 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어머니는 영영 내가 느끼는 부당함을 알지 못할 것이었다. 밤 사이 두어 차례 더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다음 날은 하루 동안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어머니에게서 다시 전화가 온 건 그 다음날 점심이었다. 이번에도 받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숨을 고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의 첫마디는 항상 여보세요 였다. 단어는 같았지만 목소리가 매번 달랐다.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감정 변화가 담겨 있었다. 나는 여보세요 한 마디만 들어도 어머니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완성된 문장으로 쓸 수 있었다. 그때의 어머니의 마음은 "아직까지 마음이 편치 않아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 어려우니 아예 아무 일도 없었던 척해야겠다"였다. 어머니는 밥은 먹었냐고, 무얼 먹었냐고, 수원의 날씨는 어떠냐고, 옷은 어떻게 입었냐고, 어제의 안부까지 이틀 치를 한 번에 물으려는 듯 계속해서 질문을 하셨다. 나는 차근차근 대답을 했다. 어머니가 질문하고 내가 대답하는 일방적인 문답이 이어지다가 질문이 끊겼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어머니는 잘하고 있는 아들을 응원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앞으로는 네가 싫어하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나는 그 약속의 절반만 믿었다. 전자는 믿었고 후자는 믿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어머니는 분명 약속을 잊고 또 불편한 말을 꺼낼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약속을 잊는 것보다 더 쉽게 나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잊을 것이다. 어머니는 어떤 서운한 일이 있어도 다음 날이면 잊어버리고 다시 나를 걱정한다. 사춘기 시절 언성을 높이던 내게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과일 접시를 건네고, 유행하는 운동화를 사주지 않는다며 날 선 말을 쏟아냈던 내게 용돈을 얹어 주시고, 전날 밤에 아무리 혼을 내더라도 다음 날 아침 등굣길에는 평소처럼 배웅해 주었듯,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머니에게 왜 그렇게 아들 걱정을 하냐고 물으면 어머니의 대답은 심플하다. 엄마니까. 걱정도 엄마니까. 잔소리도 엄마니까. 간섭도 엄마니까. 어머니에게는 왜냐는 질문이 끼어들 자리가 없는, 원래부터 그런 것인, 내가 태어날 때부터 그러기로 했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인, 범속한 맹목성이 있었다. 그게 알게 모르게 나를 지탱해왔다.
그날부터 매일 점심시간에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겠다고 다짐했다. 하루에 5분씩 매일 한 통은 먼저 전화를 걸어서 안부를 묻기로 했다. 전화를 하다가 열이 뻗칠 수도 있고, 서로 감정이 상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전화를 하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오늘 로스쿨 발표날 아니야?
잘 안 됐어요.
그거봐라. 거기가 좋은 길이 아니었던 거야. 엄마가 기도를 드려봤는데 좋은 길로 인도해주신다고 했거든.
또 속을 긁어놓는 당신의 한 마디에 오늘은 3분도 채우지 못하고 전화를 끊는다. 더 통화했다간 말이 곱게 나가지 않을 것 같았다. 묵힌 한숨을 내쉬며 통화 목록을 훑어보았다. 1년 가까이 어머니와 점심시간에 통화를 했다. 어떤 날은 건성으로 통화하고, 어떤 날은 적절한 타이밍에 끊지 못해 화를 냈다. 어떤 날에는 유달리 좋은 목소리로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았고, 좀처럼 하지 않는 여자 친구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끝은 그래서 교회 다니는 사람이냐는 질문을 받고 한숨을 쉬었지만. 앞으로 어머니가 살아 계시는 동안에는 매일 통화를 할 계획이다. 그렇게 매일 5분씩 복리가 쌓여, 별 것 아니지만 오래 반복된 습관이 어머니의 세계에 하나의 색인이 되어줄 수 있길 희망한다. 너무 외로워서 교회도 친척도 이웃도 다 무의미하고 혼자라고 느껴질 때, 당신에게 매일 걸려오는 전화가 한 통 있다는 게 힘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매일 지지고 볶고 싸워도 그래도 내가 당신의 편이라고 기억해주지 않을까. 그래서 아마 내일도 같은 시간에 전화를 걸 것이다. 오늘 통화에서 받은 내상이 커서 퉁명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로 했으니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