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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여름 Jul 02. 2020

변하는 친구를 바라보는 30대의 어느 날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소설사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 중 하나,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지적 허영심이 한창 부풀어 오르던 대학 초년생 시절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외우고 다녔던 문장. 누군가 왜 유명하냐고 물었다면 그것도 모르냐고 면박하고 돌아서서 혼자 고민이라도 해봤을 텐데, 불행히도 아무도 묻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달달 외우고 다녔다. 암기식 교육을 받아 온 아이들에게 왜냐고 되묻는 것은 미덕이 아니었고, 알지 못하는 것은 흠이었다. 우리는 어떤 의미인지, 그게 왜 대단한 지도 전혀 모르는 그럴싸한 것들을 입에서 입으로 옮겼다.


그러다 B가 왜냐고 물었다. 당황한 나는 대답할 타이밍을 놓쳐 그냥 웃었고,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돌아섰다. B는 늘 그랬다. 이미 상식이 되어버린 것들에 가장 먼저 의문을 던지는 아이였고, 그게 사람들에게는 꽤나 불편했던 모양이다. 선배들은 규범에 따르지 않아 마땅히 혼나야 할 B가 오히려 왜 그래야 하냐고 되물을 때, 자신들이 모욕이라도 당한 듯 얼굴을 붉히고 B를 뉘우치게 하려 했다. B는 B대로 설명을 해주면 납득할 텐데 그러지 못하고, 선배들은 선배들대로 굽히지 않는 B에게 날 선 말들을 쏟아냈다. 이번에도 문제는 입에서 입으로 옮겨 다녔다. 붉은 얼굴들이 여럿이 되자 B에게는 문제아라는 낙인이 찍혔고, 다른 후배들이라면 그냥 넘어갔을 사소한 일탈도 B에게는 엄격하게 따져 물었다. 그런 건 분명히 규범에 없었다.


B와 가까이 지내는 내게 선배들은 "걔 어때"라며 자주 물었다. 진짜 어떤지 궁금했던 게 아닌데 구태여 "알고 보면 괜찮은 친구예요"라고 답했다. 대부분 "걔 이상하던데", "친하게 지내지 마라"는 충고가 이어졌고, 어떤 선배는 의미심장한 아포리즘을 남기기도 했다. "사람은 두 가지 부류가 있어. 그냥 괜찮은 사람과 알고 보면 괜찮은 사람". 잠시 벙쪘다. 그게 그러니까 B가 별로란 말인가? 알고 보면 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굉장히 인류애적으로 해석되어야 할 말을 이 상황에서? 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나이였고, 선배도 실망스러운 표정을 숨기기엔 아직 어렸다. 그렇게 몇 번쯤 선배들을 실망시키고 나니 B와 나는 '너네 패거리'로 묶이게 되었다.


'우리 패거리'는 졸업 후에 같은 곳으로 발령이 났다. 그곳에서도 B의 물음들은 꺾이지 않았다. 불합리한 제도와 지시에 여러 차례 부딪혔다. 나는 그의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아끼는 만큼 그가 변할까 봐 두려웠다. 이러다 무너지는 게 아닐까. 이러다 무뎌지는 게 아닐까. 무너질 것 같을 때에는 다독이고 무뎌질 것 같을 때에는 다그쳤다. 우려와 독려를 번갈아가며 우리의 2년이 지나갔다. 그는 결혼을 했고, 6달 뒤에 딸을 낳았다. 그때 우리는 집세를 아끼기 위해 같이 살고 있었는데, 내가 마침 야간근무를 하던 크리스마스이브 날 그렇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우려도 독려도 할 수 없어서 그저 웃었다. "넌 꼭 그렇게 웃더라"며 되려 역정을 내던 그는 해를 거르며 딸을 낳아서 이제는 세 딸의 아버지가 되었다. 어쩌면 그게 우리 젊은 날 이야기의 수미쌍관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마주 앉아 술을 한 잔 하는데 그가 유튜브의 부동산 채널을 추천해주었다. 그 날 가장 자주 말하는 단어는 '과천'이었다. 당장 과천으로 주소를 옮기라고 한참을 떠들다가 자연스럽게 로스쿨 이야기로 화제가 넘어갔다. LEET는 왜 보지 않냐고 했다. 승진은? 결혼은? 연애는? 추석맞이 대환장 잔소리 파티를 벌이 고선 그랬다.


"실없이 웃지만 말고, 네가 이런 소리 싫어하는 건 알지만 남들 다 하는 건 하고 살아야 돼"


"왜?"


더 이상 웃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되물었다. 눈은 나를 바라보지만, 시선은 저편의 말을 고르는 듯 그는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침묵은 장편 소설의 한 챕터가 지난 것처럼 길게 이어졌다. 그건 문단을 바꾸는 정도로는 부족한 괴리감이었다. 한 페이지를 고스란히 공백으로 비워두고 다시 말을 꺼냈다.


"얼마 전에 우리 사장이 그러더라. 첫 문장이 가장 유명한 소설이 뭔 줄 아냐고. 그래 그거 맞아. 유명하긴 유명한가 봐.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이게 행복하기 위한 조건이라면서 그러더라. 뭘 잘하려고 하지 말고 못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아무리 뛰어난 게 있어도 결국은 부족한 것들 때문에 사람이 망가진다고"


"그래서?"


"네 말도 그런 건가 싶다고"


서운한 마음도 크고, 이해하는 마음도 큰, 아주 큰 마음이었다. 그 큰 걸 꾸역꾸역 욱여담아 뱉어내고 나니 빠져나간 자리에 잡생각이 잔뜩 흘러들었다. 혁신조차 작년에는 어떻게 했는지 묻고 답습하는 이놈의 조직, 백 번 잘하다 한 번 실수한 사람이 백 번 일도 실수도 안 한 사람보다 욕먹는 사랑하는 내 회사. 남들 다 결혼하니까 늦지 않게 믿음 있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는 우리 조여사님. 나이가 들수록 애인을 만나는 게 뭐가 좋아서 만난 다기보다 싫은 것들을 하지 않아서 만난다는 친구들. 얼굴들, 입술들, 말들이 뒤엉켜 수챗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불쾌했다면 미안하다. 요새 여유가 있어 보여서 그동안 못했던 얘기들을 한답시고 잔소리가 많았다. 다음번에는 더 편하게 보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B로부터 카톡이 왔다. 다음번에는 더 편하게 볼 수 있을까? 사람이 변하면 관계도 변하는 것일까? 딴생각을 하며 걷다가 은행을 밟았다. 불쾌한 냄새에 번뜩 길바닥을 보니 지난해 떨어진 은행 때문에 거멓게 눌은 얼룩이 채 지워지지 않은 위로 올해의 은행이 누덕누덕 으깨어지고 있었다. 평소라면 살금살금 피해 걸었을 그 길을 성큼성큼 걸으니 묘한 쾌감이 들었다. 긁어 덧난 상처에 앉은 딱지를 실컷 긁어버린 것처럼 시원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래. 행복하건 불행하건 다 삶의 한 모습인데, 까지고 덧나고 아물고, 답 없는 고민을 하고 또 웃고, 모든 게 사는 일이려니. 하며 신발에 묻은 은행을 긁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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