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포도알 키즈였다. 누군가에게는 싸이월드가 사진첩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미니미를 꾸미는 공간이었겠지만, 내게 싸이월드는 일기장이었다. 얼마 전 싸이월드의 서버가 곧 폐쇄된다는 뉴스를 보았을 때도 접속해서 가장 먼저 둘러본 게 싸이어리였다. 싸이월드 다이어리, 줄여서 싸이어리. 그곳에 쓰인 글들은 연극무대의 방백 같았다. 남들이 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것처럼 썼다. 덕분에 감성의 농도가 남달랐다. 모두가 애틋한 사연이라도 있어 보였다. 그 오글거리는 글들을 일기장이 아니라 싸이어리에 남겼던 건 누군가 이해해주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모두 공개, 일촌 공개, 비공개의 세 가지 항목 가운데서 굳이 일촌 공개를 선택해서 올려두었던 건 나를 아는 누군가 봐주고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사실 글을 처음 쓴 곳은 싸이어리가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 대표로 백일장도 나가고, 상도 제법 받았다. 선생님의 칭찬에 자신감이 붙어서 여기저기 글 쓸 곳이 있으면 열심히 써댔다. 불조심 표어, 포스터, 글짓기 대회가 열리면, 나는 망설임 없이 원고지를 펼쳤다. 그러다가 글쓰기와 멀어진 건 5학년 2학기가 끝날 무렵, 12월 초순쯤 어머니의 극성에 전학을 가면서부터였다. 전학 간 학교에서 처음 받은 숙제는 공교롭게도 글짓기였다. 친구들을 두고 떠나는 섭섭함과 낯선 학교의 모습과 그 날 따라 내린 첫눈의 인상을 담아 썼고, 선생님은 반 애들의 글을 모두 붙여 둔 교실 뒤편에 내 글도 함께 붙여두셨다. 다음 날, 덩치 큰 애들 몇 명이 '내리는 눈마저도 나를 반기지 않는 것 같다'는 게 무슨 소리냐며 시비를 걸어왔다. 나를 반기지 않는 게 참 많구나 싶어서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그게 젠체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고, 이해받지도 못할 글을 굳이 써보일 필요는 없었다. 그때부턴 혼자 일기만 썼다.
그 이후로 다시 사람들이 보는 곳에 글을 쓴 게 싸이어리였다. 싸이월드는 달랐다. 거기 써둔 글은 여러 사람들이 좋아했다. 시기가 적절한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까지 비슷한 나이를 지나가는 친구들은 비슷한 감정을 공유했다. 쉽게 흔들리고 좌절했고, 또 그만큼 쉽게 설레고 사랑에 빠졌다. 보들레르가 누구나 야심만만한 시절에 시적인 산문의 기적을 꿈꾼다고 말했던 것처럼, 그때의 우리는 시도 산문도 아닌 감정과잉과 추상의 문장을 써두고 그 시절을 함께 애틋해했다. 재수학원에서의 걱정과 설렘. 대학생 친구들을 보며 느끼는 부러움. 혹은 자괴감. 스무 살의 풋풋한 감정들. 첫 데이트와 미팅 후기. 어리숙한 연애를 하며 느낀 못난 내 모습과 헤어진 후의 찌질한 후회까지. 지극히 개인적으로 쓴 글이었지만 다들 자기가 겪은 일처럼 감상에 젖었다. 걔넨 고맙게도 공감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댓글을 남겨주었다. 그런 감상에 대댓글을 다시 다는 건 어쩐지 쿨하지 않은 것 같아서 그땐 말 못 했는데 애들아. 실은 말이야 공감받을 수 있었던 내가 오히려 너네한테 고마웠어.
페북이고 인스타고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싸이월드가 망한 이후로는 흥미를 잃었다. 공모전도 잠깐 구미가 당겼지만 금방 식었다. 나는 술보다 술자리를 좋아하는 사람처럼, 글보다는 글을 나누는 게 좋았다. 그렇게 잊고 살다가 오랜만에 술자리에서 만난 후배가 사람들과 같이 책을 읽고 에세이를 쓰는 모임을 추천해 주더라는 운명적인 이야기.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여기 가면 포도알 키즈들이 다시 모일 수 있는 건가. 싶어서 대뜸 신청하게 되었다. 그게 작년 이맘때쯤이었으니 에세이 모임만 벌써 1년째 하고 있고, 멤버들에게 브런치를 추천받아 여기에도 글을 쓴다. 글을 팔아 돈을 벌 것도 아니지만 공을 들여 쓴다. 오히려 돈을 써가며 글을 쓰는 셈이다. 글감은 예전만큼 풋풋하지 못하다. 사랑보다는 상실이, 설렘보다는 고민이 많다. 직장 상사 욕, 부모님과의 관계, 변해가는 친구의 모습, 결혼 문제 등등. (고작 한 문단 사이에 글감이 폭삭 삭아버렸다) 사는 얘기를 있는 대로 쓰기엔 그렇게 재밌는 인생이 아니어서 멋 조금 재미 조금 양념 쳐서 제출하고 멤버들과 함께 합평을 한다. 프로 작가의 글도 아니지만 서로의 글을 정성껏 읽는다. 정확한 비판이 맹한 칭찬보다 좋다. 그게 더 애정 있게 봐주는 것 같아서. 애정 어린 말과 글을 나누기 위해 나는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