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늦여름 Sep 23. 2020

치과에서

새벽에 혼자 턱을 부여잡고 끙끙 앓았다. 치통에 두통까지 얹혀서 좀처럼 다시 잠들 수도 없었다. 진통제를 삼키고 차도를 기다리는 그 시간. 창 밖에는 새벽이 한창이었고, 밤하늘의 가슴팍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들숨과 날숨을 쉬고 있었다. 도시의 불빛이 잦아들면 별빛이 보이듯 사람들의 말소리가 작아지면 밤의 숨소리가 들린다. 평소라면 사랑해 마지않을 시간과 풍경이었지만, 아프니까 그것마저 짜증스러웠다. 이 새벽에 가족도 없이 혼자 앓는 게, 하소연할 곳도 탓할 곳도 없는 게 얼마나 억울하던지.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거라곤 선선해진 새벽 공기뿐이었다. 베개를 뒤집어 다시 얼굴을 뉘었더니 그제야 진통제의 약효가 조금 돌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치과에 가기 싫은 걸까. 나이를 먹으면 치과 가는 일이 수월해질 줄 알았는데 두려움은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 얼굴에 씌워지는 초록색 면포에, 위잉거리는 그라인더 소리, 유난히 불쾌하게 아린 통증, 이제는 거기에 돈 걱정까지 얹혔다. 뭘 좀 아는 나이가 되었나 싶었는데, 아는 고통만 잔뜩 늘었다. 아는 고통이라 더 두려웠다.


어휴, 좀만 늦었으면 응급실 갔겠어요

? 응으시이오(응급실이요)?

그럼요. 참다 보면 머리 아파서 잠도 못 자요

아아요(맞아요), 어어 그애어요(저도 그랬어요)

자,  하시고. 조금 불편해요. 아프면 바로 말씀하세요

애아으이아(괜찮습니다)


나는 두려우면 말이 많아진다. 어렸을 때도 수술대에 누우면 그렇게 조잘거렸다고 하는데, 어머니의 생각처럼 남달리 대범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다른 애들과 똑같이 겁을 먹었는데, 겁먹었다는 걸 들키기가 싫었다. 덩치값이랄까. 아니면 장남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을까. 당장이라도 수술대에서 일어나 수술받기 싫다고 울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두려움을 맞닥뜨리면 몸을 부풀리는 복어처럼 말을 부풀리고, 부풀린 말을 갚으려 의연한 척 고통도 참았던 게 유난히 대범했던 김 씨 집안 첫째 아들의 실체였다. 허세는 여전했는지 아픈데 티도 안 내고 아득바득 참고 있었다. 관우는 마취도 안 하고 어깨뼈를 생으로 긁어냈다던데 이런 걸로 엄살떨지 말자며 쓸데없이 비장해지는 중이었다. 얼마나 몸에 힘을 잔뜩 주고 있는지 사지가 다 뻐근했다.


"원래 엄청 아파요. 잘 참고 계시는 거예요"


그러다 의사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긴장이 풀렸다. 그렇게 특별한 말도 아니었는데 말이. 네가 아픈 게 유난스러운 중병이 아니고, 남들도 다 겪었던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보편성에 파묻히니 지긋지긋하던 통증이 그동안 나만큼 아파왔던 사람들의 수만큼 분할되는 느낌이었다. 나 혼자 버텨야 할 몫이 먼지만큼 작아졌다. 그 뒤로는 치료가 수월했다. 수납을 하며 치아 관리법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다. 치아도 소모품이라 정기적으로 스케일링과 치과진료를 겸하는 게 오래 쓰는 비법이라고 했다. 사회의 평균적인 어른으로 살기 위한 습관을 하나 더 배웠다. 치과를 나서며 왼쪽 뺨을 툭툭 눌러보았다. 아직 얼얼한 게 마취가 꽤 오래갈 것 같았다.


"'원래'로 시작하는 말은 다 헛소리야"


그때 왜 당신 생각이 났을까? '원래 결혼은 어린 나이에 멋모를 때 해야 한다'는 말이 이제 보니 맞는 말 같다던 당신에게 그건 헛소리라고 일축했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 당신의 표정이 어땠던가. 농담조로 던졌으니 같이 웃었던가. 유난스러움에 지쳐 실망했던가. 사실 잘 떠오르지 않는다. 당신의 표정을 들여다볼 겨를도 없이 나는 말들을 쏟아냈었나 보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어떤 표정을 지었든 간에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은 분명하다. 다들 하는 것처럼 적당한 시기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당신에게 꼬박꼬박 따져 묻는 내 태도가 편치는 않았을 테니까. 치통 하나에도 남들만큼 아프다고 하니까 마음이 놓이는 나는 어째서 그렇게 예민하게 굴었던 걸까. 사는 일은 고작 치통 같은 것보다 훨씬 무섭고 혼자 버티기 어려운 일인데.


쉽사리 가시지 않는 의문을 안고 다시 밤이 찾아왔다. 좁은 방에 앉아 있기도 어딜 걷기도 애매해서 무작정 버스를 탔다. 왕복 2시간쯤 걸리는 마을버스 6번이었다. 퇴근시간도 훌쩍 지난 한밤중이라 버스는 노선 내내 한산했다. 창문을 반쯤 열었더니 맞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한창 넋을 놓고 야경을 보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단톡방에서 말이 없던데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니지?

뭐 그냥 그렇지.

여자친구는 잘 만나고 있지?

헤어졌어.

진짜로?

응. 그렇게 됐어.

또 도망쳤구나.


시답잖은 얘기를 몇 마디 더 주고받다가 전화를 끊고 곱씹어봤다. 도망쳤다라... 그래 나는 또 도망쳤구나. 그제야 답답한 마음의 정체가 또렷해졌다. 남들이 승진이며 결혼, 육아, 재테크로 관심사가 옮겨가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동안 머물러있는 내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기 싫었구나. 그래서였구나. 유독 뾰족하게 굴었던 건. 몇 달 동안 들여다본 적 없던 수챗구멍 뚜껑을 들춰본 기분이었다. 불쾌하지만 시원한 느낌이 이마를 스쳐 지나갔다.


마을버스는 어느새 종점에 가까워지며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서고 있었다. 버스 유리창 전면으로 신도시의 수많은 불빛들이 오밀조밀 비췄다. 일요일 이 시간이면 가족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기 좋을 시간일 터. 불빛마다 한 가족씩 맺혀있는 것 같았다. 두런두런한 말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그러다가도 저 많은 불빛 가운데 내 건 하나도 없구나 싶어서 울적해지는 필연의 밤. 06번 마을버스는 퇴근을 앞둔 기사 아저씨와 넋을 놓은 남자 하나를 태우고 신도시 외곽의 차고지로 향했다.  푸르고 공허한 불빛의 절반은 내 몫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싸이어리 써보셨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