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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여름 Oct 15. 2020

가로세로 성장기

소설 '새의 선물'을 읽고

내 인생의 첫 기억은 7살, 선교원을 다니던 시절이다. 선교원 앞마당에서 땅강아지였나 쥐며느리였나를 움켜쥐고 여자애를 놀라게 한. 크게 특별하지 않은 기억. 누군가는 젖먹이 시절이 기억난다는 걸 보면 꽤 느린 편인데, 정말이지 기억의 단말조차 없어 아쉬움도 없다. 선교원은 한글보다 음표를, 동요보다 찬송가를 먼저 가르치는 곳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이름과 함께 물려받은 신앙 덕분에 셈도 한글도 알파벳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얼마간 곤혹스러웠던 것은 믿음의 힘으로 극복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기대는 배반한다고 했던가, 어린 눈으로 보기에 종교라는 게 참 설득력이 없었더랬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기도를 할 때였다. 아직 직장을 가지지 않은 큰삼촌이 정신 차리고 취직하게 해 달라고, 교회를 다니지 않는 여자와 만나는 작은 삼촌이 믿음 있는 여자와 만나게 해 달라고, 간이 좋지 않은 할아버지가 술을 끊게 해 달라고. 기도와 기도가 이어졌다. 서로에게 해야 할 이야기들을 기도랍시고 허공에 하는 모습이 의문스러웠다. 하나님을 핑계 삼아 서로에게 상처를 주려는 사람들 같았다. 기도를 시작하고 어른들이 모두 눈을 감으면 나는 꼭 눈을 떴다. 그렇게 신실한 어른들의 틈에서 나는 신앙이 아닌 불신의 씨앗을 키웠다. 그 씨앗을 몰래 담아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구구단과 받아쓰기를 배우며 모태신앙의 탯줄을 끊어냈으니, 선교원의 교육도 나름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유구한 종교 투쟁의 역사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시작되었다. 쿠데타는 매미의 삶과 같아서 9할을 준비하는데 쏟아내고, 이쯤 되었다 싶을 때 본색을 드러낸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인터넷으로 인생을 조금 알아버린 그때는 더 이상 거사를 미룰 수 없는 적기였다. “교회 가기 싫어”가 아닌 “기독교를 믿기 싫어”라는 말을 하기까지 5년이 걸렸다. 아프리카의 기아 문제며 전염병과 종교 전쟁을 들어가며 저항했지만 종교는 설득의 영역이 아니었다.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일축으로 상황은 종료되었고, 다가온 설은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교회에 다니는 외가에서 긴 설교를 들어야 했다. 이후 명절마다 “교회 다녀라”는 잔소리를 견뎌온 덕에 얼마 전 합세한 “결혼해라”는 쉽게 대처할 수 있었다. 다만, 이번 설에 “교회 다니는 여자와 결혼해라”를 상대할 때는 거대 로봇물에 등장하는 악당들의 심정을 십분 이해하게 되었다. 비겁하게 합체라니, 그건 반칙이잖아.



종교 투쟁이 세로축이라면, 내 인생을 직조해온 가로축은 인정 욕구이다. 어렸을 때 들었던 칭찬은 철들기도 전에 이미 많은 부분을 결정해 버렸다. 전략 삼국지 60권을 읽으며 들었던 칭찬 때문에 평생 독서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내심 다른 만화는 보지 못하게 하는 어머니가 왜 삼국지는 칭찬해주셨는지 의문이었다. 책날개에 쓰인 “삼국지 세 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상대하지 말라”는 말 때문인가 해서 같은 만화를 세 번 보았는데, 치열한 독서를 통해 얻은 것이라곤 나 자신에 대한 임상적 소견밖에 없다. "방통병"이라는 이 병은 유비의 책사였던 방통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방통에게 한적한 지방현력직을 맡겼을 때는 일을 돌보지 않았으나, 국가의 중책을 맡기자 역량을 발휘했다는 일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주요 증상은 가치 있는 일을 맡겨줘야만 열심히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지독한 방통병 환자였던 나는 참인 명제의 대우는 참이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하지 않는 일은 모두 가치 없는 일'이라며 뻔뻔한 논리를 주장하기도 했다.



인정 욕구로 생겨난 삶의 패턴이 또 한 가지 있다. 무난하게 할 수 있는 일보다 내가 남들만큼 해내지 못하는 일에 빠져드는 것이다. 도전정신과 같은 숭고한 뜻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굉장히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못하는 일을 결국 남들만큼 해낼 수 있게 되었을 때 크게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90만큼 해내던 아이가 100을 해낼 때보다, 30을 하던 아이가 갑자기 80을 해냈을 때 더욱 주목한다. 실상 전자가 더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나는 물려받은 천식 때문에 달리기를 잘하는 아이가 될 수 있었고, 수학을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과를 갔다. 대학교 1학년 때 팩트 폭력배인 친구로부터 들은 “말과 글이 딸린다”는 말이 글을 쓰고 말을 하게 했다.



인류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고 했던가. 나의 역사는 도전과 극복의 역사인 셈이다. 불리한 판에 뛰어들거나 형편없는 패를 쥐었을 때 목표의식은 더욱 뚜렷해진다. '바라보는 나'는 살아온 날의 씨줄과 날줄을 하나씩 더듬어 본다. 우연함과 사소함이 만들어낸 지금을 보고 있자니, 삶은 농담이라는 말이 다시 한번 납득이 간다. 위기가 기회가 되고, 의도한 것은 무의미해지는 삶 속에서 나름의 규칙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짐한다. '보이는 나'는 또 위기 앞에서 흔들릴 때마다 숨을 고르고 속으로 되뇐다. 흔들리지 않는다면 더 성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더 흔들려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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