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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여름 Jun 30. 2020

필사하는 마음

조도가 낮은 스탠드 불빛 아래 줄공책과 펜을 나란히 놓는다.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잠시 눈을 감고 공책 겉면에 내려앉은 한기를 쓸어내린다. 손 끝에 닿는 서늘하고 거친 감촉과 사르륵거리는 마찰음이 딱 맞아떨어질 때까지 감각을 포개다 보면 조금씩 번잡한 마음이 갈무리된다. 마침내 감각들의 주파수가 들어맞는 순간. 그 순간의 호흡을 그대로 이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써내려 가는 게 중요하다. 리듬을 잃으면 그르치는 일이다. 빨라지면 깜지 쓰기, 느려지면 글씨 연습이 되고 만다. 리듬만 똑바로 잡히면 집중은 저절로 따라붙는다. 일정한 속도로 책을 보고, 빈 종이로 시선을 옮기고, 쓰고, 다음 문장을 상상해보고. 그러다 보면 쓴 사람의 마음에 한결 가까워지는 것만 같다.


필사를 하는 동안 '읽는 마음'은 '쓰는 마음'이 된다. 읽을 때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문장을, 글을, 글을 쓴 사람을 판단한다. 그러나 훈수는 9단이어도 직접 대국해보면 한 수 한 수놓기가 쉽지 않듯, 쓰는 마음이 되어보면 판단도 비교도 쉽지 않다. 읽는 마음은 결과물인 활자만 놓고 따지지만, 쓰는 마음은 과정에서의 고뇌와 어려움을 알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쓰는 것처럼, 수많은 문장들 가운데 하나의 문장을 택하고, 그렇게 어렵게 골랐던 문장을 글의 흐름을 위해 버리기도 하고, 어느 구절에 선가는 울컥해서 거칠게 썼다가, 또 언젠가는 마음이 죽어 덤덤하게 쓰는 걸 조금이나마 더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필사는 읽으면서 쓰는 일이지만, 필사하는 마음은 쓰는 마음에 가깝다.


최근에는 끌리는 책도 없었는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뭐라도 필사하고 싶었다. 맘먹고 책을 골라봤지만 신통치 않았고, 고민만 늘린 채 광주 집에 내려갔다. 어머니가 이사를 한다며 내심 내려오길 바라는 눈치였고, 시기도 어버이날과 겸하기에 좋았다. 마침 광주 가는 밤 버스는 생각을 정리하기에 아주 좋은 공간이기도 했다.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아버지의 앨범을 보았다. 유품을 정리할 때는 보이지 않더니, 오래전 다락에 박아둔 내 책들 사이에 꽂혀있었다. 아버지는 사진을 잘 찍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드문드문 찍었던 사진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세월이 한 움큼씩 훌쩍 지나갔고, 그다지 두껍지도 않은 앨범 한 권에 그가 살아온 날들이 고스란히 담긴 듯했다. 첫 장은 군대에서 찍은 그의 사진으로 시작해서 마지막 장은 내 졸업식으로 끝나는, 한 세대를 토막 내서 담아놓은 것 같은 앨범. 몇 장쯤은 이제 나보다 어려진 그의 사진을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긴 아빠베개를 등에 받치고, 재떨이를 옆에 둔 채 세상 평온한 얼굴로 TV를 보던 그의 주말 풍경이 있었다. 그땐 "아빠는 놀러도 안 가주고 맨날 집에서 쉬려고만 한다"라고 칭얼 댔지만, 이젠 주 4일 근무에 매일같이 회식이던 그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안다. 가족끼리 삼겹살을 구워 먹는 상 위에도, 아버지의 밥그릇 옆에 소주병이 국물처럼 놓여있는 사진. 건강을 해치며 술을 마시는 그를 오래도록 원망했지만, 이젠 그가 스스로를 달래는 유일한 방법이 집에서 먹는 반주 한 병이었음을 안다. 수능이 끝난 나에게 난생처음 "고생했다"라고 말하며 소주를 따라주던 아버지는 인생에 해야 할 일을 하나 끝낸 것처럼 얼마나 후련하고 편해 보였는지. 표현이 서툰 아버지가 만취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처음 아버지에게 대든 다음 날이었을 것이다. 잔뜩 취해서 돌아온 아버지는 "아빠가 아버지 없이 자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하소연했고, 그때도 나는 속으로 아버지 같은 아버지는 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갓난아기였을 때 당신의 아버지를 여읜 내 아버지의 마음을 그땐 왜 이해하지 못했는지. 치기가 가시고 나니 후회가 꽤 많이 남았다.


얼얼한 마음으로 앨범을 덮는데, 헐거워진 비닐이 벌어지며 몇 장의 사진이 떨어져 나왔다. 아버지가 20대에 남긴 몇 장 되지 않은 사진들이었다. 군대에서 구릿빛 웃통을 드러내고 찍은 사진, 어머니와 데이트하며 찍은 사진, 어린 나를 안고 친목계원들과 산을 오르던 사진. 사진들 사이로 아버지가 가끔 이야기하던 20대의 그의 모습을 본다. 좋았던 시절이 많지 않았은지, 항상 같은 레퍼토리로 회상했던 그의 화양연화를.


석연치 않은 마음으로 수원에 돌아와 반나절을 잤다. 밤새 술을 마셔도 여섯 시간 이상 못 자는데 이사가 힘들었는지 중간에 깨지도 않고 열몇 시간을 잠만 잤다. 마음은 묵직한데 날씨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좀 걷기로 했다. 고막이 찌릿하도록 음악을 크게 틀고 발 닿는 대로 멍하니 걸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매일 출퇴근하는 길로 향하고 있었다. 헛웃음이 나 고개를 들어보는데, 가로수를 따라 조명이 번지는 모양이 영락없는 여름이었다. 벚나무들이 그새 꽃잎을 다 털어내고 푸른 잎으로 메워져 있었다.


"올봄은 참 올 때도 궁색하더니 갈 때도 말없이 조용히 가는구나" 나직하게 혼잣말을 하다가, 아버지를 생각한다. 그의 인생이 꽃잎을 떨구고 잎을 채웠을 시기를 생각해본다. 그 그늘 아래에서 자라왔던 나는 이제 조금은 그를 알 것도 같다. 미움도 이해도 딱 사는 만큼 할 것 같다. 빠르지도 더 느리지도 않게 내가 아버지의 삶만큼 살아내면서 필사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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