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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Nov 14. 2019

공직자로서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9급은 정말 여섯 시에 퇴근하는가

공직자로서 의미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사회와 공익,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 민생에 관심을 가져 국민 삶의 질 향상에 공헌한 공직자라면, 누구라도 그 공직자의 삶이 의미 있다고 말하지 않을까.


우리는 작은 일에 힘쓰는 사람이 큰일을 이룰 수 있다고 배워 왔다. 그래서 공익에 기여하는 것이 중요하지, 조연이든 주역이든 역할과 그 비중은 중요하지 않다고 배워 왔다.


하지만 작은 일에 힘써 작은 보람을 이룬 하급 공직자의 역경과 성공담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친 고위 공직자의 이야기만이 기록으로 남아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역사서에 기록되어 공직자로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고 여겨지는 고위 관료의 삶을 잠시 살펴보자.


자신만의 브랜드를 남긴 관료들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유명한 관중(管仲). 잘 먹고 잘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면서 춘추 시대 제나라에 자본주의 경제 질서의 기반을 잡았다. 사적 소유권을 명확하게 하고 정부의 세금과 수탈을 줄여 나갔다. 한편으로는 정부에서 소금을 생산함으로써 국가 재정을 탄탄히 했다. “나를 낳아 준 이는 부모지만, 나를 알아 준 이는 포숙이다.”라는, 우정 이야기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최고의 명대사를 남겼다.*1


유방의 재상이었던 소하(簫河). 진(秦)나라 함양에 입성해서 모든 장수들이 금은보화가 있는 창고로 달려갔을 때 그는 승상부와 어사부의 법령, 그리고 도적문서(圖籍文書)를 입수해서 보관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법조문, 공문서,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 그리고 지도 같은 그래픽 정보를 확보했다는 말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산천, 요새, 호구, 백성의 살림살이를 파악하여 국정을 수행했다. 유방이 전선에서 싸울 때 후방에서 병력을 보충하고 군량을 보급했다.*2


우리 역사에서 자신의 브랜드를 남긴 공직자 역시 재상들이다. 정도전은 귀족들의 토지 수탈로 일반 백성들이 송곳 하나 꽂을 땅이 없음을 한탄하면서 새 왕조를 열어 전제, 즉 토지 제도를 개혁하고자 했다. 황희는 그만의 특별한 정무 감각으로 24년 동안 정승 직책을 맡아 국방, 4군 6진, 농업 생산성 향상, 예법 정비 등 국정 전반에 있어 세종의 특급 참모로 일했다.


김육(金堉)은 일평생 대동법의 시행을 강력하게 건의한 관료였다. 충청감사로 제수된 1638년부터 그가 사망한 1658년까지 지속적으로 상소문을 올렸고, 마침내 개혁의 기폭제가 되는 호서대동법과 호남대동법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충청도와 전라도에 대동법이 확대 시행된 것이다. 곡창지대인 전라도에 대동법이 실시된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 그는 죽기 전에 왕에게 바치는 마지막 글에서도 호남대동법이 후퇴해서는 안 된다는 간언으로 자신의 상소문을 마무리한다.*3


대동법은 토지 1결당 쌀 12두를 납부하는 차등 납부 세금 체제이면서도, 복잡․다양해서 혼란스러운 여러 가지 납세 품목을 쌀로 통일한 세금 체제이기도 하다. 1608년 경기도에서 시작해서 1708년 황해도를 끝으로 마침내 100년 만에 비로소 전국적인 납세 제도가 된다. ‘대동법: 조선 최고의 개혁’*4에 따르면, 저자는 대동법 실시 이후 백성이 납부해야 할 공물가가 1/5~1/6 정도로 낮아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대동법이 시행되지 않았다면 땅을 소유하지 못한 농민들의 민생이 악화되고 그들의 세금 부담 능력이 급격하게 소진되었을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참으로 높은 개혁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정조 시대의 정승이었던 채제공(蔡濟恭)은 신해통공(辛亥通共)이라는 개혁 정책을 시행했다. 당시 기득권 세력이었던 시전의 독점권을 박탈해서 새로운 상인들의 자유로운 상업 활동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독점이 사라지면 산업이 발달하고 소비자는 이익을 얻는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역사 드라마는 인물들의 정치적 상황, 그리고 사랑과 야망을 주된 소재로 한다. 정책의제 설정, 정책결정, 정책집행과 같은 건조한 정책 과정을 드라마의 소재로 삼는다면 높은 시청률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명재상이 추진한 정책 과정보다는 장희빈, 이방원, 정도전, 한명회와 같은 문제적 인간들의 운명과 의지, 욕망과 이상, 갈등과 파국, 그리고 영예와 치욕이 우리에게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높은 시청률을 보장해 주지는 않지만, 대동법과 신해통공처럼 민생을 위해 사심 없이 일했던 의지를 생각해 본다면, 이들의 공적인 삶은 충분히 의미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만의 브랜드를 남긴 지방공무원들

이처럼 자신만의 정책과 브랜드를 남긴 공직자는 대부분 고급 관료들이다. 한국의 현대사에도 의미 있는 정책을 남긴 공직자는 대부분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청와대 수석에 국한되는 것이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시점에, 역사의 현장에서 일했던 정부 공직자들의 기록 역시 이들 고위 관료가 독점하고 있다.*5 하급 공채생이 자신의 업적과 공적인 삶의 보람을 역사에 남기는 일은 흔하지 않다.


하지만 최근에는 자신이 만든 정책 브랜드, 그리고 일하면서 느꼈던 공직의 보람을 기록으로 정리한 책이 지방공무원 저자를 중심으로 출간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시민의 행복,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이상, 공익을 높이고자 하는 사명감, 그리고 업무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큰 성과를 이뤄 냈다.


순천시 공무원 최덕림 과장은 무려 8년 동안 순천만 세계정원박람회장 조성 사업의 실무자로 일했다. 2013년 성공적으로 열린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는 산업통상자원부가 후원하는 ‘소비자 선정 최고 브랜드 대상’을 받았다. 일회성으로 끝나는 행사와 달리,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는 <순천만 국가정원>으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를 ‘지방행정의 달인’으로 선정했다. 그의 저서 ‘공무원 덕림씨’*6에 그의 고군분투가 기록되어 있다.



고창군 공무원 김가성 과장은 <고창 청보리밭 축제>라는 이름의 지역 대표 축제를 만들었다. 이미 지역에 존재하고 있었던 보리밭 풍광을 관광 상품으로 선보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대동강 물을 판 봉이 김선달에 비교하기도 한다. 3천만 원의 예산을 들여 첫 행사를 열었고, 180억 원에 이르는 경제 효과를 창출했다고 한다. 국내 식품 대기업이 자사의 일부 상품에 고창 보리를 쓰기로 협약을 맺는 성과가 이어지기도 했다. 더 나아가 지역 특산물인 고창 복분자로 만든 술, 냉면, 분말을 시장에 내놓았다. 역시나 그의 저서 ‘180억 공무원’*7에 그의 고군분투가 기록되어 있다.



영월군 공무원 이형수 과장은 봉래산에 <별마로 천문대>를 세운 주역이다. 그 역시 고창군 김가성 과장과 비슷한 맥락에서 ‘영월 이선달’, ‘별을 파는 공무원’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정부는 ‘지방행정의 달인’이라는 영예를 그에게 선사했다. 저서를 남기지는 않았지만, 행정학과 교수가 천문대 건립을 추진했던 그의 정책 과정을 분석해서 논문을 썼다. 제목은 「약자의 설득전략: 어느 하위직 지방공무원의 개혁활동에 대한 현상학적 보고서」이다.*8 그의 막내딸은 「내 안의 별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아빠의 전기문을 썼고, 이 글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아빠를 자랑스러워하는 막내딸의 글을 이 책에 일부 소개한다.


우리 아빠의 별명은 ‘별을 파는 공무원’입니다. 별을 팔아서 천문대를 짓겠다는 아빠의 발상 때문에 붙여진 별명입니다. …… 아빠는 천문대 건립에 필요한 과학적 자료를 모두 모아서 보고서로 만들었습니다.

“아니, 천문대라니요?”

“그동안 제가 조사해 본 결과, 우리 영월은 88퍼센트가 산악 지대인 데다가 쾌청일 수도 192일로 50퍼센트가 넘어서 봉래산 정상은 천문대가 들어서기에 안성맞춤의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천문대를 세우면 관광객들이 찾아올 것이고, 그러면 우리 영월의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이 계장 뜻은 알겠는데, 천문대는 누가 공짜로 지어준답니까? 우리 군 예산이 얼마나 된다고 수십억 예산을 들여서 천문대를 지어요? 이 보고서, 없던 걸로 할 테니까 괜한 공 들이지 말고 당장 그만둬요.”

처음에는 모두들 계란으로 바위 치기, 부질없는 짓이라며 아빠를 말렸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빠가 누굽니까. 아빠는 하루가 멀다 하고 봉래산을 오르내리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천문학자와 천문학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며 일에 매달렸습니다. 아빠의 노력 때문인지 처음에는 반대했던 사람들도 점차 아빠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

그런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2000년 봉래산 정상에 천문대를 짓는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천문대 공사를 시작하던 날, 아빠는 우리 세 자매가 태어났을 때만큼이나 기뻐하셨대요.

하지만 기쁨도 잠시. 우리집에 어두운 불행의 그림자가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 바로 투서 사건이었습니다. …… 그 뒤 아빠는 불면증과 신경쇠약에 걸려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잠 못 들고 괴로워하는 아빠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고요. 아빠가 괴로워하고 아파하는 만큼 엄마와 우리도 똑같이 아프고 괴로웠습니다. ……

도청 감사부에서 진위를 파악한 결과, 입찰 과정이 적법한 절차를 통해 추진되었고, 따라서 아빠에게는 아무런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

이렇게 아빠와 우리 가족을 울고 웃게 만들었던 천문대는 마침내 5년 만인 2001년 봉래산 정상에 우뚝 세워졌습니다. 아빠는 천문대 건립으로 여러 곳에서 상장과 표창을 받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처음 천문대 건립을 추진했을 당시 중학생이었던 큰언니는 현재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중인데, 하루는 언니가 울면서 아빠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빠는 무슨 사고라도 당한 줄 알고 놀라며 전화를 받았습니다.

“지은아, 왜 울어? 무슨 일이야?”

“아빠, 저 지금 강의 듣고 나오는 길인데요, 교수님께서 아빠가 만든 천문대를 지방행정의 모범 사례로 들면서 강의를 하셨어요. 옛날에는 잘 몰랐는데, 아빠가 그렇게 훌륭한 일을 한 줄 이제야 알았어요.”

언니는 그동안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아빠의 마음과 그 수고로움을 깨닫게 되자 절로 눈물이 났다고 합니다. ……

아빠는 요즘도 시간이 되면 천문대에 올라가 자원봉사를 합니다. 아빠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천문대에 와서 밤하늘의 별과 신비로운 우주를 보면서 미래의 꿈과 희망을 키우기를 바랍니다. 아직 한 번도 천문대에 가 보지 않았다고요? 그럼 여기 영월로 오세요. 우리 아빠가 친절하게 천문대 안내도 해 주고, 재미있는 얘기도 많이 해 주실 거예요.


공무원 가족의 글을 통해 이형수 과장뿐 아니라 최덕림 과장, 김가성 과장처럼 자신의 대표 정책을 행정사에 남긴 이들의 전형적인 성공 공식을 도출해 볼 수 있다.


첫째, 이전에 없었던 구상을 펼친다.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도 있고 오랫동안 구상해 온 아이디어도 있다. 보리밭 풍광을 팔기도 하고, 하늘의 별을 팔기도 한다. 문학적이고 낭만적인 요소가 있다. 둘째, 그의 구상에 조직원들이 눈총을 날린다. 그 현실적인 이유는 주로 예산이다. 지금까지 해 본 적 없는 일이라는 것도 이유가 된다. 셋째, 불굴의 의지로 조직원들의 냉소를 이겨 낸다. 이때 동원하는 도구는 상급자가 마냥 무시하기만은 어려운 그만의 열정적이고 탄탄한 문서, 외부 전문가의 의견과 시민들의 성원, 마지막으로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승인이다. 넷째, 이전에 없었던 놀라운 결실을 맺는다. 큰 보람을 느낀다. 다섯째, 한 번 더 역경이 찾아온다. 가장 주된 이유는 감사다. 조직원들의 시샘도 한몫한다. 여섯째, 문제점이 오해로 밝혀지면서 해소되고 정책이 안정된다. 시민과 동료, 그리고 가족 모두에게 인정받는다.


우리는 공직의 보람을 느끼고 있는가

지금까지 훌륭한 공직자들의 높은 이상, 불굴의 의지, 그리고 혁혁한 성과를 살펴봤다. 멀리는 중국 춘추 시대 재상 관중부터 가까이는 21세기 순천, 고창, 영월의 공직자에 이르기까지 살펴봤다.


자, 이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자. 우리는 공직의 보람을 느끼고 있는가?


정부 조직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공적인 일을 한다는 것은 대의명분으로만 본다면 참으로 보람된 일이다. 공익과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한다는 보람, 사회 발전에 기여한다는 보람, 나랏일을 한다는 자부심은 분명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기가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다. 1장 ‘생각보다 힘들잖아!’에서 구청 기획예산과에서 일했던 시절을 잠깐 소개한 바 있다. 기획예산과는 그 조직의 주요부서로 인식되지만, 나는 그곳에서 일할 때 그 어떤 보람도 느낄 수 없었다.


공약사업 추진 상황에 대해 평가하는 일이 내가 소속된 팀에서 하는 주된 업무 중 하나였다. 구청장이 관심을 기울여 힘쓰고 있는 사업에 대해서는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고, 구청장이 질책하는 사업에 대해서는 더 가열찬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러한 평론을 쓰면서 보람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은 분명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업무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근무 여건은 무척이나 열악하다.


공익광고에서 여성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은 할머니 집을 찾아가서 말벗이 되어 드리면서 불편하신 점은 없는지 살펴본다. 할머니는 그녀를 가족처럼 반갑게 맞이한다. 사회복지직 공무원은 새로운 복지정책이 나왔음을 할머니께 알려 드리면서 오래오래 사시라고 덕담을 전한다. 서로 담소를 나누고 웃으며 헤어진다.


공익광고에서 표현하는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의 근무환경과 실제 근무환경은 큰 차이가 있다. 모든 복지 대상자들이 공익광고에 나오는 할머니처럼 이들에게 친절한 것은 아니다. 힘없는 여성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은 사무실에서도 사무실 바깥에서도 물리적․심리적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게다가 상급기관에 보고해야 할 문서는 끝이 없다. 복지 업무는 언제나 증가 추세에 있다. 줄어들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문서 작성을 위해 밤에 일하는 이들의 모습은 공익광고에 표출되지 않는다.


약자를 살피는 일이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의 핵심 업무인 것과 마찬가지로, 정부 서비스를 원하는 시민으로부터 신청서를 받고, 소득과 재산 상황 등 수혜 요건을 검토하고, 수혜 여부를 통보하는 정형적인 사무원으로서의 일 역시 이들의 핵심 업무다. 하지만 이들이 냉철한 지식 노동에도 종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명해 주는 공익광고는 없다. 복지 대상자와의 관계가 함께 웃음꽃을 피울 수 있는, 좋은 관계만 존재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자긍심을 갖고 있는 이들조차 공직의 보람을 느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민원대 직원들은 특별한 자긍심을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 해도 이들 모두는 높은 집중력을 발휘해서 일한다. 주민등록 담당자로 일했을 때 출생신고와 사망신고를 처리하는 일이 무거운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털끝만큼의 실수도 없이 처리하기 위해 최고의 집중력을 그 일에 쏟았다. 모든 주민등록 담당자가 그렇게 그 일을 처리할 것이라 믿는다. 인감증명서는 큰 규모의 금액이 오가는 거래에 첨부 서류로 쓰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리인이 서류 발급을 요청할 때 담당자로서는 세심하게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규정에 부합하지 않으면 민원인을 돌려보낼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민원대 직원들이 자주 듣는 말은 다음과 같다. 뭐가 이렇게 복잡해요? 다른 동에서는 해 주는데, 여기는 왜 안 된다는 거야? 법의 취지가 중요하지 규정을 문자 그대로만 해석하면 되냐? 내 세금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말이 많아!


매일 민원인의 부정적인 감정을 주로 받아들이며 일하는 우리가 공직 업무에서 쉽사리 보람을 느낄 수 있을까?


내가 느꼈던 공직의 보람

나를 포함해서 대다수 하급 공채생들은 시민과 동료로부터 칭찬을 받을 때 보람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칭찬받을 만한 일을 많이 하지 않아서 그런지 보람을 느꼈던 때가 많지는 않았다.


관내에 위치한 대학교 음악대학 학생들이 동 주민센터에서 음악회를 연 적이 있었다. 지금은 이런 행사가 상당히 일반화되었지만, 당시에는 사람들로부터 큰 이목을 끌었다. 담당자는 그해 1년 차 신참 공채생이었는데, 담당 교수와 협의, 상급자 보고, 일정 관리, 포스터와 팸플릿 제작, 주민 홍보, 심지어는 음악회 사회까지 모든 일을 눈부시게 해 냈다. 주민, 관람객, 학생, 주최측 모두 기분 좋게 음악회를 즐겼고, 행사 후 호평이 이어졌다. 나는 옆에서 보조 인력으로 거들기만 했는데도 무척 보람을 느꼈다.


땅이 꺼져서 구멍이 나 있다는, 싱크 홀 민원 신고를 받은 적이 있었다. 동 주민센터 뒷다이 직원들과 함께 트럭에 임시로 현장을 통제할 수 있는 여러 연장을 싣고 현장으로 출동했다. 5분 만에 도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고했던 시민이 깜짝 놀라서 큰소리로 말했다. “어우, 이렇게 빨리 오다니 감동적입니다!”


집 근처에 사는 주민들이 자신의 집앞에 쓰레기 무단투기를 많이 해서 너무 괴롭다는 민원인이 있었다. 이웃이 버렸어도 늘 자신이 처리했는데, 이젠 많이 지친다는 것이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얘기를 듣고, 최대한 이야기를 경청하려 노력했다. 무단투기 단속반에 신고하는 방법, 근처 주민들에게 경고 공문을 발송하는 방법, 무단투기하는 현장에 CCTV를 설치하는 방법 등을 이야기하면서, 끝으로 이렇게 말씀드렸다. “도저히 혼자 힘으로 치우기 어려울 정도로 무단투기가 심할 때에는 그냥 지금처럼 편하게 전화 주세요. 제가 트럭 갖고 가서 치워 드릴게요.” 사실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무단투기를 하지 않도록 행정지도하거나 불법 행동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하지만 민원인이 너무 힘들어하는 것이 느껴져서 그렇게 말씀드렸더니, 감사 인사와 함께 마음이 무척 편안해졌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6개월 동안―짧은 시간이었다―주민등록 업무를 맡은 적이 있었다. 처음 일을 맡았을 때 거주자, 재외국민, 재외국민 거주자, 외국국적동포, 외국인의 개념이 명확하게 자리 잡지 않은 채로 일을 하려니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 다른 민원 창구 직원들 역시 이를 잘 모르면 주민등록 담당을 쳐다보게 되어 있다. 결국 나 자신이 필요성을 느껴 이들 개념을 정리한 페이퍼를 만들었다. 사내 인트라넷 게시판에 이를 공유했다. 조회 수가 높지는 않지만, ‘이해하기 쉽게 잘 정리되었네요. 감사합니다.’와 같은 직원들의 댓글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꼈다.


참 싱겁다. 내가 느꼈던 보람이 의미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앞서 예시한 명재상들과 ‘지방행정의 달인’들이 했던 일과 굳이 비교해 본다면, 내가 한 일은 너무나 작고 가벼운 일들이다.


문제는, 보람 있었던 일은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지만, 조직에서 좌절했던 경험은 손꼽을 수 없이 많다는 것이다. 내가 특별히 염세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서 이렇게 느끼는 건 아닐 것이다.


정부를 향한 시민들의 시선이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운 시점이다. 이 특별한 시점에 시민들의 격려를 듣는 일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하급 공직자의 눈부신 활약으로 세상이 확 바뀔 만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법과 제도 기반이 허술한 것도 아니다. 하급 공직자가 정책 과정에 참여할 경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책의제 설정에는 시민과 시민단체, 정당, 언론이 주로 참여하고, 대통령, 중앙정부 행정기관, 국회가 마침내 정책을 공식적으로 결정하고 법제화를 완성한다. 우리의 주된 역할은 이미 결정된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하급 실무자가 보람을 느끼는 때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어서 신경 써서 열심히 했을 뿐인데, 유독 고마움을 표하는 시민을 만났을 때’, 이 정도일 것이다. 가벼운 일상이지만, 실무자에게는 무게 있는 감동으로 남아, 팍팍한 현실에 다시금 기꺼이 뛰어들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어서 조금 더 설명을 해 두겠다. 나랏일을 함에 있어 작은 일도 큰일도 모두 의미가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이 굵직한 정책에 비해 싱겁고 가벼운 일로 보일 수는 있어도 우리는 이 일에 최선을 다함이 마땅하다. 그 과정에서 분명히 일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공직자로서 일의 의미를 찾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정부와 공무원에 대한 기대가 높은 2020년 현 시점에, 수직적이고 경직적인 조직 안에서, 법과 규정에 따라 일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하급 공채생에게 있어, 보람을 찾는 것이 마냥 손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그 ‘현실’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도전하라. 혁신하라. 용기를 내라. 관행을 타파하라. 높은 성과를 내라. 시민의 의견에 경청하라. 시민과 함께 호흡하라. 그 과정에서 보람을 느껴라.’ 하급 공채생들에게 주어지는 피상적이고 일방적인 강요가 과연 우리들의 공직 생활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역사서에 기록을 남길 만한 정책을 남기기도 어렵고, 일상의 보람을 자주 느끼기도 어려운 우리 하급 공채생들은 어디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할까? 공권력이 땅에 떨어지고, 시민들의 눈높이는 하늘에 닿아 있는 21세기 초엽에, 의사결정 권한이 유력자와 최고 의사결정권자에게 집중되어 있고, 하급자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 한국의 정부 조직에서, 하급 공채생으로 일하는 우리의 미약한 처지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로 일하는 것이 나와 사회에 도움이 될까?


이제 이 책의 마지막 장에 내가 여러분에게 권할 수 있는 충언을 조심스럽게 권하고자 한다.




*1 공원국. 2017. ‘춘추전국 이야기 1: 춘추의 설계자, 관중’. 위즈덤하우스.

*2 사마천. 2018. ‘사기 세가’. 신동준 譯. 올재. pp.484-487.

*3 “호남의 일에 대해서는 신이 이미 서필원을 추천하여 맡겼는데, 이는 신이 만일 갑자기 죽게 되면 하루아침에 돕는 자가 없어 일이 중도에서 폐지되고 말까 염려되어서입니다. 그가 사은하고 떠날 때 전하께서는 힘쓰도록 격려하여 보내시어 신이 뜻한 대로 마치도록 하소서.” 효종실록 20권, 효종 9년 9월 5일 기해 1번째 기사.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 검색일 2019. 11. 14.

*4 이정철. 2011. ‘대동법: 조선 최고의 개혁’. 역사비평사.

*5 이장규. 2008.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올림; 강경식. 2010. ‘국가가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 김영사; 이헌재. 2012. ‘위기를 쏘다’. 중앙북스; 고승철․이완배. 2013. ‘김재익 평전’. 미래를소유한사람들; 고건. 2013. ‘국정은 소통이더라’. 동방의빛; 강만수. 2015. ‘현장에서 본 경제위기 대응실록’. 삼성경제연구소.

*6 최덕림. 2017. ‘공무원 덕림씨’. 컬쳐코드.

*7 김가성. 2017. ‘180억 공무원’. 쌤앤파커스.

*8 윤견수. 2001. 「약자의 설득전략: 어느 하위직 지방공무원의 개혁활동에 대한 현상학적 보고서」. ‘한국행정학보’. 35(1). pp.143-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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