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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Nov 14. 2019

그래도 힘들어하는 동료를 그냥 둬선 안 된다

9급은 정말 여섯 시에 퇴근하는가

우리의 전통적인 상사들은 ‘우리는 하나’, ‘재주보다 덕이 중요하다’, ‘일만 잘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같은 구호를 내세워 팀원들의 희생과 헌신, 그리고 단합을 장려했다. 이 말은 결국 자신의 말에 순종하도록 이데올로기를 조성했다는 말이다. 대의명분은 희생과 헌신, 그리고 단합이었지만, 이 모든 일은 자신의 영달―승진과 권력―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었다(물론 모든 상사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일부 소수의 상사가 그러했을 뿐이다. 다만 그 소수의 상사가 조직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조직의 관리자가 되었고, 그들이 최고 의사결정권자에게 충성함으로써 조직에 비효율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조직 안에서 최고의 권력을 갖고 있는 이들조차 사회 전체에 흐르는 도도한 물줄기를 바꿀 수는 없었다. 새로이 공직사회에 입문하고 있는 우리의 영민한 90년대생들은 상사들이 조직원들에게 적용하고자 했던 전통적인 이데올로기가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기 위한 것임을 그 특유의 영민함으로 어렵지 않게 눈치챘고, 조직을 향한 희생과 헌신의 결과가 스스로에게 이익이 되지 않음은 물론 공공의 이익에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간파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희생과 헌신으로 인해 자신이 성취감과 보람을 느낀다면 90년대생들이 그 길을 걷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공직사회에서 성취감과 보람은 쉽사리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침내 이들은 공직자가 아닌 샐러리맨의 삶을 선택하게 되고, 조직 안에서 개인주의자로서의 삶을 선택하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 시점에서 이들이 한 선택을 나무라기가 어렵다.


이제는 직장 생활에서 동료에게 지나치게 사적인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행동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 트렌드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 같다. 그렇다면 동료가 어려운 일을 겪고 있다 해도 우리는 우리의 정시 퇴근과 행복만을 위해 경주마처럼 앞서 달려 나가면 되는 것인가? 우리가 그토록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야심가들처럼? 그래서는 안 된다고 감히 여러분에게 조언해 주고 싶다.


내가 일찍 퇴근하는 것은 오로지 내 능력 때문인가

박애육영(博愛育英). 박애주의 실천의 영재교육을 건학 이념으로 하는 신라대학교*1의 교가는 윤종신 씨가 작사․작곡하고, 김연우 씨가 불러서 유명하다. 교가 제목은 <신라인의 노래: 꿈, 그리고 한 가지>. 그 가운데 2절 가사의 일부를 소개한다.


숨 가쁘게 달려도 한 번씩 뒤돌아 봐

미소를 나누던 친구 뒤처져 있는지

손을 내밀어 당겨 주는 나의 따뜻한 손은

그 누구보다 날 앞서게 하지



아름다운 노랫말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를 돕는 일조차 경쟁에서 앞서 나가는 데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로 판단하는 목적론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 순수하지 못하다.’고 오해하는 극소수의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일찍 퇴근하는 것은 오로지 내 능력 때문인가. 그럴 수도 있다. 규정에 통달하고, 시민 고객을 잘 응대하고, 현재 자신이 다루고 있는 문제에 대해 자료를 수집하고 깊이 있게 생각해서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한 뒤, 단축 키를 익혀 최고의 생산성으로 문서 작성을 마무리함으로써,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일정을 잘 관리함으로써 정시에 퇴근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첫째, 여러분이 소속된 부서가 다른 부서보다 업무량이 많지 않아서 정시에 퇴근하는 것일 수도 있다. 부서의 성격에 따라 야근과 휴일 근무 여부가 달라지기도 한다. 총무, 인사, 감사, 기획으로 대표되는 주요부서는 일반적으로 사업부서보다 야근과 휴일 근무가 많다. 최고 의사결정권자 의전이 고유 업무인 총무과의 경우에는 아예 조를 편성해서 직원들이 교대로 휴일에 출근하기도 한다. 휴일에도 활동하는 최고 의사결정권자를 지원하고 수행하기 위해서다. 한편, 관내에 대형 싱크 홀이 발생했다면 도로관리과, 치수과 등 사업부서는 즉시 현장에 투입되어 현장을 관리하고, 복구 작업을 해야 한다. 야간이든 휴일이든 관계없다. 복구가 완료되어 차와 보행자가 이상 없이 다닐 수 있을 때까지 현장과 사무실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


둘째, 같은 부서인 경우, 옆에 있는 동료가 여러분보다 더 많은 일을 맡고 있어서 여러분보다 늦게 퇴근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업무분장할 때 업무량을 정확하게 1/N로 나누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니까.


힘들어하는 동료에게 도움을 주자

여러분이 신참이라 해도 어떤 조직원이 일 때문에 야근에 시달리는지, 어떤 조직원이 일 때문에 힘들어하는지는, 굳이 고도의 분석력을 동원하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일이 힘든 사람은 말 수도 적다. 게다가 일하느라 늦게 퇴근하는 사람과 저녁 먹고 인터넷 서핑하다가 퇴근하는 사람을 구분하는 일이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겠는가.


그리고 여러분이 신참이라 해도 사무실 일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지금 누가 어떤 일로 일 폭탄을 맞았구나, 어떤 일 때문에 저 사람이 많이 바쁘겠구나, 하는 정도는 알 수 있다. 2014년 7월, 기초연금 지급이 시작되었는데, 그 즈음에 노인 복지 담당에게 업무 폭탄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2018년 9월, 아동수당 지급이 시작되었는데, 마찬가지로 그 즈음에는 아동 복지 담당에게 일 폭탄이 떨어졌다. 다음 날 조직의 모든 간부가 참여하는 공약사업 보고회가 있다면, 공약 담당은 보고회 준비에 눈코 뜰 새가 없을 것이다.


이때 온정, 따뜻한 마음을 발할 것을 여러분에게 권하고 싶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일을 모두 완수했다는 전제하에(자신이 두 발로 온전히 서지 못하는 상태에서 누구를 도와준다는 것은 안정되지 못한 일이다).


그날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쳤다면, 여러분이 옆에서 봤을 때 힘들어하는 동료와 고참에게 “뭐 좀 도와드릴까요?”라고 말을 건네 보자. 대부분의 동료와 고참은 “아니에요. 괜찮아요.”라고 말할 것이다. 실제로 복잡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때 이렇게 말해 볼 것을 권한다. “뭐 단순 작업이라도 도와드릴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일손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여러분의 호의를 받아들이면서 단순한 작업을 여러분에게 부탁할 것이다. 신청서에서 중요사항 누락 여부 검토, 첨부 서류 누락 여부 검토, 회의자료 스테이플러 찍기, 회의장 세팅, 회의장 책상 위에 회의자료 놓기 같은 것들이다. 여러분 입장에서는 그다지 큰 노동력이 들지 않는 일이면서도, 그 일을 하는 담당자 입장에서는 큰 도움이 되는 일들이다. 여러분은 덕을 쌓아서 좋고, 상대방은 도움을 받아서 좋다. 여러분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온정으로 베푸는 이 작은 행동이 결과적으로는 여러분에게 큰 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다. 언제 돌아올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가 돌아온다는 것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주의할 것이 있다. 동료에게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 여러분이 작은 실수를 범했다고 가정하자. 세상 사람들은 그 성향이 너무나 다양해서 ‘도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실수를 지적해서 무엇 하랴. 고마운 마음만 간직하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도와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실수를 지적하면서 이렇게 도와주는 건 도와주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후자의 경우라면 가급적 일을 돕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을 도와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와준 일에 실수가 있었다는 이유로 여러분을 공격할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평소에 잘 관찰해 두었다가 가급적이면 일로 엮이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 선의로 일을 돕겠다는 마음도 자제하는 것이 좋다. 동료에게 도움을 주지도 못하고 자신에게는 지적이 돌아온다면 서로 마음이 많이 상하지 않겠는가. 마음 상할 일은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




3부에서는 ‘정시에 퇴근하려면’이라는 제목으로 업무에 적응하기 위한 내용을 살펴봤다. 규정 숙지, 문서 작성, 중요 사안에 관한 의사결정, 특별한 민원에 대한 응대, 지식 노동과 감정 노동……. 우리 공채생에게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현대 한국 사회와 시민들은 무한 책임과 무한 친절의 서비스, 그리고 최고의 전문성과 살신성인의 자세를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여러분은 사회의 요구를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가. 시민들의 요구 수준에 어느 정도까지 미칠 수 있는가. 사회와 시민이 요구하는 이상적인 공직자상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할 마음은 갖고 있는가.


4부에서는 공직자로서의 삶과 나 자신으로서의 삶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이 일치하거나 조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일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짊어져야 할까.




*1 https://www.silla.ac.kr/ko/index.php?pCode=founding 신라대학교 홈페이지>신라 소개>대학 소개>건학 이념. 검색일 2019.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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