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의 꿈
내게도 잠 없는 밤이 있었다.
갑상선 호르몬제를 먹기 시작해 복용량을 조절하던 때였다. 조금씩 약을 줄였는데, 잠도 같이 줄어들었다.
결국엔 뜬눈으로 아침이 되었고, 불면증은 한 달 가까이 날 괴롭혔다. 어쩌다 꿈을 꾸듯 잠이 들었지만 여전히 새벽이었다. 한 시간도 못 잤는데, 한번 잠이 깨면 다시 잠들지 못했다. 몽롱한 상태로 호르몬제가 겨우 날 지탱시켜 주었다. 피곤하고 무기력한 갑상선은 잠자는 기능까지 무력하게 만들었다.
갑자기 밤이 오는 것이 무서워졌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몸이 오싹하며 떨릴 지경이었다. 세상은 모두 잠들었는데, 나만 잠 못 드는 밤은 침대에 묶인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더욱 무기력했다. 잠이 오지 않아도 몸은 고단해서 눕고 싶었기 때문이다. 꼬박 3일을 한숨을 못 자고, 병실에 누워 있듯 천장을 올려다보며 밤을 지새운 후였다.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서 견딜 수 없었다. 바깥공기를 쐬고 싶어 동이 트길 기다렸다. 머리가 무겁고 다리는 힘이 없었지만, 시원한 새벽 공기는 온몸으로 스며들어 나를 기운 나게 했다.
중랑천 수림공원까지 걸어 나왔는데, 무리 지어 핀 야생화의 향기는 이슬을 머금고 진하게 나를 감싸며 어스름한 새벽 풍경을 더 어지럽게 했다. 눈을 감고 축축한 공기를 흠뻑 들이마셔서 인지 졸음이 몰려왔다.
공원 벤치에서 깜빡 잠이 든 듯했지만 금방 정신은 맑아졌다. 흐르는 물은 여름을 완전히 장악한 듯 시원했다. 촉촉한 공기는 몸을 시원하게도 해줬지만, 탈진한 몸에 수액 링거를 꽂은 듯 꼼짝 못 하고 한동안 떠나지 못하게 했다. 기운 없는 증상이 심해지자 호르몬제는 다시 늘어났다.
몸이 더 나빠지는 최악을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자연을 찾아 땀이 날 정도로 걷기 시작했다. 유모차를 밀며 한 시간 정도 걸으면 그날은 아이도 나도 푹 잠이 들었다. 3개월이 지났을 땐 약을 줄였고, 불면증은 또 찾아오지 않았다.
스무 살이 막 넘은 나는 프란츠 카프카의 책을 좋아했다. <변신>,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단편선> 외에도 세상을 떠난 작가의 원고들을 모아서 사후에 출간된 책을 찾아 읽었다. 그 당시 내 책꽂이엔 카프카 관련 책이 5권은 족히 넘었던 것 같은데, 지금 내 책장엔 한 권도 남아 있지 않다. 아쉽게도 그 책들은 고향집 창고 어딘가에서 곰팡이가 피고, 누렇게 변해가고 있을 것이다. 족히 25년이 넘는 책인데 잘 정돈된 책장에 꽂혀있어도 신세는 비슷할 듯싶었다.
다시 카프카를 읽고 싶어 도서관을 찾았지만 카프카의 인기는 대단한 듯했다. 남아있는 책이 없었다. 그의 얼굴은 작품만큼 잘 알려져 있다. 동그랗고 부리 부리한 눈매와 마른 몸에 꽉 다문 입술은 강건해 보이면서도 외로움이 느껴진다.
그의 내면엔 혁명가의 열정이 있었던 것 같다. 세계대전을 겪은 그가 아우슈비츠의 희생된 가족을 둔 유대인이라는 것과 완강한 아버지를 두었다는 것은 그가 예민하고 억눌린 삶을 살아갔을 이유가 되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법학을 배우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두가 잠든 밤이면 글을 썼다. 소설을 발표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지만, 30대 이른 나이에 폐결핵을 진단받아 건강은 점점 쇠약해졌다.
마지막까지 그의 일기는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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