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의 야생화 일기
바닥에 몸이 딱 붙어 하루 종일 떨어지지 않는 날이다. 몸이 꼼짝 못 하자, 머릿속은 오히려 심심해졌다.
월든에 살던 소로의 책을 펼쳤다. 청심환 한 알을 먹은 듯 빠른 시간에 힘을 솟게 하고 싶었다. 고향 콩코드의 야생을 사랑했던 그의 책엔 새와 동물, 야생화, 이웃들이 함께 산다. 사계절 변화무쌍한 날씨에도 야생화가 가득 핀 그의 일기장을 따라가다 보면, 꼼짝 않고 누운 채 편히 숨을 쉬어도 될 것처럼 마음이 놓였다.
자연 속에 부드러운 초록의 장식을 보며, 휴식 시간이 간절했는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몸을 밖으로 나가게 해 줄 거란 기대도 함께였다.
어느 사진작가의 사진집에서 붉은 클로버 꽃을 본 적이 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낯설고 탐스러운 꽃잎을 내 눈으로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며칠 뒤 마법처럼 내 앞에 달콤한 사탕처럼 귀여운 한송이로 나타났다.
꽃을 직접 보고 나니 곳곳에서 붉은 클로버가 눈에 띄었다. 후미지고 응달진 풀숲에 있어 못 본 것이었다. 한송이가 눈에 보이자, 그다음은 한 다발로 피어 있었다. 봄에도 보았고, 늦가을에도 만났다. '발견'이란 설렘은 내게 신비로운 힘이 존재한다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했다.
붉은토끼풀을 처음 보았다.
<소로의 야생화 일기> 1860년 6월 2일 소로도 그날 붉은토끼풀을 처음 만났나 보다. 물론 그가 꽃을 처음 알게 된 것인지, 핀 꽃을 처음 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음 문장엔 다른 이야기가 이어진다.이 문장으로 난 소로와 나만의 대화를 했다. 건강하게 핀 붉은 토끼풀꽃 앞에 그와 함께 있는 듯 말이다. 그 뒤론 야생화 선생님을 만난 듯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문장을 읽으면서 그가 하는 말을 듣다가, 대답하듯 내 이야기를 건넸다.
나는 모든 발견에 앞서 무언가 준비나 희미한 기대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아무 발견도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대상을 위해 기도하고 심신을 단련하면 결국 나타나기 마련이다.
꽃이었다. 인디언 헴프 세 종류를 발견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모습을 드러낸다. 뭔가가 나타날 듯한 기대감이 내 안에서 무르익는다.
<소로의 야생화 일기> 1856년 9월 2일 무작정 길을 걷다가도, 보고 싶은 꽃을 생각하면서 걸었다. 나도 소로가 말한 '발견'을 하고 싶었다. 책에서 찾은 이 문장은 그와 가까워진 듯 대화를 더 나누고 싶었다.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나도 당신처럼 찾는 꽃들이 있어요. 저는 꽃 사진을 수집하거든요. 보랏빛의 신비로운 색을 가진 용담꽃, 각시붓꽃, 산부추 꽃을 오래 동안 찾아다녔어요.당신처럼 저도 찾을 수 있을까요?" 그가 대답이라도 해주는 듯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꽃을 만났고, 꽃 사진을 갖게 되었다. 보고 싶은 꽃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마법이 아니라, 내가 볼 줄 몰라서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동네 산책로에 피는 꽃은 다 알고 있다 믿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하찮은 거만함이었다. 고집스러운 내 성격은 시간이 필요했다. 어쩌면 그런 내가 볼 수 있는 건 정해져 있었다. 길가에 흰구름처럼 무리 지어 보송보송 피어난 흰 토끼풀꽃만 봐왔으니까 말이다. 보는 대로 관찰도 필요했지만 기대와 만족은 얻을 수 없었다. 그런데 '발견'의 의미에 눈을 뜨고 나선, 내게 의미 있는 것을 직접 찾고 싶었다. 점점 삶의 태도도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약간 흥분된 느낌은 곧 뭔가 만날 것만 같은 기대를 품게 했다. 그러다 툭 하니 눈앞에 나타나면 그 만족스러움이 또 나를 설레게 했다. 소로는 자신의 일상을 영감으로 끌어올리는 도구로만 쓰지 않았다. 자신의 철학으로 삶을 실천하며 고쳐간 것을 책으로 남겼다. 수많은 작가들이 자연 관찰일기를 남겼지만, 나는 그들의 근면하고 다정한 관찰이 부러웠다. 따라 해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자연이 주는 교훈을 그대로 받아 적기만 하면 내 것이 될 것 같았다. 소로가 쓴 일기처럼 나도 쓸 수 있다는 기대가 다였다. 내 글은 시시하다고 여기고 누군가를 따라 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잠시 동안 척하려는 '거만한 행동'이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듯이 내 삶은 그와 달랐다. 그가 써 내려간 건 세상 앞에 초연한 삶의 흔적과 홀로 선 그 자신이었다. 모방하듯 글을 쓰려던 건 멈춰야 했지만, 스스로 의미를 만드는 '발견'은 멈추고 싶지 않았다.
비가 온 뒤 맑은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선명한 숲과 비에 젖어 명랑해진 꽃들을 좋아한다. 누군가를 더 이상 두려워 말고 자기 다움으로 살아가고 싶다. 내 목소리로 쓰고 싶다. 꽃을 찾는 마음으로 진정한 내 삶의 주도권을 갖고 말이다.
초록 수풀 사이에 조그맣게 핀 붉은 클로버를 찾을 수 있는데, 왜 나 자신은 보지 못했을까!?
바닥에 몸이 딱 붙어 하루 종일 떨어지지 않는 날이다. 몸이 꼼짝 못 하자, 머릿속은 오히려 심심해졌다.
월든에 살던 소로의 책을 펼쳤다. 청심환 한 알을 먹은 듯 빠른 시간에 힘을 솟게 하고 싶었다. 고향 콩코드의 야생을 사랑했던 그의 책엔 새와 동물, 야생화, 이웃들이 함께 산다. 사계절 변화무쌍한 날씨에도 야생화가 가득 핀 그의 일기장을 따라가다 보면, 꼼짝 않고 누운 채 편히 숨을 쉬어도 될 것처럼 마음이 놓였다.
자연 속에 부드러운 초록의 장식을 보며, 휴식 시간이 간절했는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몸을 밖으로 나가게 해 줄 거란 기대도 함께였다.
어느 사진작가의 사진집에서 붉은 클로버 꽃을 본 적이 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낯설고 탐스러운 꽃잎을 내 눈으로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며칠 뒤 마법처럼 내 앞에 달콤한 사탕처럼 귀여운 한송이로 나타났다.
꽃을 직접 보고 나니 곳곳에서 붉은 클로버가 눈에 띄었다. 후미지고 응달진 풀숲에 있어 못 본 것이었다. 한송이가 눈에 보이자, 그다음은 한 다발로 피어 있었다.
봄에도 보았고, 늦가을에도 만났다. '발견'이란 설렘은 내게 신비로운 힘이 존재한다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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