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
나만의 해석이지만 카프카의 그의 문장은 구멍이 없다.
문장 자체가 섬세한 무늬로 짜인 뜨게 목도리 같다. 들고 다녀고 목에 둘러도 멋스럽고, 따뜻한데 어딘지 서늘한 외로움이 묻어나기도 했다. 스무 살을 넘긴 나는 카프카의 책을 대부분 갖고 있었지만, 그가 직접 쓴 책과 나머지는 문장들을 모아 다른 작가의 글로 옮겨진 해석 본 들이었다. 큰 눈망울에 이끌려 그의 소설을 읽으면 도와주지 못하는 상황이 답답할 지경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도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우린 다 그런 시간을 보내는 것인가. 먼 나라 가보지도 못한 과거에서 온 글이 나를 참 많이 흔들었다.
한동안 불면증으로 고생했을 때 그가 잠을 안 자며 글을 써 내려갔다는 걸 떠올렸었다. 차라리 글이라도 쓰는 사람이면 좋겠다 싶었지만 나는 카프카가 아니다. 카프카는 꿈이란 단어로 여러 가지 글을 썼다. 따라 해보고 싶었다.
잠시 몽롱한 상태 혹은 꿈을 꾸는 상태에 카프카는 마음대로 자신을 움직이는 듯하지만, 결국 잠에서 깨면 모든 것이 사라진 후였다.
대부분의 작품은 밤에 쓰였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의 문장을 읽으면서 부끄러웠다.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그의 인품에 대해 또 놀랐다. 글을 쓰는 사람의 가장 표본이 아닐까 싶을 만큼 그는 작가로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진실한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아버지에 게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작가는 글로 남기는 것만으로 그 쓰임을 다 한 건 아닌지 아니면 끝까지 결심을 하지 못한 것인지 궁금했다.
내일이면 새해다.
내 나이를 세어보다 놀랐다. 나는 아버지보다 오래 살고 있구나.
그리고 내가 무엇을 했는가 하나씩 나열해 보았다. 그리고 울컥 한 큰 숨이 나오는 걸...
참 보잘것없구나.
시작은 알 수 없는 공허감이었다. 빈 곳을 채우고 싶어서 오랫동안 분석했다. 하지만 아주 어린 날부터 익숙해진 심리적인 습관이었다. 내가 받은 것과 아버지가 남긴 것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다. 원망하던 일도 희미해지니 나쁜 업보도 내가 붙들고 있는 허상 같았다. 늘 불행을 상상하면서 원망하는 습관은 주름처럼 없어지지 않았다. 물려받은 아버지의 눈매처럼 생긴 대로인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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