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지 않아도 되었다

산책의 이유

by 무쌍

나는 꽃 전문가는 아니다. 더군다나 식물학자도 아니다. 어느 날부터 길가에 핀 꽃이 좋아졌다. 처음 길가에 핀 노란색 꽃들이 다 똑같아 보였는데, 이제는 구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슨 꽃인지 알기 위해 사진을 찍었는데, 희귀한 꽃을 찍은 날이면 그 기쁨은 더 했다.


대단한 예술가인 꽃들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길가에 피어난다. 길을 걷다 보면 풀이나 나무들이 늘 우리 곁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길가에 자라는 식물들은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란다. 그 식물들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날마다 나는 식물들의 안부를 확인하러 나간다. 일단 밖으로 나가면 나도 그들에게 생존 신고를 하는 기분이다. 그런 기분을 잊지 않으려면 겨울에도 산책을 나서게 된다.



눈이 쌓여있지만 따사로운 해가 있어서 산책을 나섰다. 막상 밖은 쌓인 눈 위로 부는 바람이 머리카락을 쭈삣 세웠고, 차가운 공기 때문에 두 눈에서 눈물이 찔끔 났다.

괜히 심술이나 날씨 탓을 하며, 선뜻 발을 떼지 못하고 서 있었다. 그런데, 집 앞 오래된 감나무 가로수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가지가 썩어 잘린 부분에 쌓인 눈을 보다가, 한 번도 시선을 준 적 없던 생명을 발견했다.

오래된 감나무에 자라는 이끼와 구름버섯 @songyiflower 인스타그램

나무에 붙은 이끼들은 건조한 날씨에는 볼 수 없다. 평소에는 마른나무껍질에 있는지 알 수 없다가, 비나 눈이 와야 초록의 색을 보여준다. 가만히 살펴보니 감나무 가로수들이 옆구리에 다 초록 이끼를 붙이고 있었다. 풋풋한 이끼의 모습이 예뻐 보여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난 버섯을 따라 가보니 잘린 가지 단면에서 시작해서 나무 위쪽까지 나 있었다.



매일 보는 풍경이 지루하다 싶을 때면 보란 듯이 새로운 꽃이 피어나 있다. 이런 발견이 즐거움으로 바뀌니 집 주변에서 점점 더 멀리 산책을 나섰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더 멀리 나가려던 나를 달래 본다.

멀리 가지 않아도 내가 보지 못한 것은 있단다.


수집하듯 꽃을 찾아다니고 사진을 찍던 나에게 찾아오는 소소한 발견들은 차곡차곡 쌓였다. 그리고 이렇게 만난 경이로움을 사진으로 담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시인들은 꽃으로 노래도 하고, 지친 삶을 아름다운 운율 속에 꽃처럼 쓰기도 하던데, 나는 수다가 길어서 그런 시인이 되긴 어려울 것 같다. 대신에 글이 안 써질 때마다 그 순간을 꺼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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